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 확 불 질러 버릴까"…대구서도 폭언 등 '악성 민원' 매년 수백 건

  • 강승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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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3-10 13:05  |  수정 2024-03-10 13:37  |  발행일 2024-03-11 제6면
2022년 영남권 7천455건
제도적 장치 마련 절실해
악성민원
최근 경기 김포시청 앞에서 항의성 민원에 시달리다 숨진 공무원 A(39)씨를 애도하는 노제가 진행됐다.연합뉴스

대구 달성군에서 근무하는 30대 A주무관은 수년 전 다른 공공기관에서 근무할 때 일을 떠올리면 지금도 식은땀이 흐른다. 구비 서류를 갖추지 못한 민원인에게 접수가 불가능하다고 설명하자, 그는 막무가내로 "왜 안 되냐. 여기 사무실 확 불 질러 버릴까. 너 얼굴 망가뜨리겠다"라는 협박성 폭언을 쏟아냈기 때문이다. 다행히 동료들 덕분에 무사히 넘겼지만, 이후부턴 민원인을 상대하기가 부담스러워졌다. A주무관은 "당시 너무 공포스러웠다. 지금도 악성 민원인을 만날 때마다 트라우마에 시달려 몸과 마음이 지친다"고 했다.

같은 부서에 근무하는 B주무관도 비슷한 상황을 겪었다. 그도 "5~10분 간격으로 전화를 걸어와 민원 진행 상황을 일일이 파악하는 민원인이 간혹 있다"며 "그러면서 '공무원이 책상에 앉자 뭐 하냐' '국민 세금으로 월급 받는 공무원이 이렇게 해도 되느냐' 등 강압적인 발언으로 마음에 상처를 줬다"고 회상했다. B주무관은 "사실 공무원은 전 분야를 능숙하게 다루는 전문가가 아니다"며 "민원인도 이러한 부분을 이해해 주면 좋겠다"고 했다.

경기 김포시 한 공무원이 항의성 민원에 시달리다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남의 일이 아니다. 대구지역에서도 악성 민원 사건이 매년 수백 건씩 발생하고 있어 공직사회 제도적 장치 마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10일 행정안전부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민원인 위법 행위는 △2018년 1만8천525건 △2019년 2만5천548건 △2020년 2만6천86건 △2021년 2만7천133건 △2022년 2만6천685건이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권역별로는(2022년 기준) 수도권이 1만5천898건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경상권(대구·경북 포함) 7천455건, 충청권 2천840건, 강원권 363건, 전라·제주권 129건 순으로 집계됐다.

대구에서 공무집행방해와 공용물손상 등으로 입건된 사례는 △2019년 587건 △2020년 565건 △ 2021년 478건 △ 2022년 552건으로 파악됐다.

지난해 8월 공무원노동조합총연맹(공노총)이 실시한 '공무원 악성 민원 실태조사' 결과에서도 응답자 7천61명 중 84%(5천933명)가 "최근 5년 사이 악성 민원을 받아본 경험이 있다"고 답변했다.

악성 민원 대응 지침을 담은 '민원 처리에 관한 법률(민원처리법)'이 시행 중이지만, 구체적인 보호 방안이 없어 사실상 유명무실하다는 게 공무원들의 주장이다. 공노총은 지난 7일 성명을 내고 "악성 민원이 발생할 때마다 공무원 노동자 개인이 오롯이 감내하는 경직된 피해자 보호제도부터 당장 개선할 것을 강력히 요구해 왔지만, 악성 민원에 대한 전수 조사는커녕, 줄기차게 요구한 민원 처리 관련 제도 및 법령 개선도 차일피일 미뤘다"고 주장했다.

행정안전부는 악성 민원에 적극 대응하고자 인사혁신처, 국민권익위원회, 경찰청 등 주요 관계 부처를 비롯해 지방자치단체와 함께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고 운영할 계획이다.

TF는 온라인을 통한 모욕과 협박 등 민원인 위법행위의 주요 유형, 법적 대응 현황, 민원 응대 방식, 민원 공무원에 대한 인센티브 현황 등을 분석할 계획이다. 또 일선 민원 공무원과 관련 단체 및 전문가의 의견을 청취해 제도개선에 필요한 사항을 발굴할 예정이다. 관계기관과 제도개선 계획을 세우고, 관련 법령을 개정하는 등 민원공무원 보호를 위한 근본적인 대책도 마련할 방침이다.

허창덕 영남대 사회학과 교수는 "민원 부서 공무원은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다"며 "일선 지자체에서 적극적으로 악성 민원을 막을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 지역 사회 질서를 유지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경기 김포시 소속 9급 공무원 C씨(30대)는 지난 5일 오후 3시 40분쯤 인천시 서구에 주차된 차량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김포시는 C씨가 악성 민원으로 인한 심적 부담감으로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보고, 해당 온라인 카페 회원들을 경찰에 고발하기 위한 사전 절차를 밟고 있다.


강승규기자 kang@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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