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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서 공연된 뮤지컬 '시카고'의 포토존. 노진실 기자 |
"세련되면서도, 매우 신랄한 한편의 '쇼'(Show)였다."
지난 26일 저녁, 대구 계명아트센터에서 만난 뮤지컬 '시카고' 이야기다. 공연 시작 전부터 포토존 앞은 기념사진을 찍기 위한 관객들로 북적였다.
"오늘 여러분은 살인과 탐욕, 부패, 폭력, 사기, 간통 그리고 배신이 가득 담긴 이야기를 감상하게 될 겁니다. 우리 모두가 매우 소중하게 여기는 것들이죠." 유명한 첫 대사와 함께 공연이 시작됐다.
배경은 1920년대 미국 시카고. '따뜻한 감동은 무슨, 우린 그런 것 따윈 없어. 차가운 웃음만 남을 거야.' 처음부터 직설적으로 알려주는 듯한 대사와 함께 관객들은 한편의 쇼로 들어간다.
벨마 켈리가 등장해 관능적으로 '올 댓 재즈(All That Jazz)'를 부르며 춤을 춘다. 벨마 역을 맡은 로건 플로이드는 긴 팔다리로 시원시원한 춤사위를 선보인다. 그리고 록시 하트가 어이없는 짓을 저지르면서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전개된다.
록시 역의 케이티 프리든은 최근 영남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말했듯 충동적이고 엉뚱한 록시를 자신만의 스타일로 잘 그려내고 있었다. 특히 대표 넘버 '록시(Roxie)'를 부를 때의 그 광기 어린 춤이 매력적이었다.
'품위는 어디로 갔나'라고 외치는 벨마와 마마 모튼의 넘버(Class) 가사처럼, 작품은 시종일관 세상을 신랄하게 내보이고 비웃는다. 벨마와 록시를 둘러싼 인물들도 각각 개성있는 연기로 관객에게 유머와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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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시카고'의 한 장면. 신시컴퍼니 제공 |
아무래도 영어로 공연되다 보니 원작의 뉘앙스가 대사에 잘 살아있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관객 중엔 외국인이 적지 않았다. 오리지널 내한 공연의 경우 '자막'이 고민일 수 있는데, 이번 작품에선 한국어 번역 자막의 글자 크기와 서체에 변화를 줘 대사의 뉘앙스를 잘 전달할 수 있도록 한 점이 눈에 띄었다.
무대 중앙에 위치한 밴드의 라이브 연주는 시카고의 클럽에 온 듯한 기분이 들게 했다. 이번 공연에서도 관객들은 큰 박수와 함께 마지막 넘버를 즐겼다.
시카고는 전세계적으로 오랫동안 공연돼 온 그야말로 '스테디셀러' 뮤지컬이다. 대구에선 다음 달 3일까지 시카고 오리지널팀의 내한 공연이 열린다. 이번 공연팀은 시카고의 브로드웨이 공연 25주년을 기념해 결성됐으며, 북미 51개 도시 투어를 끝내고 우리나라를 찾았다.
스테디셀러 작품을 리뷰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관객들의 취향이 저마다 다르고, 여러 번 작품을 접한 관객 중엔 평론가의 경지에 이른 이들도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영화 '시카고' 속 캐서린 제타 존스의 벨마와 르네 젤위거의 록시를 무척 좋아하나, 국내외 뛰어난 뮤지컬 배우들이 연기한 서로 다른 매력의 벨마와 록시를 보는 것도 즐거움이다. 로건의 벨마와 케이티의 록시처럼.
"세상은 모두 쇼"라는 시카고 속 대사가 있다. 여러 쇼 중 어느 쇼가 최고였느냐는 저마다의 취향과 스타일에 달린 일.
정답은 없다. 다만, 대구에서 공연 중인 오리지널팀의 시카고는 신선함과 노련함이 잘 어우러진 한편의 멋진 쇼였다.
노진실기자 know@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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