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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규완 논설위원 |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6월 FOMC(공개시장위원회)에 눈길이 간 건 유난한 언어의 수사(修辭) 때문이었다. 15개월 만의 금리동결을 두곤 '마침표 아닌 쉼표'로 표현했다. 금리인상 가능성을 열어둔 연준의 속내가 읽힌다. '매파적 동결'의 맥락도 같다. 금리인상 시기의 동결은 '비둘기 행태'에 더 가깝지만 '매파적'이란 어휘를 썼다. 일종의 형용모순이다. 실제 요즘 미국경제가 형용모순의 성격을 띤다. '둥근 네모' 같다고나 할까. 아니면 팔색조? 그만큼 다채롭고 복합적이다. 활황과 경기침체의 빛깔이 공존한다.
경제지표가 그렇다. 고용시장 과열이 잦아들었지만 소비는 강세다. 고용의 선행지표 격인 실업수당 청구 건수가 늘었으나 지난달 소매판매도 늘었다. 도무지 종잡기 어렵다. 물가도 안정권에 진입한 게 아니다.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는 4%. 연준의 목표치 2%보단 한참 높다. 에너지와 농산물을 제외한 근원 물가는 5.3%였다. 통상 인플레이션 시기엔 소비가 줄어드는 데도 소매판매가 증가했다. 미국은 GDP(국내총생산)에서의 내수 기여도가 월등하다. 연내 미국의 경기침체가 없을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배경이다.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미국의 경기침체 가능성을 35%에서 25%로 낮췄다.
그럼에도 연준이 기준금리 동결을 택한 이유는 뭘까. 퍼스트리퍼블릭은행과 실리콘밸리은행의 파산 여진이 숙지지 않은 상황에서 금융위기 불씨가 살아날 수 있다는 우려가 작용했을 법하다. 금융기관의 신용경색은 자금조달 비용을 높이고 통화 회전율을 떨어뜨린다. 금리인상 효과와 흡사하다.
미국정부의 부채한도 상향도 금리동결에 일조를 했다고 판단된다. 국채 발행은 민간 유동성을 흡수한다. 금리인상 효과를 유발하는 셈이다. 미국정부는 연말까지 1조달러가량의 국채를 발행할 계획이다. 1조달러? 우리 돈 1천305조원(28일 환율 기준)이다. 내년도 우리 정부 예산이 670조원이라면 그 규모를 가늠할 수 있지 않을까.
6월 FOMC를 전후해 주식은 상승했고 채권은 약세였다. 채권시장의 우려와 주식시장의 낙관론이 중첩되는 장면이다. '둥근 네모' 같은 미국경제를 웅변한다. 기준금리 동결 효과가 주식시장에 선반영됐다는 시각이 많다.
월가 등 시장에서 기대하는 시나리오는 '골디락스'다. 골디락스는 인플레이션 뇌관을 건드리지 않으면서 잠재성장률에 육박하는 성장이 상당 기간 이어지는 경제국면을 말한다. 물가 안정 속에 경제가 성장하는 최상의 그림이다. 하지만 5%가 넘는 고금리만으로도 경제주체들엔 압박요인이다. S&P500지수 PER(주가수익비율) 20배는 작금의 고금리 상황에선 정당화될 수 있는 밸류에이션이 아니다. 물가안정과 적정한 금리의 조합이 이루어져야 골디락스가 올 텐데 아직은 갈 길이 멀다.
어쨌거나 15개월간 긴박하게 전개됐던 긴축 터널의 막바지에 이른 것만은 분명하다. 하지만 연내 금리를 인하할 공산은 희박하다. 오히려 추가 인상 쪽에 추(錘)가 기운다. 파월 연준 의장도 지난 21일 하원 금융위원회에 출석해 "인플레이션이 어느 정도 완화됐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압력은 계속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FOMC는 경제전망 요약에서 올해 말 최종 기준금리 중간값을 5.6%, 내년 말 최종 금리를 4.6%로 예상했다. 금리인하는 내년에야 가능하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연준이 또 한 번 매를 날릴까.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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