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일 칼럼] 대구 근세 100년 최대 사건은

  • 박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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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9-25  |  수정 2023-09-25 06:59  |  발행일 2023-09-25 제22면
1905년 대구역 등장 이후
대구, 내륙 거점도시로 성장
근세 100년을 관통한 사건
교통 사회간접자본의 위력
[박재일 칼럼] 대구신공항 100년 미래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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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실장

포럼 발제자로 나온 대구정책연구원의 오동욱 박사가 참석자에게 물었다. "20세기 근세 100년간 대구에서 벌어진, 역사적으로 가장 임팩트(영향력)한 사건이 무엇이라 생각하느냐?" 나는 박정희와 대구 달구벌대로, 이런 것을 떠올렸다. 그는 의외였다. 1905년 대구역(驛) 개통을 꼽았다. 대구는 정확히 1601년부터 경상도 수도(감영)였지만, 19세기 말까지 인구 5만명의 군소도시에 불과했다. 중국과 만주로 진격할 배후기지란 일제의 노림수가 있었겠지만, 경부선 부설과 대구역의 등장으로 대구는 내륙 거점도시로 비약적 발전을 한다. 대구읍성을 허문 북성로는 화려한 거리로 변신했고, 인구는 상향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요즘 우리가 종종 그리워하는 서울-대구-평양의 한반도 3대 도시 구도가 마련됐다. 열차는 당시로써는 최첨단 신기술이었다. 대구역 100년 임팩트는 일견 고개가 끄덕여지는 분석이다.

어릴 적 동대구역이 막 들어선 지금의 동대구로를 버스를 타고 가다 처음 마주쳤다. 동대구역 규모를 놓고 정부는 극동 최대라고 자랑했다. 10차로 대로는 압도적이었다. 이후 첫 서울 나들이의 휘황찬란 종로 네온 거리나, 뉴욕 맨해튼을 대면한 경이로움도 그랬다. 앞서 대구역은 아담했다. 10·1항쟁 사진 속 그 건물은 백화점 몰에 사라졌지만 한동안 대구의 출입구요 광장이었다. 근대사를 관통해 온 대구역은 동대구역에 그 자리를 내어줬다.

역(驛)은 도로, 교량과 함께 사회간접자본( SOC·Social Overhead Capital)으로 불린다. 로마 가도가 로마 제국을 구축했듯 인간 문명발달사를 좌우해 왔다. 20세기 초, 조선의 SOC혁명이 철도였다면 21세기의 그것은 무엇일까. 아마 에어포트(Airport)일 게다. 항공은 여전히 과학기술 최전선의 산물이다. 이제는 드론, 무인기까지 가세하면서 그 영역을 무한 확장한다. 영화 제5원소처럼 미래는 하늘을 나는 자동차가 가득할 게 틀림없다.

대구는 오래전부터 신공항을 갈망했다. K2 군(軍)기지를 벗어난 독자적 민간공항을 원했다. 영천 금호들판이 한때 거론됐다. 그러다 K1의 김해공항 대체를 꿈꾸던 부산과 영남권 신공항에 올인했다. 대구는 밀양을, 부산은 가덕도를 밀어붙이다 무산됐다. 이명박 박근혜 두 정권에서다. 우여곡절 끝에 가덕도와 대구경북신공항 특별법이 각각 통과됐다. 양 지역은 각자의 길로 가게 됐다. 경쟁구도다.

공항의 성패는 접근성이 1순위다. 도심에서 가까울수록 좋다. 택시를 타고 100달러(13만원) 이하여야 한다. 그건 50㎞ 이내다. 60~70㎞ 이격의 군위·의성은 그래서 약간의 아쉬움이 없지 않다. 군위의 대구편입으로 신공항 명칭은 '대구국제공항'이 된다. 논란을 없앴다. 다른 유리한 점도 있다. 현 대구국제공항은 코로나 직전까지 엄청난 성장 가능성을 보였다. 김해공항의 10분의 1도 안 되던 이용객을 40% 수준(450만명)으로 끌어올렸다. 국제노선 확보는 공항 위치 이상으로 중요하다. 신공항 건설에서 물리적 이점도 있다. 바다 위에 활주로가 걸쳐진 가덕도는 파리공항공단 엔지니어링의 진단대로 '자연적 입지'는 아니다. 대구공항 활주로가 먼저 선보일 수 있다. 공항을 건설한 뒤 K2부지를 후속 개발하는 '기부 대 양여방식'은 이런 점에서 전화위복이다. 어쩌면 신공항은 '미래 대구 100년'의 가장 임팩트한 사건이 될지 모른다. 희망을 가져볼까 한다.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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