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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일현(시인·윤일현교육문화연구소 대표) |
항저우 아시안게임 400m 계주에서 우리 대표 선수들이 동메달을 땄다.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 이후 37년 만의 쾌거라며 모두가 흥분했다. 32세의 맏형 김국영 선수는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금메달 다관왕도 있는데 그 무슨 야단법석인가"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육상은 모든 운동의 기본이지만, 우리나라는 이 종목에 약하다. 일반적으로 육상 강국이 다른 스포츠에서도 두각을 나타낸다. 트랙 경기는 보는 사람이 숨 막히는 스릴을 느끼며 손에 땀을 쥐게 하므로 인기가 있다. 기록경기는 자신과의 고독한 싸움으로 인생을 닮고 있다. 달리기는 중간 과정도 중요하지만, 결승선을 앞두고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해야 한다. 선두 각축이 치열할 때는 마지막 1~2초 사이에 순위가 결정된다. 수능시험도 육상 트랙 경기와 비슷하다. 3년 혹은 그 이상의 시간을 달려왔지만, 최종 성적은 마지막 한 달 공부에 좌우되기 때문이다.
지난여름 대부분 재학생은 수시 지원 문제로 수능 공부에 몰입하기 어려웠다. 어수선한 상황에서 9월 평가원 모의고사를 쳤다. 성적이 잘 나오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모평의 충격을 겨우 다스리고 있는데 성적표가 나왔다. 여러 입시기관에서 정시 지원 배치표를 발표해 일부 학생은 실망감 때문에 학습 의욕을 상실하고 있다. 지금 고3 교실은 한없이 어수선하다. 공부보다는 엉뚱한 생각을 하는 시간이 많고 불안을 달래기 위해 친구와 떠드는 시간이 늘어난다. 귀 막고 공부하는 학생이 오히려 눈총받는 교실도 있다. 수험생들은 지금, 이 순간이 바로 승부처임을 알아야 한다. 트랙 경기를 할 때, 선수는 무아지경에서 앞만 보고 달려야 한다. 옆이나 뒤를 돌아볼 겨를도 필요도 없다. 지난 3년 혹은 그 이상의 시간을 수능 고득점을 위해 달려왔지만, 마지막 한 달 공부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
어떻게 할 것인가? 첫째, 심리적 안정과 자신감이 승패를 좌우한다. 현시점에서는 누가 좀 더 차분하게 마음을 가라앉히고 안정감을 유지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현 상황에서는 어떤 말이나 글도 수험생에게 궁극적인 위안과 마음의 평화를 주지 못한다. 하루하루 계획한 만큼의 목표를 반드시 달성해 성취감을 쌓는 것이 안정감과 자신감의 원천이 된다. 비행기는 날아야 떨어지지 않는다. 수험생도 매일 공부하며 '이렇게 하면 되겠구나'라는 확신을 가져야 심리적으로 무너지지 않는다. 일과를 시작할 때와 마칠 때 '나는 나의 목표를 반드시 달성할 수 있다'라고 긍정적인 자기암시를 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둘째, 적극적이고 도전적인 자세를 가져야 한다. 문제를 풀다가 즉시 해결되지 않으면 마음이 조급해져 끝까지 씨름해 보지 않고 답부터 보기 쉽다. 모를수록 악착같이 달려드는 적극성이 필요하다. 자신감을 가지고 공격적인 자세로 임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해결의 실마리를 찾게 되는 경우가 많다. 지금부터는 시간 안배에 신경 쓰며 결과는 생각하지 말고 문제 풀이 자체에 몰입하는 훈련을 해야 한다.
셋째, 마지막 순간까지 교과서적 기본 개념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상당수의 수험생은 문제 풀이 위주의 공부를 한다. 상위권은 어려운 문제를 많이 다루고 있다. 그러다 보면 기본적인 것을 무시하거나 잊어버리기 쉽다. 아무리 문제집을 많이 풀어도 교과서에 있는 기본 개념과 원리를 소홀히 하면 엉뚱한 곳에서 실수할 수 있다. 문제를 풀다가 확실하게 이해되지 않을 때는 교과서를 펼쳐놓고 주변을 폭넓게 정리할 필요가 있다. 교과서는 수능시험 준비를 위한 출발점이자 종착점이다. 넷째, 부모님은 자녀를 편안하게 해 주어야 한다. 아직도 감시·감독을 사랑과 격려라고 생각하는 학부모가 많다. 극성 학부모 밑에서 소심하고 소극적인 학생이 나온다. 부모는 낙관적이고 긍정적인 말로 자녀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어야 한다. 부모가 믿고 맡기는 자세를 보여줄 때 수험생은 강한 책임감과 자신감을 가지게 된다. 말보다는 무언의 몸짓이나 눈짓이 때로 더 효과적일 수 있다.
자연에서는 양이 축적될 때 질적인 비약이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 공부도 마찬가지이다. 학습량이 쌓이면 대개 시험 당일 비약적인 점수 변화가 일어난다. 수능시험이든 육상 경기든 선두 각축이 치열할 때는 '마지막 질주(last spurt)'에서 누가 좀 더 혼신의 힘을 쏟느냐에 따라 메달 색깔이 달라진다. 아시안게임 트랙 경기 결승 영상을 보면서 최후의 순간까지 최선을 다해 역주하는 선수들의 모습에 자신을 겹쳐보며 심기일전해 보자.
윤일현(시인·윤일현교육문화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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