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컬 窓] 의사 늘리면 필수의료 살아날까

  • 이준엽 대구시의사회 공보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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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12-08  |  수정 2023-12-11 15:58  |  발행일 2023-12-08 제27면

[메디컬 窓] 의사 늘리면 필수의료 살아날까
이준엽 (대구시의사회 공보이사·이준엽이비인후과 원장)

정부는 의사가 부족해 필수의료가 붕괴된다며 의사를 증원하겠다고 한다. 의사를 더 만들겠다고 하니 덩달아 지지율도 올라간다.

의사 증원을 주장하는 이들은 근거로 OECD 국가 대비 의사 수가 적다고 한다. 통계에 따르면 2021년 한국 의사는 인구 1천명당 2.6명이며 일본도 우리와 동일하다.

반면 의사가 가장 많은 나라는 그리스로 1천명당 6.3명, 2등은 포르투갈로 5.6명이다. 의사 수가 한국보다 2배인 그리스는 의료 선진국일까? 아니다. 접근성, 수준 모든 면에서 그리스와 한국은 비교 불가로 한국이 압도한다. 그리스뿐 아니라 유럽 의료의 접근성과 수준은 처참할 정도다. OECD에 따르면 그리스 국민은 의사 만나기가 정말 어렵다. 우리 국민은 연간 15.7회 진료 받는데 그리스는 연간 2.7회 진료 받는다.

그리스 의사는 한국 대비 3배 많은데 평균 진료 횟수는 17%에 불과하다. 한국 의사 연간 1인당 진료 횟수는 6천113회인데, 그리스 의사 1인당 진료 횟수는 428회이다. 그리스 의사는 하루에 2명 진료하는 셈이다. 의사가 하루에 2명 진료하니 그리스에서는 당일 진료는 상상도 못 할 일이고 암 환자는 순서 기다리다 악화하기 다반사다.

이는 국가별 의료 시스템 차이에서 기인한다. 한국은 국민에게 양질의 의료를 저렴하게 제공하기 위해 필수의료 가격을 정부가 통제한다. 단 국민들이 저렴하게 언제든지 의료를 이용할 수 있도록 내원 횟수에 크게 제한을 두지 않았기에 한국 의사들은 박리다매 진료로 낮은 수가를 상쇄하였다. 일본도 우리와 비슷하다.

그리스의 경우 의사가 열심히 진료해 환자를 많이 봐도 근무 강도만 높아지고 급여는 동일하니 환자를 많이 보지 않는다. 최대한 천천히 진료하는 것이 의료사고도 예방하고 근무 강도를 낮추는 방법이다 보니 유럽 의사들은 오히려 의사를 더 뽑아달라고 요구한다.

한국 의료가 세계 최고 수준인 이유 중 하나는 한국의사의 진료 및 수술 건수가 세계 최고 수준이기 때문이다. 국가가 의료비는 수가라는 항목으로 강제로 가격을 정해 둔 반면 유럽과 달리 한국 의사는 개인사업자로 의사 스스로 투자, 고용을 한다. 근무강도를 높여 환자를 열심히 보면 소득이 느니 노동 강도는 올라가도 진료에 매진한다.

즉 의사가 일을 많이 하니 통계에는 의사가 적어도 유럽과는 차원이 다르게 병원 가기 쉽고 수준 또한 높다.

그러나 저수가가 지속되면서 문제점이 수면 위로 노출되고 있다. 출산율이 높을 때는 박리다매 진료로 소아과가 유지되었다. 출산율 급감으로 소아 인구가 줄고 선의의 의료행위에 결과가 좋지 않았다고 과도한 형벌을 가하니 소아과 같은 필수의료 지원자는 없어지고 기존의 전문의마저 전공을 변경하여 필수의료 부족사태가 생기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의사를 증원해 봐야 미용으로 의사가 빠질 뿐 필수의료를 전공할 의사는 없으며 더욱이 국가가 가격을 고정시켜 놓은 제도하에서 의사 공급만 늘리면 필연적으로 의료비 총액은 늘고 이는 보험료 상승으로 국민에게 돌아온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급여 많고 위험 적은 분야를 선호한다. 이는 인간의 심리이고 이를 거스른 사회주의 국가의 말로가 어떠한지는 다들 알 것이다.

필수의료 수가를 적정수준으로 맞추고 선의의 의료행위에 과도한 형벌을 가하지 않는다면 필수의료를 떠난 의사들은 제자리로 돌아갈 것이다.

이준엽 (대구시의사회 공보이사·이준엽이비인후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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