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뉴스-시민기자 세상보기] 세탁기를 교체한 날

  • 김점순 시민기자
  • |
  • 입력 2024-01-30 10:25  |  수정 2024-01-31 08:26  |  발행일 2024-01-31 제24면
아들이 세탁기 배달시켜 어쩔 수 없이 교체
신형모델에 밀려나는 세탁기, 마음 한켠 씁쓸
시대 변화의 흐름에 동승하지 못한 아쉬움도
김점순시민기자
김점순 시민기자.

"가전제품 장사 다 굶어 죽겠심더."


30여 년 동안 우리 집 세탁을 책임져 주던 세탁기를 교체하던 날. 세탁기 설치를 하러 온 기사가 말했다.


지금은 세탁기와 함께 '필수가전 듀오'로 자리매김한 건조기까지. 가전제품을 인테리어 삼아 놓고 사용하며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기는 시대다.


그러나 나는 신문물을 접하지 못했다. 그동안 OO퍼펙트세탁기 '신바람'과 OO독립만세냉장고 '따로따로'를 사용하고 있었다. 고장도 안 났다. 기뻐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대체 수명이 언제까지일까, 아직 멀쩡한데 고장 나면 바꿔야지' 하다가 지금에 이르렀다.


30년 동안 한 번도 속을 썩이지 않고 임무에 충실했던 터라 애착이 더 갔다. 아들은 집에 올 때마다 세탁기와 냉장고를 교체하자고 성화였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작동이 잘 된다면서 거부했다. 아들은 그런 엄마를 설득하는 것도 지쳤는지 세탁기와 냉장고를 아예 집으로 배달시켰다.


우리 집 세탁을 맡았던 30년 차 세탁기와 아쉬운 작별의 순간을 맞이했다. 기존 세탁기가 맥없이 현관으로 이동되고 그 자리에 새로운 세탁기가 설치됐다. 설치 기사는 세탁기 사용 방법을 안내했다. 복잡했다. 안전한 사용을 위한 방법이 오히려 불편하게 다가왔다. 30년 손때 묻은 세탁기의 익숙한 사용 방법에서 벗어나지 못한 탓이었다. 미리 챙기지 못한 빨랫감을 추가로 넣을 때도, 헹굼만 또는 탈수만을 필요로 할 때도 전원 버튼을 켜고 끄기를 몇 번이나 반복하면서 '세탁기는 왜 보내 고생을 하게 만드냐'고 투덜댔다.


트럭 짐칸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기존 세탁기를 향해 속삭였다. '그동안 고마웠다. 우리 집에서 너의 역할은 여기까지구나. 반짝반짝 빛나는 새 옷으로 갈아입고 새로운 주인을 만났으면 좋겠다.'


기존 세탁기는 1993년 당시 72만8천원인 세탁기를 현금 60만원을 주고 구입한 원터치 방식의 세탁기다. 애지중지하면서 사용한 기억이 새록새록 하다. 세탁기 구입 당시 30대 후반이던 나는 지금 60대 후반이 되었다. 사용에는 문제가 없지만, 신형모델에 밀려나는 세탁기를 보면서 우리 삶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느낌이라 마음 한켠이 씁쓸하다.


1970년대 2조식 수동 세탁기 보급량이 크게 늘었다. 세탁통과 탈수통이 분리돼 있어 빨랫감을 세탁 뒤 탈수통으로 옮겼다. 당시로선 대단한 '생활 혁명'으로 여겨졌다. 이후 원터치 세탁기의 생산으로 세탁기는 가사일 감소라는 커다란 변화를 불러일으켰다. 여성의 사회진출이 늘면서 사회구조가 변화되는 계기가 됐다. 전자제품은 브랜드 이름이 교체되는 주기가 짧고 변화도 심하다. 전광석화와 같은 기술발전으로 오늘의 첨단제품은 내일이 되면 구형 모델로 전락한다.


가전제품을 교체하면서 시대 변화의 흐름에 동승하지 못하고 나만 덩그러니 남아 있는 것 같아 아쉬움도 있다. 지금은 두꺼운 겨울 외투도, 대형 이불도 시원하게 세탁되는 것을 보면서 교체를 참 잘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김점순 시민기자 coffee-33@hanmail.net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시민기자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