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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
그 전화를 받았을 때는 대구 변호사사무실 방화사건이 일어난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물론 진짜 불을 지르겠나 싶었다. 그만큼 화가 났다는 뜻이겠거니, 하고 생각했지만 괜스레 '내가 기사 삭제 안 해서 아까 그 사람이 진짜 불 지르면 어떡하지?'하는 걱정이 됐다. 지금이야 '그때 사무실에 불 지른다는 전화 받은 일 있었다'하면서 회상 하지만 그 사람이 행동력이 좋은 사람이었다면? 아찔하다.
대중은 기자를 '기자'라고 생각할까. 마음 깊은 곳에는 '기레기'라는 낱말이 앞섰을 것이다. 만약 그 불을 지르겠다는 사람이 정말 불을 지렀고, 왜 그랬냐고 물으면 "먼저 잘 못 했다. 그래도 싸다"고 했을 것 같다고 넘겨 짚어본다. 정말 우리가 잘 못 한 걸까. 설령 잘 못했다고 해도 방화 협박을 듣거나 그런 류의 언어폭력에 시달려야 하는 게 맞는지 잘 모르겠다.
최근에도 불쾌한 전화를 받았다. 횡성수설 하며 "회사 몇 년 다녔냐" "그것도 모르냐" "사장 누구냐" 등 수화기 너머의 모욕적인 말이 그날 감정은 물론 업무에도 큰 악영향을 미쳤다.
우리가 재화를 들여 제품을 사거나 서비스를 받고 불만이 있을 때 고객센터 또는 민원센터로 전화를 건다. 그럼 녹음된 목소리로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고객응대근로자에게 폭언이나 욕설을 할 경우 처벌받을 수 있다" "고객응대근로자도 누군가의 가족이다"는 일련의 안내를 들을 수 있다. 취재원이나 독자의 답답하고 억울한 사연이나 보도에 대한 불만을 듣는 것 역시 고객응대 아닐까. 언론사 사무실도 일종의 민원센터인데, 기자를 포함한 언론사 직원은 필자의 경험처럼 전화상의 언어폭력에 노출돼있다. 취재원이나 독자, 민원인은 언론사 직원에겐 폭언이나 욕설을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걸까. '내가 이러려고 기자를 했나'하는 자괴감이 들 정도로 괴롭기만 한 통화였다.
박준상기자 junsang@yeongnam.com

박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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