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은 세상] 어른이 되는 순간

  • 우광훈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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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2-01 07:07  |  수정 2024-02-01 07:07  |  발행일 2024-02-01 제26면
그 누군가를 책임진다는 것
고된 일 한가운데 있는 우리
소년이라 되뇌지만 어른인 채
시지프스의 형벌을 견디며
텅 빈 정상 향해 걸어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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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광훈 소설가

며칠 전, 지인으로부터 자신의 반려견이 아프다는 연락을 받았다. 이름은 뭉이. 동물병원에서의 검사결과 폐와 혈액에 이상이 발견되었고, 그는 결국 입원치료를 결정하였다. 면역체계가 파괴되어 생사를 오갈 만큼 심각한 상황이었다.

여느 반려동물이 그러하듯 뭉이는 그를 아빠처럼 믿고 따랐다. 퇴근 후면 그를 제일 먼저 반기는 것도 뭉이였고, 소파에 드러누워 그와 함께 잠드는 것도 뭉이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뭉이 이야기를 할 때 그의 얼굴은 가장 빛나 보였다. 그렇다고 해서 그의 가정에 불화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의 곁엔 항상 그를 신뢰하고 응원하는 사랑스러운 아내가 있었고, 때론 친구처럼 스스럼없이 그를 대하는 착하고 순한 아들이 있었다. 그런 가정환경을 잘 알기에 난 그의 뭉이 사랑이 조금은 유별나다고 생각했다. 그냥, 정(情)이 많은 사람? 심성이 착하고 고운 그런 사람 말이다.

금요일 오후면 난 즐겨 그의 집을 찾았는데, 우리가 만나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뭉이와의 산책'이었다. 일상에 지친 나에게 있어 그 시간은 진정 치유의 시간이었다. 뭉이는 나를 '이웃집 아저씨' 이상으로 늘 반겨주었다. 뭉이 때문인지 난 아내에게 반려견 입양을 자주 제안했다. 하지만 아내는 단호했다. 이제 겨우 자식들을 독립시켰는데 또 양육이란 지난한 일에 얽매이고 싶지 않다고. "내가 산책시키고, 똥도 치우고, 다 할게…"라고 해도 아내의 고집을 되돌리기란 불가능했다. 그래서 난 뭉이에게 더 정이 갔는지도 모른다.

뭉이가 입원한 지 열흘째 되던 날, 우린 대구그랜드호텔 인근에 있는 한 편의점 앞에서 만나 잠시 대화를 나누었다. 뭉이의 투병과정을 이야기하는 그의 얼굴에는 미소 한 점 찾아볼 수 없었다. 얼굴은 더없이 핼쑥했고, 피부는 거칠었으며, 목소리에는 힘이 없었다. '자식이 아픈 것도 아닌데…'란 말 따위는 공감능력이 전혀 없는, 아니 극히 무례한 표현이었다. 그래, 뭉이는 그에겐 하나밖에 없는 딸이었고, 진정 혈육과도 같은 소중한 존재였던 것이다.

그는 휴대폰을 꺼내며, 오늘은 좋은 소식이 있다고 했다. 폐에 생긴 염증과 혈소판수치가 정상으로 돌아왔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안색이 많이 좋아지고 있어 다행이야"라는 말과 함께 병원에서 보내준 뭉이의 사진을 나에게 보여주었다. 순간, 그의 얼굴에 엷은 미소가 맺혔다. 그래, 그날은 내가 그를 만난 이후 가장 진지하고 엄숙했던 시간이었다. 뭉이가 아프기 전까지 우린 소년이었다. 뭉이와의 산책을 마치면, 우린 항상 국밥을 먹고, 인형뽑기를 하고, 커피를 마시며 퇴직 후의 삶에 관한 가벼운 농담을 나누었다. 조그마한 2층 상가를 구입하고, 1층을 두 칸으로 나누어 동네책방과 뽑기방으로 꾸미고, 그렇게 문학교실을 열어 동네 사랑방으로 자리 잡는 것. 닥쳐올 냉혹한 현실 따윈 애써 외면한 채 우린 그런 불가능해 보이는 낭만만을 찾아 헤매었다. 그렇게 우린 어리고, 또 어렸다.

하지만 오늘 그는 어른이었다. 책임이라는 그 무거운 단어가 그의 인생 한편에 늘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을 난 처음으로 그의 언어에서, 그의 눈빛에서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 무언가를, 아니 그 누군가를 책임진다는 것! 그 고되고 지난한 일 한가운데에 우리가 있다. 아직 소년이라고 그렇게 매일 되뇌어 보지만, 현실의 우린 결국 어른인 채로 시지프스의 형벌을 견디며 텅 빈 정상을 향해 묵묵히 걸어가고 있는 것이다.

뭉이의 쾌유를, 아니 모든 아픈 반려동물들의 쾌유를 빈다.우광훈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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