[자유성] 일타강사

  • 이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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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6-29 06:42  |  수정 2023-06-29 06:41  |  발행일 2023-06-29 제23면

조선시대 정조 임금 때 정학수(鄭學洙)라는 노비가 있었다. 지금의 국립대 격인 성균관에서 잡일을 하는 수복(守僕)이었다. 신분만 노비일 뿐 어느 양반도 그를 함부로 대하지 못했다. 성균관 학생들에게 글을 가르쳤기 때문이다. 자세한 사연은 기록에 없어 알 수 없지만 어깨 너머로 글을 배웠으리라. 타고난 공부 머리가 있었는지 실력이 일취월장해 결국 훈장에까지 올랐다. 그가 성균관 인근에 세운 서당엔 100여 명의 학생이 몰렸다. 탁월한 학식과 인품을 갖춘 그는 '정 선생'으로 불리며 추앙을 받았다고 한다. 시대를 더 거슬러 올라가 고려 충렬왕 때 강경룡(康慶龍)이라는 유생이 있었다. 자기가 가르친 제자 10명이 모두 과거에 붙자 명성을 얻었다. 임금까지 감탄해 그를 칭찬하고 곡식까지 하사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정학수와 강경룡은 지금으로 치면 '일타강사(1등 스타강사)'쯤 된다. 요즘 이 일타강사가 논란의 중심에 있다. 정부가 수능 '킬러 문항'(초고난도 문항)을 공개해 향후 수능에서 철저히 배제하겠다고 하자 일타강사들이 반감을 드러냈다. 그러나 여론은 싸늘하다. 과도한 사교육 풍토 속에서 적게는 수십억 원, 많게는 수백억 원의 연봉을 받는 그들이 교육정책을 비판하는 게 과연 온당하냐는 것이다. 반면,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는 "일타강사는 법 테두리 안에서 그냥 영리활동을 하고 있을 뿐"이라고 했다. 글쎄다. 선뜻 공감하기 힘들다. 무엇보다 외국 유수의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인재들까지 '억억' 소리 나는 연봉에 혹해 사교육 시장에 몰려드는 게 곱게만 보이지는 않는다. 국가적 손실이기 때문이다. 이창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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