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따라 이야기 따라 영양에 취하다 .1] 영양 원놀음…"원님 행차시오~" 풍자·해학 넘치는 400년 전통의 즉흥극

  • 류혜숙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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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6-29 07:34  |  수정 2023-06-29 18:15  |  발행일 2023-06-29 제13면
마을 돌며 죄인 역할 집주인 재판
이웃마을 함께 어울려 흥겨운 잔치
官 부패 등 사회 비판적 내용 담겨
1899년·1900년 대규모 공연 펼쳐
2007년에 영양원놀음보존회 결성
해마다 정기발표회·순회공연 열어

'별천지 영양'. 경북 영양을 한마디로 설명하는 문구다. 밤이면 별들이 쏟아지는 곳. 그만큼 때 묻지 않은 자연의 청정함을 오롯이 간직하고 있어 '대한민국 청정 1번지'로 꼽히는 곳이 바로 영양이다. 자작나무숲, 송하계곡, 국제밤하늘보호 공원 등지를 거닐다 보면 경관에 매료돼 절로 감탄사가 새어 나온다. 하지만 아름다운 풍경이 영양의 전부는 아니다. 천혜의 자연환경을 바탕으로 빛깔 좋은 고추와 사과, 산나물, 고랭지 채소 등 영양이 자랑하는 특산물부터 민족의 얼이 담긴 수많은 역사·문화 유산까지 다채로운 매력을 지니고 있다. 영남일보는 오늘부터 '별 따라 이야기 따라 영양에 취하다' 시리즈를 연재한다. 영양에서 먹고 보고 즐길 수 있는 명물과 명소를 다룬다. 또 영양이 '문향의 고장'으로 불리게 된 배경 등 흥미로운 이야기도 덧붙인다. 시리즈 1편은 영양에서만 볼 수 있는 민속행사인 원놀음에 대해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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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열린 '영양 고추 H.O.T 페스티벌' 축제 기간 중 영양원놀음보존회 회원들이 토속 연극인 '원놀음' 공연을 펼치고 있다. 영양 원놀음은 관장(官長)의 재판을 비롯한 관가의 행정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집단놀이로 400여 년 전부터 영양 지역에 전승돼왔다고 전해진다. <영양군 제공>

음력 정월 초순, 지난 일 년 동안 농사일에 쫓겼던 농민들은 비로소 농한기를 맞았다. 자못 한가해진 마을 청년들은 삼삼오오 한자리에 모여 쑥덕쑥덕 놀 모의를 했다. 그들은 학식 깨나 있는 사람을 원님으로 추대하고 그 이하 육방관속과 통인, 사령, 관노 등 각종 관원의 역할을 한자리씩 꿰차고 는 거리로 나섰다. "원님 행차시오~ 원님 행차시오~ 휘 물렀거라~". 원님 행차를 알리는 사령의 권마성 소리가 온 동네에 쩌렁쩌렁 울렸다. 이들 원님 무리는 마을을 돌며 죄인을 정하고 다양한 죄목을 들어 재판을 하며 놀았다. 이것이 영양의 '원놀음'이며 '사또놀음' 혹은 '감영놀이'라고도 한다.

◆각본 없는 즉흥극, 영양 원놀음

놀이패는 주로 마을의 부유한 집이나 대갓집을 돌면서 놀이를 벌였다. 그 집의 대청이나 행랑채는 감영이 되었고 주인은 죄수가 되었다. 죄명은 다양했다. 농산물의 수확이 많거나 적은 일, 생산물의 절도, 부역에 빠지는 일, 조세를 납부하지 않은 것, 윤리에 어긋난 패륜행위, 노비의 비리, 제사나 손님 대접이 미흡한 것, 저축의 소홀 등 온갖 것들이 죄명이 되었다. 재판 결과 원님은 죄인에게 중벌을 선고하게 되는데, 벌을 감면하는 대가로 푸짐한 주안상을 요구했다. 일행은 먹고 마시며 질탕히 즐겼고 얼추 배가 차오르면 한 사람이 슬그머니 밖으로 나가 소리를 질렀다. "암행어사 출두요~" 그러면 원님 일행은 혼비백산하여 도망치듯 다른 집으로 옮겨 갔다.

밤에는 마을 광장이나 구릉 등에서 주민들이 구경하는 가운데 원놀음을 했다. 원놀음의 목적은 죄인으로 지목된 이가 제공하는 술과 음식을 함께 즐기는 데 있었지만 마을의 풍년과 안녕을 비는 세시 행사의 성격도 갖고 있었고, 이웃 마을과 함께 어울리는 흥겨운 잔치가 되기도 했다. 과거 일종의 야외극적인 민중놀이들은 천민이나 상민층이 주가 되어 연행하였고 양반 계급은 관람조차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었다. 그러나 원놀음은 소위 '학식깨나 있는 사람' 즉 양반 출신 농민이 주최가 되었다. 원님의 역할을 수행할 만큼의 상당한 식자가 없으면 참여할 수 없었으니 배역의 지적 수준은 상당히 높았다고 볼 수 있다. 원놀음은 각본 없는 즉흥극이었다. 관중은 놀이의 과정에서 구사되는 용어와 언변과 익살과 유머에 감탄과 갈채를 아끼지 않았다.

원놀음은 약 400여 년 전부터 영양 지역에 전승되어 왔다고 한다. 그러나 그 기원에 대한 기록이나 유물은 전해지지 않는다. 다만 그 유래에 대해 영양군의 노인들이 한결같이 언급하는 설화가 있다. 조선 영조 때의 일이다. 영의정 이광좌가 어느 고을을 지나다 처녀 세 자매의 원놀음을 보게 된다. 첫째가 죄인, 둘째는 죄인의 아버지, 가장 어린 셋째가 수령이었다. 수령은 죄인에게 과년하면서도 출가를 하지 않고 부모에게 의지하고 있음을 신랄히 따졌고 죄인의 아버지에게는 부모의 의무를 소홀히 한 죄를 크게 꾸짖었다. 이 광경을 시종 엿본 이광좌는 즉시 그 지방의 수령을 통하여 처녀의 혼인을 주선해 주었다고 한다. 그로부터 영양에는 한가한 정초가 되면 원놀음이 성행되었고 과년한 처녀들은 남자들의 눈의 피해 은밀한 곳에 모여 놀기도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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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놀음은 농업과 관련된 내용을 주로 다뤘지만 차츰 확대 발전해 관의 부패상 등 사회 비판적인 내용을 담기도 하고, 때론 공공사업을 위해 연행되기도 했다. <영양군 제공>

◆원놀음의 전승과 단절

원놀음이 순수 오락으로 연행되었던 때에는 농업과 관계되는 것이 중심 내용이었다. 그러다 차츰 확대 발전한 후에는 백성의 억울한 사정을 들어 송사를 판결하는 과정을 흉내 내거나 관의 부패상을 극화시켜 표현하는 등 일종의 사회 비판적인 내용을 담기도 했다. 때로는 공공사업을 위한 자금을 모으기 위해 놀음을 벌이기도 했다. 이때는 마을의 원놀음에서 고을의 원놀음으로 그 규모가 확대되어 실제의 재판을 방불케 했다고 한다. 노인들에 의하면 영양에는 100여 개 부락이 산재해 있었고, 원놀음은 영양군 전역에 걸쳐 상연되었다고 한다. 그 가운데 가장 화려하고 대대적으로 연행한 곳은 일월면 주실마을과 영양읍이었다.

1899년과 1900년에 대규모의 원놀음이 있었다. 1899년에는 주실마을에서 문중과 관련된 암자인 연대암(蓮臺庵)의 보수를 위해 놀이가 벌어졌다. 놀이패는 풍악을 울리며 마을을 돌아다니며 놀이를 벌였고 사람들은 미리 돈과 곡식을 준비해 두었다가 대문 앞에서 건네주기도 했다고 한다. 원님 행세를 한 이는 역할을 아주 잘 수행해 '연대암군수'라는 별명을 얻었고, 이때의 놀이는 인근 고을인 진보의 군수가 이 놀이패를 초청해 동헌에서 공연하도록 할 정도로 명성이 자자했다. 1900년의 원놀음은 영양군의 청사 건립에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었다. 놀이에는 영양군의 적극적인 개입과 후원이 있었는데 주실마을과 인근 마을의 30~40대 청장년 60여 명이 동원되었으며 육방관속이 직접 주실마을로 가 놀이패를 지도했다고 한다. 나발을 불 사람이 없자 관속이 동원됐고 실제 사령 1명이 놀이패에 가담하기도 했다. 당일에는 풍악을 울리며 원을 앞세워 읍까지 행진하였으며 군수는 동헌을 비워주어서 공연케 하였다. 그때 호출된 죄인은 40여 명에 달한다. 대규모 원놀음은 이때가 마지막이다. 주실마을에서 청년들이 벌인 소규모의 원놀음은 1910년대까지도 행해졌지만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영양의 거리에서 "원님 행차시오~" 하는 신명 나고 왁자한 소리는 들을 수 없게 되었다.

영양 원놀음이 복원된 것은 1970년대다. 1974년 고증을 바탕으로 원님 행차와 원놀음의 내용을 구성했고 이듬해인 1975년에는 인원 확보가 용이하고 장기적 전승이 가능한 영양여고를 전승 단체로 선정했다. 이후 영양여고에서는 교내 축제인 '함박축제'와 영양군민체육대회에서 원놀음을 공연하면서 놀이를 전승했으나 2004년 중단되었다. 2006년에는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의뢰해 영양고추문화축제에서 마당극 형식의 원놀음을 연행했다. 이때 전통적인 원놀음과 달리 원님의 일탈을 다루는 등 변화를 시도하였는데, 연행의 완성도가 높고 관객의 반응이 좋아 영양원놀음은 지역의 문화자원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후 영양군에서는 지역의 자체 역량으로 체계적으로 원놀음을 전승할 수 있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 2007년 영양원놀음보존회가 구성되었다.

◆오늘날의 영양 원놀음

영양산나물축제, 조지훈예술제, 영양고추 H.O.T 페스티벌, 여중군자 장계향 문화축전 등 영양군에서 개최하는 축제는 참 많다. 이러한 영양의 축제들과 각종 행사에서 우리는 원놀음을 볼 수 있다. 풍물패를 앞세운 원님의 행차 소리를 들을 수 있고, 노랭이 영감이 곤장을 두들겨 맞는 짜릿한 모습도 볼 수 있고, 도둑으로 몰린 돌쇠가 현명한 원님 덕에 누명을 벗는 시원한 모습도 볼 수 있으며, 짝사랑만 하다 시집을 못 간 노처녀의 구구절절한 사연도 들을 수 있다. 그리고 마침내 "암행어사 출두요~"라는 외침과 함께 모두가 어우러진 한바탕 놀이판에 덩실덩실 어깨춤으로 동참할 수도 있다.

오늘날 영양 원놀음은 보존회를 중심으로 풍자와 해학이 섞인 공연 형태로 전승되고 있다. 발족 이후 매년 창립 시기를 전후로 정기발표회를 개최하고 있으며 연중 6회 이상 순회공연을 병행하고 있다. 또한 서울, 안동, 경주, 진주 등지에서 열리는 축제에 초청을 받아 공연을 펼치거나 일본과 호찌민 등 외국에서 영양 원놀음을 선보이기도 했다. 현재 영양원놀음보존회 회원은 총 21명이다. 대부분이 주부, 농부, 자영업자, 공무원, 건설업 등에 종사하고 있는 동네사람 또는 이웃이다.

류혜숙<작가·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연구위원>

▨참고=영양군. 성병희, 영양원놀음, 한국민속학회, 1971. 송석하, 한국민속고, 일신사, 1960.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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