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논설위원 |
고등 교육기관의 시원(始原)은 BC 387년 플라톤이 설립한 아테네의 '아카데미아'다. 아카데미아는 수학·천문학·철학 등의 교육을 통해 정치 지도자를 양성했다. 플라톤의 '철인통치' 이념을 실행했다. 엘리트주의에 경도된 까닭일까. 플라톤은 다수결 원칙의 민주주의엔 부정적 시각이 강했다. '폭민정치'라 비꼬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직접민주주의를 '다수 빈민의 정치'로 규정하며 스승을 옹호했다. 소피스트의 미혹과 말장난 또는 군중심리에 부화뇌동해 다수의 민중이 현명하지 못한 판단을 내릴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중우(衆愚)정치'란 말이 탄생한 배경이다.
국민이 중우로 보이는 걸까. 송상근 해양수산부 차관이 지난달 "천일염 품귀 및 가격상승은 4~5월 기상여건으로 생산량이 줄어 생긴 문제가 근본 원인"이라고 했다. 이 정도면 호도를 넘어 혹세무민이다. 대형마트의 텅 빈 매대를 본 소비자라면 천일염 사재기의 실상을 다 안다. 천일염 품절이 후쿠시마 오염수 때문이란 사실을 모르랴.
리투아니아에서의 김건희 여사 명품 쇼핑을 두고 대통령실이 블랙 코미디를 연출했다. 대통령실은 "호객 행위로 김 여사가 명품점에 들어갔지만 물건을 사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명품점이 호객 행위? 오픈런은 봤어도 명품점의 호객은 금시초문이다. 명품점 5곳을 들르고 경호원들이 가게 입구를 틀어막았다는 현지 언론 보도는 거짓이란 말인가. 쇼핑한 게 들통나자 이용 국민의힘 의원은 "리투아니아는 주력산업이 섬유·패션이다. 김 여사의 옷가게 방문은 하나의 외교"라고 윤색했다. 국민 정서를 농락하는 궤변이다.
서울~양평 고속도로 백지화는 또 어떤가. 7년간 추진해온 주민 숙원사업을 국토부 장관이 마음대로 뭉개버린다? 대한민국이 이런 무대뽀 국가였나. 군부독재 정권에서나 있을 법한 야만이다. 원희룡 장관은 판을 엎을 게 아니라 노선 변경의 정당한 이유를 설명했어야 했다.
예타를 통과한 원안이 뒤집혔고 변경된 노선 종점 부근에 김건희 여사 일가의 땅이 있다면 합리적 의심이 드는 게 당연하다. '누가, 왜, 어떤 절차'로 변경했는지를 규명해야 한다. 민주당의 거짓선동이라면 이 또한 밝혀질 것이다. 국정조사든 검찰이나 특검 수사든 감사원 감사든 가릴 계제가 아니다. 특히 감사원의 분발을 기대한다. 전현희 전 국민권익위원장 근태 같은 쪼잔한 사안에도 메스를 댄 감사원 아니었나.
막말 DNA도 만만찮다. 검사 출신 박인환 경찰제도발전위원장은 "70% 이상의 국민이 문재인이 간첩이란 걸 모르고 있다"고 말했다. 박 위원장에겐 '그 70%'가 중우로 보였을 터다. 후쿠시마 오염수나 사드 괴담보다 더한 막가파 곡설(曲說)이다.
정부·여당이 실업급여 하한액을 낮추거나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이 과정에서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 의장은 실업급여를 달콤한 '시럽 급여'로 희화화했다. '시럽 급여'라고? 우리 실업급여는 독일·프랑스·일본에 비하면 지급 기간도 짧고 지급액도 적다. '달콤한' 수사를 붙일 만큼 오달지지 않다.
현대시민은 고등교육으로 무장하고 SNS로 정보를 공유하는 '포노 사피언스(Phono Sapiens)'다. 미디어 리터러시를 갖춘 '깨시민'들이다. 이들이 중우(衆愚)일까. 아니면 기상천외한 언행으로 국민 염장 지르는 대통령 친위대원과 위정자들이 중우일까.
논설위원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