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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승규 사회부 차장 |
폐쇄회로(CC)TV는 흔히 방범, 감시, 화재 예방 등 안전을 위해 설치한다. 사람이 많이 다니는 번화가 같은 곳과 범죄 다발 지역, 건물 내·외부, 군부대, 엘리베이터 등에서 볼 수 있다. 범죄 발생 시 결정적인 증거가 되기도 하지만, 간혹 사생활 침해 논란도 제기된다. 대한민국에서는 강력 범죄에 대처하고자 CCTV를 증설하는 방향에 무게가 실려 있다. 학교는 폭력 발생 등의 문제로 구석지거나 으슥한 곳을 위주로 CCTV와 함께 경보벨을 설치하는 경우가 많다. 도서관은 공부하러 오는 학생이 가져오는 귀중품 때문에 CCTV 설치에 적극적이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설치 논쟁이 오갔지만 최근엔 CCTV 없는 도서관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이 CCTV가 오는 25일부터 의료기관 수술실에 의무적으로 설치 운영된다. 의무화법 때문이다. 하지만 의료계와 환자 단체는 법을 둘러싸고 끊임없이 충돌하면서 시행 초기 혼란이 불가피해 보인다. 의료계는 의료인의 기본권 침해를 이유로 헌법소원을 제기했고, 환자단체는 CCTV 영상 보관 기간이 짧아 실효성이 떨어진다며 맞섰다. 이 법은 유예기간 2년을 거쳤다. 법에는 환자 의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수술을 진행하는 의료기관은 수술실에 CCTV를 설치해야 하고, 환자나 보호자가 요청하면 수술 장면을 촬영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법은 세계 최초 시행이다. 예외 조항도 있다. △응급 수술을 시행하는 경우 △위험도 높은 수술을 시행하는 경우 △전공의 수련 등 목적 달성을 현저히 저해할 우려가 있는 경우 등에는 의료기관의 장이나 의료인이 CCTV 촬영을 거부할 수 있다.
왜 이러한 법이 생겼을까. 2016년 9월8일, 서울 한 성형외과에서 안면윤곽 수술을 받던 고 권대희씨는 과다출혈을 일으켰다. 그리고 대학병원으로 옮겨진 지 49일 만에 사망했다. 향년 25세. 권씨 사망 전후 촬영된 수술실 CCTV에는 충격적인 장면들이 찍혀 있었다. 집도의는 수술 도중 다량 출혈이 일어난 권씨를 간호조무사에게 맡기고 수술실을 비웠다. 다른 환자를 수술한다는 게 이유였다. 권씨 출혈 원인과 출혈 부위를 확인했다면, 그날 결과는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이 사건을 계기로 수술실 CCTV를 의무화하는 이른바 '권대희법'이 생겼다. 집도의가 아닌 의료진이 수술을 이어가는 이른바 '대리 수술'을 막겠다는 복안이다. 이 의사는 반드시 처벌받아 마땅하다. 처벌이 가볍다면 그것은 입법·사법부에서 제대로 처벌받도록 하면 된다. 솜방망이 처벌이라고 목소리를 높이면서 과연 제대로 된 방망이를 만들려는 노력은 얼마나 했는지 되묻고 싶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의사와 환자 간 신뢰 회복이다. 수술 과정에서 중대 의료사고나 무자격자에 의한 대리수술, 환자의 동의 없는 수술 의사 변경과 같은 부정의료행위는 상급종합병원에서는 비교적 드문 게 사실이다. 의사들은 소명 의식을 가지고 소임에 온 힘을 쏟고 있다. 여기에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당하는 불쾌감까지 더해져 거부감이 그 어느 때보다 높다. 문제를 막고자 수술실에 CCTV를 의무적으로 도입하는 것보다 선진국처럼 의사 라이선스에 대한 규제 등을 통해 해결하는 것이 보다 바람직하다. 병원 수술실 CCTV 설치 예산으로 안전한 수술실 환경을 조성하는 게 더 나을 수도 있다는 게 상급 종합병원들의 의견이다. 더 늦기 전에 범정부 차원에서 CCTV 설치 의무화에 대한 득실을 따져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회적으로 더 큰 혼란이 야기될 수 있다.강승규 사회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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