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요! 포항 전통시장 감성여행 .1] 죽도시장

  • 류혜숙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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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8-03 07:53  |  수정 2023-08-03 07:55  |  발행일 2023-08-03 제13면
"죽도에 없으면 아무 데도 없지요"…좌판엔 풍요로움이 가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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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죽도어시장에서 상인들이 동해에서 갓 잡아올린 해산물을 판매하고 있다. 죽도시장은 동해안 최대 규모의 전통시장으로 횟집·먹자골목, 건어물·식품·농산물 아케이드, 젖갈·식자재·대게 회·과메기 거리 등으로 촘촘하게 연결돼 있다.

포항은 동해안을 대표하는 관광 도시다. 바다와 강, 산과 계곡 등 천혜의 자연환경을 갖추고 있어 다양한 형태의 관광이 가능하다. 명승지 투어부터 등산, 트레킹, 캠핑, 해수욕은 물론 동해를 무대로 박진감 넘치는 해양 레포츠를 즐길 수 있는 만큼 사계절 내내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더욱이 포항 여행에는 재미를 더하는 중요한 요소가 있다. 바로 먹을거리다. 동해에서 갓 잡아 올린 신선한 해산물부터 과메기, 모리국수 등 특색있는 음식들이 여행객의 눈과 입을 즐겁게 한다. '보고 먹고 즐기는' 포항 여행의 삼박자를 제대로 즐기기 위해선 전통시장 투어를 빼놓을 수 없다. 전통시장은 단순히 상품을 매매하는 장소로서의 기능을 할 뿐만 아니라 우리네 삶의 터전이자 역사의 공간이기도 하다. 그 자체가 하나의 역사성을 지닌 명소인 셈이다. 영남일보는 오늘부터 '떠나요! 포항 전통시장 감성 여행' 시리즈를 6차례에 걸쳐 연재한다.

매일 새벽 어시장 경매로 하루 열어
이름 모를 해산물 지천으로 펼쳐져
회·과메기·수제비 등 먹자골목까지
농산물·전통시장 합쳐 거대한 규모
안내도 숙지해도 구역 맴돌기 일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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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죽도시장 입구는 언제나 많은 사람들로 북적인다.

대낮처럼 환히 불 밝힌 새벽 5시, 땡그랑 땡그랑 종소리 울린다. 경매 시간을 알리는 경매사의 종소리다. 장대를 쥔 경매사와 숫자가 적힌 모자를 쓴 수십 명의 중도매인들이 마주 서더니 깍듯하고 정중하게 인사를 나눈다. 그들 사이 바닥에는 문어들이 널브러져 있다. 곧장 경매사의 낮고 구성진 읊조림이 시작된다. 이를테면 '상품설명'일 터. 아무리 귀를 쫑긋해 봐도 경매사의 말은 귓바퀴만 스친다. 찰떡같이 알아들은 중도매인들의 옷깃이 들썩들썩, 깃으로 감춘 손들이 쥐락펴락 빨라진다. 순식간에 아! 하는 탄식이 들린다. 음, 하는 만족의 얼굴도 보인다. 흡사 매의 사냥이고 평원의 전투다. 죽도시장은 매일 새벽 수산물 경매로 하루를 연다.

◆바다가 하는 일, 사람이 하는 일

죽도시장은 동빈내항 깊숙이 자리한다. 내항에 각종 생선과 해산물들이 부려지면 곧장 코앞의 위판장으로 옮겨진다. 죽도시장의 바다 것들이 유독 '물이 좋은' 이유다. 이맘때 경매의 꽃은 바로 문어다. 작게는 400g에서 큰 것은 20㎏에 이르는 대형문어까지 다양하다. 경매인들의 눈치작전은 치열하고 찰나의 순간에 기쁨과 아쉬움의 승패가 교차한다. 살이 통통하게 차오른 큰 문어들은 순식간에 팔려나간다. 양이 적은 날에는 아무래도 값이 오르기 마련이다. "물에 든 건 알 수가 없거든. 바다가 하는 일을 어찌 알겠나. 오늘 잡았다고 내일 잡는다는 보장도 없고. 물속의 일은 알 수가 없어." 그러니 그저 오늘에 만족하고 내일을 기약한다.

경매가 끝난 위판장은 이제 좌판의 차지가 된다. 포항 연근해는 물론 전국 각지의 해산물이 착착 진열된다. 이름도 모르고 본 적도 없는 바다 것들이 지천이다. 전복은 소쿠리의 얼음 위에서 뒤집기를 시도하고 문어는 좌판을 탈출하려 용을 쓴다. 소라와 고둥은 탑처럼 쌓였다. 엄청나게 많고 다양한 해산물을 보고 있으면 바다의 풍요로움은 영원한 것처럼 느껴진다. 위판장은 좌판과 사람들로 가득해 떼꾼한 자리가 없다. 이 북적한 공간을 수레꾼은 숨도 쉬지 않고 "짐이야! 짐이야! 짐이야! 짐이야!"를 외치며 날쌔게 달리고 부릉부릉 얼음을 실은 오토바이가 쉴 새 없이 좁은 통로를 누빈다. 인사가 오가고, 흥정이 오가고, 돈이 오가는 동안, 토막 내고, 채 썰고, 포 뜨고, 껍질을 벗기는 여인들의 손은 잠시도 쉬지 않는다.

◆보고, 사고, 먹고, 해산물에 대한 모든 것

위판장 맞은편 포항수협 건물을 지나면 어시장에 닿는다. 대게, 홍게, 꽃게는 물론 독도새우, 꽃새우, 닭새우가 있고 참소라, 뿔소라, 나팔소라가 있다. 고등어, 갈치, 오징어, 문어, 낙지, 전복이 있고 가자미, 조기, 도루묵, 소라, 고둥, 멍게, 해삼, 가리비, 바지락 등 바다에서 나오는 모든 해산물이 펼쳐진다. 손질은 기본, 먹는 방법도 알려준다. 생물 문어는 물론 삶은 문어도 있고 손님들의 취향에 따라 다리만 판매하기도 한다. 생선가게가 문을 열 때 얼음가게도 문을 연다. 어시장 매상이 오르면 얼음집 매상도 오른다. 운이 좋다면 개복치 해체 작업을 볼 수 있다. 개복치는 포항의 전통 별미다. 이제는 죽도시장에서도 개복치를 취급하는 집을 찾아보기 힘들고 개복치를 해체할 수 있는 사람도 드물다. 몸길이 2m가 넘는 개복치는 부위별로 해체해 삶아서 먹는다. 개복치 삶는 날 시식까지 한다면 최고다. 더 운이 좋다면 상어를 해체하는 작업도 볼 수 있다. 진귀한 풍경에 사람들의 발걸음이 절로 멈춰진다.

아직 깜깜한 어시장에 일찍 불을 밝힌 가게도 있다. 손님도 상인도 없는 어시장에서 몇몇 할매들이 회를 썬다. 살아있는 회는 서울 시장에서 취급하지만, 서울 시장에서 쓰는 막회는 전부 죽도시장에서 올라간단다. 손질되고 포장된 참가자미와 숭어, 물가자미 따위가 오전 6시20분 차를 타고 서울로 간다. 강남터미널에 도착하는 시간은 11시 반. 곧바로 퀵 서비스 오토바이가 점심을 준비하는 식당으로 달린다. 그사이 죽도시장 횟집들도 손님 맞을 준비를 끝냈다. 수협 위판장을 중심으로 한 횟집 골목에는 200여 개의 횟집이 밀집되어 있다. 회를 먹을까, 물회를 먹을까. 혼자라도 회를 먹을 수 있고 초장값만 더하면 밥과 매운탕까지 맛볼 수 있다. 회도 물회도 포기할 수 없다면 일단 회를 뜬 다음 물회 양념을 추가하면 된다.

어시장 바깥쪽으로는 말린 생선을 파는 가게들이 늘어서 있다. 물가자미, 참가자미, 조기, 열기, 용가자미, 도루묵, 장어, 대구뽈, 민어, 미주구리 등 햇빛과 바닷바람을 맞은 것들이 짭조름하고 고소한 냄새를 풍긴다. 위판장과 휫집골목 사이에는 고래고기 골목이 있다. 고래고기는 부위별로 12가지 맛이 난다. 죽도시장의 고래고기 원조는 '원조할매고래'다. 1960년부터 가게를 열었으니 벌써 3대, 60년째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고래잡이는 불법이다. 이렇게 맛볼 수 있는 고래들은 모두 피치 못할 사정으로 그물에 걸린 녀석들이다. 가끔 신문이나 방송에 '밍크고래가 걸렸다'며 몸값이 소개되곤 하는데 그들의 다음 행선지 중 하나가 이곳이다. 오가는 사람도 많고 특이한 광경에 사람들의 시선도 맹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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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도시장에는 어시장 외에도 각종 곡식과 채소, 과실, 특용작물을 취급하는 농산물시장이 있다.

◆갈대 늪에서 동해안 최대 시장으로

죽도시장 하면 어시장, 회 타운, 건어물시장을 우선 떠올리지만 실제로 이 시장은 죽도시장, 죽도어시장, 죽도농산물시장 등 세 곳이 합쳐진 곳이다. 시장 면적이 약 15만㎢에 이르고 점포 수는 2천500개 정도 된다. 모두 25개 구역이 횟집골목, 건어물 아케이드, 식품 아케이드, 식자재 거리, 신선 닭, 젓갈 거리, 농산물 아케이드, 24시 대게 회 거리, 먹자골목, 과메기 거리, 수제비 골목 등으로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다. 수산물에서부터 농산물, 청과물, 죽세공품, 한복, 수예, 이불, 주전부리 등 이 세상에 존재할 만한 거의 모든 품목을 만날 수 있는 너른 장터다. 사람들은 '여기에 없으면 아무 데도 없다'며 으쓱한다.

죽도시장이 자리하고 있는 죽도동은 원래 섬이었다. 옛날 형산강 입구에는 대도, 상도, 해도, 송도, 죽도 등 5개의 섬이 있었는데 이 중 죽도는 늪지대로 갈대가 우거져 갈대섬이라고 불렸다. 죽도의 갈대밭에 하나둘 좌판이 모여 옹기종기 장터가 형성된 것이 1930년대부터다. 장터는 점점 덩치가 불어났고 6·25전쟁 직전에는 현재 죽도시장의 3분의 1 규모가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전쟁으로 시장은 거의 불타버렸다. 전쟁이 끝나고 복구가 시작됐다. 1960년대에는 구획정리사업이 전개되었다. 1969년 포스코가 들어서면서 시장은 엄청나게 커졌고, 1971년 11월 시장 허가를 받았다. 동빈내항이 동해안의 대표적인 항구로 포항 경제를 쥐락펴락하며 성장함에 따라 죽도시장은 경북 동해안과 강원도 일대의 농수산물이 집결하고 유통되는 요충지가 되었다. 2000년대 들어서는 아케이드를 설치하는 등 시장 현대화에 많은 공을 들였고 2015년부터는 청정 해수 공급 시설을 가동하고 있다. 이런 발자취를 더듬어보면 죽도시장의 역사는 100년 가까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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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에서 잡은 해산물은 동빈내항을 통해 죽도어시장 위판장으로 옮겨진다.

지금도 죽도시장은 동해안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전통시장이고 포항을 찾는 관광객이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관광명소다. 특히 매 주말이나 명절 시즌 또는 포항에서 큰 축제가 열릴 때면 죽도시장을 둘러싼 길은 북새통이 된다. 시장 내외부에 크고 작은 주차장들이 있지만 북새통에 얽히고 싶지 않다면 조금 떨어진 오거리공영주차장이나 평화주차장 등을 이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죽도시장은 거대하다. 주먹 꽉 쥐고 집중해서 안내도를 숙지하여도 두세 구역만 맴돌거나 주차장을 찾지 못해 헤매기 일쑤다. 죽도시장의 에너지는 압도적이다. 설렁설렁 한량으로 돌아다녀도 어느 사이 대퇴근에 열기가 솟는다.

글=류혜숙〈작가·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연구위원〉
사진=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참고=포항시. 국내시장백과. 한국지명유래집.
공동기획 : 포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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