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미움받을 용기

  • 이승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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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1-29 07:04  |  수정 2024-01-29 07:04  |  발행일 2024-01-29 제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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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엽기자(사회부)

국내 한 정치인이 쏘아 올린 '노인 무임승차' 문제가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는 국내 대표적인 교통복지 정책인 65세 이상 노인 지하철 무임승차 제도의 폐지를 선거공약으로 내세웠다. 혹자는 '미래세대를 위한 꼭 필요한 변화'라며 박수 쳤고, 다른 이는 '갈라치기·패륜 정치'라고 손가락질했다. 이번 공약이 나라의 미래를 걱정한 입바른 소리인지 고도의 정치공학적 셈법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정치인에게 불문율처럼 여겨졌던 '노인'을 감히 건드린 것만으로도 그의 용기에는 박수를 보낸다.

대중교통 적자의 근본적인 원인은 수송원가보다 운임이 낮아서다. 현재 대구도시철도 1인당 운송원가는 3천800원이다. 그간 원가의 3분의 1 수준(1천250원)으로 지하철을 탔으니 곳간이 남아날 리 없다. 작년 도시철도 수송인원(1억4천여만 명) 중 65세 이상은 3천800여만 명(27%)이었다. 단순 계산으로 이들이 모두 기본요금을 냈다면 약 482억원의 수익이 발생한다. 작년 도시철도 적자액(2천851억원)의 20%가량이니 결코 적잖은 액수다.

다만, 이는 노인 무임승차를 통해 얻는 사회적 편익을 모두 무시한 결과다. 이동에는 시간과 비용이 든다. 이동에 드는 시간·돈보다 목적지에 이르는 효용성이 더 클 때 이동하게 된다. 바꿔 말하면 교통 비용이 목적 효용성을 넘어서면 이동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교통비용 상승은 사회적 약자의 사회경제활동을 위축하는 결과를 낳는다. 이동권 저하로 인한 건강 및 우울증 문제, 교통사고 등도 고민해야 한다.

그럼에도 이번 논란이 교통 복지에 대한 환기 효과로는 충분해 보인다. 현시점에서 노인이 과연 사회·경제적 약자인지는 고민해 볼 여지가 있다. 제도가 시행될 당시(1984년)만 해도 65세 이상 인구는 전체의 4% 수준이었지만, 현재는 20%에 육박한다. 지자체·기관이 감당할 수준을 아득히 넘어섰다. '65세'가 노인과 비노인을 구분하는 기준으로 적합한지도 의문이다.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보편적 복지와 선택적 복지는 옳고 그름이 아닌 가치판단의 영역이다.

대구시는 지난 13일 7년 만에 대중교통 요금인상을 단행했다. 그동안 인상 요인은 차고 넘쳤음에도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처럼 다른 지자체들과 치열한 눈치게임을 펼쳐야만 했다. 먼 미래보다는 눈앞의 표나 비난 여론이 더 두려웠기 때문이다. 물론 이해는 간다. 이준석 대표의 '미움받을 용기'가 새삼 대단해 보이는 이유다.이승엽기자(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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