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규완 칼럼] 브라운수소로 탄소중립을 말하랴

  • 박규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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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7-06  |  수정 2023-07-06 07:03  |  발행일 2023-07-06 제22면
대치동에만 1천609개 학원

초등생 선행학습에 충격

대통령의 문제 제기 타당

방법·시기·과정·대책은 부실

사교육 완화할 교육개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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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규완 논설위원

# 1960년대의 과외=초등학교 6학년 때였다. 담임선생이 넌지시 운을 뗐다. 과외비를 받지 않을 테니 과외 팀에 합류하라고. 당시 우리 반 학생 3명이 담임에게 과외를 받고 있었다. 담임선생의 의도는? 1등인 나를 포함시켜 과외 팀을 품새 나게 만들려는 포석 아니었을까. 부모님께 말씀드렸더니 단박에 "하지 말라"고 하셨다.

# 대치동 정경=1980년대 누나가 강남구 대치동 미도아파트에 살았다. 그때의 대치동은 여느 동네처럼 한적하고 평범한 아파트촌이었다. 그런데 웬걸. 지난해 우연히 들른 대치동은 사위(四圍)가 다 학원인 사교육 별천지였다. 대치동에만 1천609개(2023년 5월 기준·통계청)의 학원이 있다니. 거기서 극단적 선행학습의 현장을 목도했다. 초등 고학년생 몇 명이 영자신문을 보며 영어로 토론을 벌이는 장면은 충격적이었다.

# 사교육 망국병=가계의 사교육비가 식비와 주거비를 합친 것보다 많다니 '등골 브레이커'가 따로 없다. 사교육비 부담률 OECD 국가 중 1위, 2022년 사교육비 총액 26조원, 초·중·고생의 사교육 참여율 78%. '그레셤의 법칙'처럼 사교육이 공교육을 구축(驅逐)한 모양새다. 하여 윤석열 대통령의 문제 제기는 타당하다. 하지만 방법, 시기, 과정, 대책이 모두 부실하고 옹색했다.

# 입시 전문가의 탄생=대통령 발언이 즉흥적이란 비판이 나오자 충직한 신하들이 전문가 만들기 신공을 시전했다. "윤 대통령은 검사 시절 입시비리 수사를 했고 조국 일가 대입 수사를 지휘했으니 입시 전문가"(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 "나도 전문가이지만 대통령에게 많이 배운다"(이주호 교육부 장관). '봉숭아 학당'에서나 나올법한 코미디와 아부 근성의 절묘한 조합이다. 기실 대통령은 여러 분야의 전문가일 필요가 없다. 민본과 경세제민의 덕목에다 웅숭깊은 리더십을 갖추면 그만이다. 윤 대통령은 청약통장을 모르고도 대통령이 되지 않았나.

# 타이밍 난조=입시정책은 급조하면 안 된다. 숙고와 숙성의 시간이 필요하다. '수능 4년 예고제'를 도입한 것도 그 때문이다. 미국의 입학사정관제는 10년 넘게 찬반토론을 거치고서야 시행됐다. 수능을 5개월 앞두고 방향을 급선회하는 건 정책적 전횡이다. 세월호도 급변침하다 침몰하지 않았나.

# 헛다리 짚기=내용도 허접하다. 검찰이 야당 인사 압수수색하듯 전광석화로 만들어진 대책이니 튼실할 리 만무하다. 교육개혁의 밑그림과 청사진이 없고, 올 상반기로 예상됐던 2028학년도 대입제도 개편안 발표도 미뤄졌다. 수능 킬러문항 배제와 일타강사 때려잡기가 전부다. 공정거래위원회와 국세청 조사4국까지 나서서 호들갑을 떨어야 하나. 쇼잉(showing) 정치 냄새가 물씬 난다.

# 'SKY 캐슬' 깨야=자녀 입시를 겪은 학부모라면 정부 대책이 헛다리 짚기라는 걸 다 안다. 단가가 훨씬 센 학종, 학생부 교과, 논술시장은 어떡할 작정인가. 대통령 한마디에 수험생과 학부모의 혼란만 비등하는 형국이다. 사교육 카르텔을 깨겠다고? 학벌주의와 'SKY 캐슬'의 벽을 그대로 두고 가능하겠나. AI 시대의 인재를 양성하고 사교육 수요를 줄일 총체적 교육개혁이 절실하다.

브라운수소는 석탄이나 갈탄을 고온·고압에서 가스화해 수소를 추출하는 방식이다. 생산 과정에서 이산화탄소가 많이 발생한다. 그러니 친환경에 역행한다. 정부의 임시변통식 사교육 대책은 브라운수소로 탄소중립과 수소경제를 말하는 격이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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