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자리 잃은 대학교 총학생회…10명 중 7명은 총학 투표 안 한다

  • 조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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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12-09 09:00  |  수정 2023-12-09 09:44  |  발행일 2023-12-09
올해 영남대 총학 선거 투표율 35%…투표율 낮아 선거 무산되는 대학도
취업난·코로나19로 인한 비대면 투표 등 여러 요인 맞물려 무관심 심화
전문가들 "총학 소통 방식, 개별 학생과 직접 접촉하는 식으로 바뀌어야"
설 자리 잃은 대학교 총학생회…10명 중 7명은 총학 투표 안 한다
지난 2019년 실시된 영남대 총학생회 선거 모습. 조현희기자 hyunhee@yeongnam.com

"총학생회 선거가 치러지는 것을 선거 당일 학교에 와서 알았다. 주변에서도 학생회 활동을 하는 친구들 말곤 관심이 없는 분위기다."

대학가에서 학생 집단을 대표하는 기구인 '총학생회'(이하 총학)가 학생들의 무관심으로 설 자리를 잃고 있다. 총학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이들도 많아 '총학 무용론'까지 언급되는 상황이다.

지난달 28일 영남대 총학 선거는 최종 투표율이 35.80%로 집계됐다. 학생 10명 중 7명은 투표에 참여하지 않은 것. 투표율이 선거시행세칙 기준에 못 미쳐 선거가 무산되는 사례도 나온다. 지난달 19일 개표를 마감한 서울대 총학 선거는 투표율이 24.4%로 10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는데, 투표율이 과반이 넘지 않아 무산됐다. 지난 3월24일 경북대 총학 재선거도 투표율 37.44%로 과반 이상의 투표가 이뤄지지 못해 불발됐다.

이는 과거 총학의 전성기였던 1980~1990년대와 비교하면 상당히 다른 분위기다. 군사 교육단체인 '학도호국단'이 학생 대표 역할을 했던 시기에서 벗어나, 1986년 전국 대학에 총학생회가 출범하기 시작할 때에는 학생들의 호응이 열렬했다. 당시에는 학생회를 중심으로 학생운동이 진행됐는데, 학생운동 계파 중 'NL(민족해방) 계열'과 'PD(민중민주) 계열'이 서로 총학 권력을 잡기 위해 경쟁해 더욱 주목받았다.

1995년 동국대 경주캠퍼스에서 총학생회장을 지낸 배문석(51) 씨는 "1990년대에는 총학 선거가 이뤄지면 투표율이 기본적으로 70~80%는 나왔다. 후보들도 서로 학생운동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내세우며 뜨겁게 경쟁해 보다 관심을 받았던 것 같다"고 회상했다.

설 자리 잃은 대학교 총학생회…10명 중 7명은 총학 투표 안 한다
지난 2021년 대구 남구 계명대학교 대명캠퍼스에서 총학생회 관계자들이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추석 연휴에 귀향하지 않는 재학생들에게 즉석식품과 마스크 등이 담긴 추석 선물로 전달하고 있다. 영남일보DB

총학에 대한 무관심이 본격화된 건 1997년 IMF 이후부터다. 이는 IMF로 시작된 취업난·학생운동 약화 등 여러 구조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분석된다. 정병기 영남대 교수(정치외교학과)는 "김영삼 정부 말기 신자유주의 이후 취업 문제가 심각해지고 더 이상 학생들이 사회 문제를 주도하는 분위기가 아니게 됐다. 이러한 상황에서 학생들의 개인주의가 심화돼 총학에 대한 관심이 줄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영남대 최모(22) 씨도 "취업난으로 1학년때부터 대외활동, 자격증 공부 등 취업 스펙을 쌓기도 바빠 총학 활동에 관심 가질 여유가 없었다. 공약을 봐도 가벼운 학내 복지 정도인데 총학이 학생들에게 꼭 필요한지 모르겠다"고 했다.

코로나19 시기 실시된 온라인 투표도 무관심이 가속화되는 데 한몫했다. 지난 7일 영남일보 취재에 따르면 2019년 실시된 경북대 총학 선거 투표율은 50.72%였다. 하지만 코로나19 이후인 2021년에는 29.77%로 대폭 감소했다. 경북대 김모(21) 씨는 "코로나 시기 대학에 입학했는데 선거 운동도 접하지 못해 총학이 어떤 집단인지 최근에 알게 됐다"면서 "입학때부터 총학 활동을 접한 적이 적다 보니 자연스레 계속 투표도 하지 않게 됐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총학은 학생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기구이기에 관심이 필요하다는 입장이 나온다. 2021년 영남대 총학생회장을 지낸 김동규 대구 동구의원은 "코로나19 시기 총학생회 활동을 했는데, 학생들 사이에서 비대면 강의로 인해 수업의 질이 낮고 학습권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불만이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학교 측에 실험·실기, 예체능 학과 강의 등만이라도 대면 수업을 진행하자고 건의했었고, 비대면 수업의 50%가 대면 방식으로 전환됐다"면서 "총학은 학생들의 입장을 학교에 강력하게 전달할 수 있는 학생자치기구이기에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대학생들의 개인주의가 강화된 상황에서 총학의 소통 방식이 개별 학생과 직접 접촉하는 방식으로 변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병기 교수는 "과거처럼 총학이 학생으로서의 집단적 정체성을 강조하기보다, 학생들 개개인의 필요에 의해 선택될 수 있는 조직에 대한 고민이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조현희기자 hyunhee@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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