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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1일 대구 중구 대안동 쪽방촌의 한 여인숙 내부. 1평 남짓한 좁은 방 안은 환기가 되지 않아 한증막을 방불케 했다. |
"에어컨은 바라지도 않아요. 냉장고라도 있으면 얼음이나 몸에 갖다 댈 텐데…."
늦더위가 기승을 부린 지난 21일 오후 2시쯤 대구 중구 대안동의 한 여인숙. 3.3㎡(1평) 남짓한 좁은 방에서 김현우(43)씨가 연신 이마 위로 흐르는 땀을 닦아냈다. 창문이 없는 방은 환기가 되지 않아 마치 한증막을 방불케 했다. 낡은 선풍기 한 대로 올여름을 버텼다는 그는 끝날 듯 끝나지 않는 더위가 야속하기만 하다.
김씨는 "선풍기를 틀면 딱 3분 동안 시원하다. 이후부터는 더운 바람만 나온다"며 "해가 뜨면 방 안에 있는 것조차 힘들다. 더위를 피해 지하철이나 인근 공원으로 나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씨가 거주하는 여인숙에는 모두 20가구가 살고 있지만, 에어컨이 설치된 세대는 3곳뿐이다. 20가구가 단 하나의 전력량계로 버티고 있는 등 열악한 전기 설비 탓이다. 추가로 에어컨을 설치하려고 해도 낡은 전력량계가 버텨내지 못한다. 전기 설비를 바꾸는 공사 비용만 1천만원에 달해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 혹여나 전기 누전으로 인한 화재가 발생할까 봐 거주자들은 여름 내내 노심초사하고 있다고 했다.
여인숙을 운영하는 박은수(73)씨는 "대구시에서는 에어컨을 보내주는데, 낡은 전력량계 때문에 정작 달 수 없는 실정"이라며 "이동식 에어컨도 창문이 없는 쪽방촌에선 공간만 차지할 뿐 무용지물"이라고 털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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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방촌의 샤워 공간. 개방된 공간에 호스 하나가 전부다. |
쪽방촌에선 남들 다 하는 샤워도 사치다. 이곳 20가구의 샤워 시설은 야외에 있는 호스 하나가 전부다. 오가는 사람들이 훤히 볼 수 있는 사생활 노출 문제에 이어 무엇보다 세안 용품이 부족하다. 최근 세안 용품 가격이 오르면서 쪽방촌 주민들에겐 큰 부담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공용 세탁기도 세제값이 없어 사용하지 못할 정도다.
이곳 거주자들은 더위는 공원과 지하철에서, 씻는 것과 빨래는 쪽방촌 커뮤니티 공간인 '행복 나눔의 집'에서 해결한다. 대구쪽방상담소가 2017년 개소한 행복 나눔의 집은 쪽방 거주민을 상대로 생계지원, 상담, 의료·주거 서비스 등을 제공하고 있다. 올여름에는 3층 공간을 폭염대피소로 활용해 일부 온열 질환 위험이 있는 쪽방 주민을 대피시키기도 했다.
행복 나눔의 집 관계자는 "올 여름 유독 무더위가 기승을 부려 쪽방 거주민들에게 얼음물을 매주 두 차례 가져다 주고 있다"며 "전력량계 개선과 같은 쪽방 거주민들이 현실적으로 필요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글·사진=박영민기자 ympark@yeongnam.com

박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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