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과 창] 기억의 왜곡을 성찰함

  • 김살로메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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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9-27  |  수정 2023-12-12 11:05  |  발행일 2023-09-27 제26면
저마다 각인된 이미지들의

파노라마 어디까지가 진실

기억의 실체가 상대의 안위

생존과 밀접관계가 있다면

얼마나 조심스러울 것인가

[시선과 창] 기억의 왜곡을 성찰함
김살로메 소설가

인간은 기억을 왜곡하고 조작한다. 선택적 기억을 일삼는 데다 그마저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가공한다. 의도해서가 아니라 그냥 그렇게 살도록 세상에 던져졌다. 모든 기억은 진실을 담보하기보다 자기합리화를 지향한다. 그리하여 더러 무죄한 상대는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기도 한다. 스테디셀러 줄리언 반스의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는 이러한 인간 기억의 속성과 파장에 대해 성찰한다.

자신만의 시각을 버리지 못하는 우리는 전적으로 옳거나 그를 수가 없다. '양쪽 말은 다 들어봐야 한다'고 했을 때 그 양쪽의 말 모두 진실인 것도 있고, 아닌 것도 있는 것과 같다. 각각의 개성만큼 지질함과 구차함을 안고 사는 게 사람이며, 그럴수록 인간의 운명은 꼬이기 마련이다. 줄리언 반스는 기억의 왜곡이란 상황 설정을 통해 존재의 의문과 한계에 대해 알아보라고 다그친다.

주인공 토니는 왜곡된 기억의 변주로 주변 친구들을 죽음 또는 파국으로 치닫게 하는 인물이다. 크게 보아 작가는 '부정확한 기억이 불충분한 문서와 만나는 지점에서 빚어지는 확신'이 역사임을 뚫어본다. 출발부터 토니는 잘못되었다. 부정확한 토니의 기억은 모든 주변을 그의 편지 내용의 저주대로 만들어버렸다. 반대로 가혹한 진실 앞에서 정돈되지 못한 자신의 감정은 유리하게끔 가공하고자 했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므로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기억의 왜곡이 끼어들 여지는 충분했다.

허리께에서 수평으로 손을 흔들어 보이는 베로니카 엄마의 플러팅 앞에서 속수무책인 토니. 이조차도 기억으로 불러내게 된다면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가공될 터였다. 토니는 베로니카와 사귈 자신의 절친을 꿈에도 예감하지 못했고, 그 친구가 자신 때문에 자살하게 될 것 또한 전혀 예감하지 못했다. 자신이 생각해온 이미지보다 베로니카가 훨씬 괜찮은 여자임을 예감하지 못했으며, 자신을 비롯한 주변인들의 운명도 예감하지 못했다. 토니의 모든 저주가 이처럼 현실이 되리라고는 정말이지 예감하지 못했다. "좀처럼 이해를 못 하네. 아직도 전혀 감을 못 잡는구나"라고 말하는 베로니카의 일성 앞에서도 자신의 잘못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토니가 내레이터 역할을 수행하는 것도 이 책의 주제를 드높이는 데에 일조했다. 대개의 소설은 도덕적으로 완벽하고 환경적으로 객관적인 내레이터를 등장시켜 세태를 묘사하고 정황을 분석하는 방식을 취한다. 뻔해서 신선할 게 없는 이런 틀을 깨고, 어찌할 수 없는 솔직함을 장착한 토니를 소설의 해설사로 내세웠다. 독자라면 누구나 조금씩 토니가 되어 가기에, 몰입감을 선사하기 위한 최선의 장치로 보인다. 기억이란 얼마나 아름다운 거짓이며 무모한 진실이던가. 저마다 각인된 숱한 이미지들의 파노라마는 어디까지가 진실일까. 살면서 기억을 소환할 일이 생긴다면 우리는 과연 얼마만큼의 진실에 접근할 수 있을까. 기억의 조각배를 띄워 상대에게 나아갈 때마다 그 행위가 나를 위한 변명으로 둔갑하는 건 아닌지. 더구나 그 기억의 실체가 상대의 안위나 생존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면 얼마나 두렵고 조심스러울 것인가.

실수투성이에다 상처 많고 번민 깊은 토니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우리 자신이다. 있음 직한 보통의 캐릭터인 토니를 앞세워, 작가는 오염되기 쉬운 기억과 그 파장으로 엮인 인간 운명의 통점에 대해 묻고 또 묻는다. 추리 소설이자 반전 소설의 형식을 취했지만 인간 기억의 속성에 관한 서늘한 담론을 일깨우는 이 책을 미스터리처럼 붙잡고 있다.

김살로메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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