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윤 칼럼] 이성이 작동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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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12-15  |  수정 2023-12-15 07:03  |  발행일 2023-12-15 제27면

[이재윤 칼럼] 이성이 작동되지 않는다
논설위원

위기가 한 걸음씩 다가오니 선명히 보이는 게 있다. '90초 전'을 가리키는 '운명의 날 시계'는 핵 위기만을 경고하지 않는다. 세계 세 번째로 설치된 동대구역 '기후위기시계'는 10일 현재 '5년 224일'을 알리며 다급히 주의를 환기한다. 극단주의·자국 중심주의는 인류 최고의 정치 유산 '민주주의'의 시곗바늘을 거꾸로 돌리고 있다. 민주주의 보루 미국에서 위기 조짐이 뚜렷한 건 위험한 징후다. AGI(인공일반지능)는 '인간 영역 침범'이란 경고음을 울렸다. 이 단계의 AI부터는 '기술적 특이점', 인공지능이 인류 지능의 총합마저도 넘어서는 시점과 관련된 위험성을 의심해야 한다. 괜한 걱정이라고? 천만의 말씀이다. 당장 행동하지 않으면 인류는 서서히 데워지는 냄비 속 개구리와 다를 바 없게 된다. 불길한 전조는 매일 일어나지만 이성은 작동하지 않고 행동은 미뤄지고 있다.

#5년 남은 거 아니었어?=기후위기시계로는 5년 이상 남았는데 '지구 기온 1.5℃ 상승'은 내년에 뚫린다. 일주일 전 영국 기상청의 예측이다. '1.5℃'는 재앙을 피할 마지노선이다. 열흘 전 로이터 통신은 지구 월평균 기온이 6개월 연속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전했다. '10만 년 이래 가장 더운 해'란 기록도 덧붙였다. AFP는 사흘 전 북극은 지구 다른 곳보다 4배 빠른 속도로 기온이 올라가고 있다는 기사와 함께 "생태계와 인류가 가보지 않았던 미지의 영역으로 진입했다"고 우려했다.

#부머의 승리=그저께 샘 올트먼 오픈AI CEO가 퇴출·복귀 사태 이후 처음 공개 석상에 나타났다. 일성이 섬뜩했다. "우리는 멈추지 않는 토네이도에 뛰어들었다." AI개발을 멈추지 않겠다는 뜻이다. AI 부머(boomer·개발론자) vs AI 두머(doomer·파멸론자). 올트먼은 전자, 올트먼 해임을 주도한 수츠케버는 두머의 수장이다. 쿠데타는 실패했다. 실패한 쿠데타는 인류 미래에 불행일까 행운일까. "인간과의 대결에서 AI가 압도적으로 승리할 것"이란 대니얼 카너먼(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의 예언은 과장 아니다. 사람에 버금가는 대규모 언어모델이 벌써 출현했다. 구글이 6일 공개한 'Gemini'. 곧 인간 능력을 능가할 것이다. 맨해튼 프로젝트 딜레마가 소환된다. 우발적 핵전쟁의 위기가 어림잡아 150번 넘었다는데 진화한 AI의 일탈이라고 왜 없겠나.

#트럼프 '승률 80%'=21세기 독일에서 폭력 쿠데타? 이를 모의한 극단주의자들이 이틀 전 대거 적발됐다. 구호가 끔찍하다. '민주주의를 전복하자.' 대부분 귀족 출신인 데다 380정의 화기와 14만8천 발의 탄약이 함께 발견돼 충격을 줬다. 독일의 징후는 극히 일부다. 브라질의 자이르 보우소나루, 닷새 전 취임한 밀레이 아르헨티나 대통령, 이탈리아 집권당 FdI, 제1당으로 올라선 네덜란드의 자유당 외 숱하다. 극단주의의 세계화? 21세기 극단주의는 극우로 수렴된다. 트럼프가 정점에 있다. 지난달 이후 27회의 양자 대결 조사 중 22회 승리했다. 승률 80%다. 트럼프가 돌아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If I Knew.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이라 후회하는 순간 늦다. '슬픔이 택배로 왔다'(정호승 詩)고 했던가. 슬픔에 잠기기 전 마지막 시간을 통과하고 있다. 반품할 새도 없이 거대한 슬픔의 그림자가 창밖까지 이르는 날, 슬피 울며 이를 간들 무슨 소용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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