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요! 포항 전통시장 감성여행 .3] 영일대북부시장

  • 류혜숙 작가
  • |
  • 입력 2023-08-31 07:41  |  수정 2023-08-31 07:41  |  발행일 2023-08-31 제13면
신선도 끝판왕 막회의 유혹…집어등처럼 불 밝힌 미식 골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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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에서 가장 오래된 전통시장인 영일대북부시장에는 점포들과 골목 사이의 가게들, 노점과 주택들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있다.

영일대북부시장은 포항에서 가장 오래된 시장이다. 주변으로는 오래된 저층 아파트와 주택들이 우세하지만 동쪽으로 동빈내항이 지척이고, 남쪽으로는 중앙상가와 죽도시장이 잰걸음으로 10분, 북쪽으로는 영일대 해수욕장이 느린 걸음으로 20여 분 거리다. 포항 도심의 주요 관광지와 쉽게 연결되는 요지이자 동시에 주거단지와 밀착되어 있는 시장이 영일대북부시장이다. 그래서 동네 주민들은 오늘의 식재료나 생필품을 구입하기 위해 이곳을 찾고 관광객들은 포항의 특산물이나 영일대북부시장만의 특별함을 좇아 이곳을 찾는다. 영일대북부시장 간판에는 '등푸른막회 특화거리'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금세 알 수 있다. 무엇이 이곳만의 특별함인지.

죽도보다 6년 빠른 포항 最古 시장
'막회 특화' 전략으로 상권 재도약
줄낚시로 잡은 등푸른생선만 고집
베테랑상인 손맛 더해져 전국적 명성
어부 선상 식사 '물회'도 첫 상품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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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일대북부시장 인근에는 지역 대표 관광 명소인 영일대해수욕장이 있다.

◆포항에서 가장 컸던 시장

골목으로 들어선다. 옛날 시장 분위가 물씬 난다. 가게가 곧 집인 자그마한 점포가 많이 보이고 그보다 조금 더 규모가 있는 상가형 주택이나 적산가옥도 이따금 눈에 띈다. 영일대북부시장은 골목형 시장이다. 시장 안 점포들과 골목 사이의 가게들, 그리고 노점과 주택들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있다. 색색의 우산들과 천막들로 오색의 그늘이 드리워진 골목이 있는가 하면 천장 높은 덮개가 있는 광장형 구역도 있고 아케이드가 걸쳐진 상가도 있다. 종합 안내도를 보면 전체 시장은 A부터 G까지 몬드리안의 그림처럼 구획되어 있다. 표기된 가게 이름은 128개지만 체감으로는 수백 개는 될 듯하다. 어물전, 채소전, 과일전, 건어물전 등의 분류는 없지만 어느 정도 구분되어 있는 모양새다. 가장자리로는 대체로 2층 건물들이 조용히 이어지고 간간이 3층 정도의 건물이 덧니처럼 솟아 있다.

영일대북부시장은 북구 대신동(大新洞)에 자리한다.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이 진출해 공장을 설립하면서 새롭게 일어난 신흥마을이라 대신동이라 했다. 아주 흥성했을 것 같지만 광복 직후에도 일대는 상당 지역이 각종 채소밭이었다고 전한다. 1953년 6·25전쟁이 끝나고 형산강 일대에는 난전들이 들어섰는데, 영일대북부시장도 그 무렵에 형성되었다. 시장은 1955년 북부공설시장으로 처음 이름을 갖췄고 이후 10년 넘게 노점과 난장으로 펼쳐지다 1965년 2월에 상설시장으로 정식 개설됐다. 상설시장 개설은 죽도시장보다 6년이나 빠른 것이어서 당시 상권의 위상을 짐작할 수 있다.

당시 인근에는 학교와 주택들, 포항 시청사와 주요 행정기관들이 포진해 있었다. 동빈내항을 드나드는 소형 어선들은 잡은 물고기를 북부시장에 내다 팔았다. 행정타운 입지의 후광도 두터웠지만 동빈내항을 통한 싱싱한 해산물의 즉석공급은 포항 주민은 물론 전국의 관광객들을 불러 모았다. 한 횟집주인은 말한다. "1978년도에 처음 북부시장에서 횟집을 열 때만 해도 새벽이면 수산물을 사려는 인파로 골목이 늘 붐볐지. 당시 죽도시장엔 새벽시장이 없었거든. 오히려 북부시장 쪽이 훨씬 활기가 넘쳤어." 그렇게 1970년대에서 1990년대에 이르는 동안 북부시장은 최고 전성기를 누렸다. 북부시장이 '영일대북부시장'으로 명칭을 바꾼 것은 2017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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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일대북부시장은 물회와 등푸른생선을 활용한 무침회로 유명하다.

◆등푸른 막회 특화 거리

시장은 어판장을 거치지 않고 바로 부려진 싱싱한 생선들이 사철 넘쳤다. 잡어와 신선도가 생명인 등푸른 생선은 여인들의 손을 거쳐 즉석 회로 만들어졌는데 그것이 바로 막회와 물회다. 처음에는 막회를 썰어 팔던 반 평 남짓한 난전들이 성업을 했다. 막회 중에서도 특히 '등푸른막회'의 원조라 할 수 있는데 청어, 꽁치, 전어, 방어, 멸치 등 '등푸른 생선'을 활용한 무침회다. 다른 지역에서는 여간해서는 보기 드문 음식으로 조금만 신선도가 떨어져도 금방 비린내가 나기 때문에 산지가 아니면 회로 즐기기가 매우 어렵다. 1980년대에는 활어와 고추장, 그리고 물로만 맛을 낸 물회 집이 번창했다. 물회는 인근 바다에서 조업하던 어부들이 식사 시간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잡은 생선을 대충 썰어 고추장과 물을 부어 단숨에 들이켜던 선상 음식이었다. 그 물회를 처음으로 상품화시킨 곳이 바로 영일대북부시장이다. 그래서 포항 하면 물회, '포항물회' 하면 '영일대북부시장'이라 입을 모은다.

30년 넘게 포항 북부 상권의 중추를 담당하던 영일대북부시장은 2006년 포항 시청사가 남구 대잠동으로 이전하면서 급격히 쇠퇴하기 시작했다. 2000년대 들어 급속한 인구의 감소와 대형마트의 등장, 신도시의 개발도 시장 쇠락의 중요한 원인이었다. 급격한 상권의 위축 속에서 생존전략으로 등장한 것이 '등푸른 막회 특화거리'다. 영일대북부시장의 등푸른 막회는 주로 줄낚시로 잡은 생선을 고집한다. 그물로 잡은 것에 비해 생선의 몸에 상처가 거의 없어 막회를 하든 물회를 하든 당연히 식감과 신선도에 있어서 차이가 난다. 특히 계절 따라 다양한 '등푸른 막회'가 제공된다. 겨울에는 주로 청어로 막회를 낸다. 막회 위에 양파나 쪽파를 고명으로 올리기도 하고 미역 등 해초류를 얹는 등 조금씩 차별화를 두고 있다. 여기에 초고추장을 빙빙 두르고 버무려 먹는다. 밥과 매운탕도 함께 제공된다. 막회에 물만 부으면 물회다. 물회, 막회가 모두 생선회를 막 썰어내는 공통점이 있지만 물회는 일종의 식사 개념으로 사발에 담아내고, 무침회 성격의 막회는 주로 안주로 먹기 때문에 접시에 담아낸다. 무침회는 술안주로도 좋지만 찬밥을 비비거나 국수를 훌훌 말면 한 끼 식사로도 충분하다.

이곳 좌판과 식당 등은 자연산과 양식을 확실하게 구별하고 있으며 또한 절대 바가지요금이 없는 곳으로 탄탄한 신뢰를 얻고 있다. 특히 등푸른 막회 특화거리는 백종원의 3대 천왕, 수요미식회, 생생정보통 등의 TV 프로그램에 소개되면서 전 국민에게 영일대북부시장만의 미식(美食)으로 각인되었고, 2019년과 2020년에는 농림축산식품부가 주최한 '외식업 선도지구 경진대회'에서 연속 장려상을 수상했다. 장려상 수상은 포항 등푸른막회 외식업지구가 지역사회와 상생협력, 고객중심의 우수 외식업지구로 방향을 설정해 2018년부터 지금까지 노력을 집중해온 결과다.

시장의 한가운데에 너른 장옥이 있다. 이곳에는 반 평 남짓한 난전에서 막회를 써는 엄마들이 빼곡히 모여 있다. 엄마들은 영일대북부시장이 전성기를 구가했던 30년, 40년 전부터 지금까지 막회를 썰어온 베테랑이자 달인들이다. 고객의 선택이 끝나면 긴 세월의 실력이 근육으로 굳은 손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팔딱거리는 생선을 한 손으로 잡고 칼등으로 땅 내리쳐 기절시킨다. 녀석이 정신을 잃은 순간 대가리가 잘려 나가고 내장이 제거되고 껍질이 벗겨진다. 뽀얗게 남은 속살이 깨끗하게 물 샤워를 마치면 식감 좋게 썰고 짤순이로 물기를 뺀다. 꼬들꼬들해진 회는 숙성지에 한번 쌌다가 나무 박판지로 다시 한 번 더 싼다. 그리고 목적지의 거리에 따라 얼음을 채워주고 잘 손질해 놓은 싱싱한 채소를 함께 포장해 준다. 보통 정성이 아니다. 회는 포장해 갈 수도 있지만 장옥 한쪽에 마련된 고객 쉼터에서 바로 맛볼 수도 있다. 회 써는 몸놀림 외에는 숨 돌릴 틈 없이 살아온 엄마들의 허리는 모진 세월을 보여주듯 휘었지만, 천장에서 달랑거리는 둥근 간판 속 엄마들의 캐리커처는 '엄지 척' 하며 활짝 웃고 있다.

글=류혜숙〈작가·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연구위원〉
사진=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 참고=포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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