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은 세상] 젊은 지인들의 부고가 남긴 숙제

  • 정혜진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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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2-08 06:55  |  수정 2024-02-08 06:56  |  발행일 2024-02-08 제22면
美 할머니 사망전 거액 기부
우연히 접한 뉴스 기억 남아
내삶에 중요한게 무엇인지
사망수익자 누구로 정할지
남은 삶은 답 찾는 과정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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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진 변호사

결혼식장보다는 장례식장에 더 자주 갈 나이이긴 하지만, 최근 몇 개월 사이에 나보다 젊은 사람의 본인상 혹은 배우자상 부고를 연이어 들었다. 건강하게 잘 지내던 40대들의 갑작스러운 죽음이어서 그리 가깝지 않은 단순 지인인 나조차 너무 황망했다. 장례 후 유가족 소식을 들어 보니 고인들이 한창 일하는 나이에다 아무런 준비를 하지 못하고 떠나 정리할 건 많은데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막막하다고 했다.

삶의 끝이 언제 어떻게 올지 알 수 없다는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지만 막상 젊은 지인들의 부고를 들으면서 '나도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갈 수 있겠구나' 하는 당연한 명제가 현실로 다가왔다. 내가 죽은 뒤 남을 문제들을 평소에도 생각하면서 사는 동안 정리할 수 있는 일은 정리하고 준비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터에 우연히 접한 해외 뉴스가 오래 마음에 남았다. 미국 뉴욕시 아주 작은 아파트에 살던 어느 할머니가 평소 오페라와 발레를 너무 좋아해서 근 50년간 매일같이 공연장을 다니다 88세에 사망했는데, 사망 전에 거액을 예술 단체에 골고루 나눠 남긴 게 뒤늦게 알려져 관계자들이 깜짝 놀랐다는 내용이다. 늘 소박한 옷을 입고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공연장에 와 가격이 가장 저렴한 공연장 맨 위쪽 스탠딩 좌석에서 큰 쌍안경을 들고 공연을 관람하던 할머니를 공연 관계자들은 검소하면서도 열성적인 오페라 팬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그렇게 많은 돈이 있을 것이라고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다고 한다.(혹 궁금하신 분은 'Lois Kirschenbaum opera fan'으로 검색해 보시길.)

이 뉴스를 들으면서 (왜 그분은 돈이 많은데도 좀 더 누리는 삶을 살지 않았을까 궁금한 것과는 별개로) 죽은 후 남겨지는 재산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 그분은 약 52억원의 재산 중 일부는 예술 관련 기관과 단체에, 나머지는 자신의 삶에서 한때 몸담거나 관여했던 기관에 남겼다. 모두 자신이 살아오면서 교류했던 단체 혹은 기관이었다. 자식이 없고 연락하는 가족도 없는 할머니는 허투루 돈을 쓰지 않고 평생 아껴 모은 돈을 모두 자신이 살아오면서 아끼고 사랑했던 삶의 현장에 남기고 떠난 것이다.

그 할머니처럼 거액의 유산을 남길 가능성은 전혀 없지만, 평범한 소시민으로 소액이라도 남길 가능성은 있고, 게다가 사망보험금은 보장되어 있다. 20대에 종신보험에 가입하면서 사망보험금 수익자를 '법정상속인'으로 적었다. 그런데 부모님은 다 돌아가셨고 배우자와 자녀가 없으니 굳이 법정상속인을 고집할 이유는 없을 것 같다. 금액은 크지 않지만 어느 단체에 기부한다면 삶을 마감하는 내게는 물론 해당 단체에도 의미가 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망수익자를 어떤 단체로 해야 할지 며칠을 생각했으나 아직 못 정했다. 평소 후원하는 단체는 몇 있지만, 그중 내 삶에서 가장 의미 있는 단체를 하나만 꼽으려니 어려웠다. 사망보험금 수익자를 변경하는 문제는 단순히 기부할 단체를 하나 고르는 것이 아니라 내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단답형으로 말해야 하는 질문인 셈이다. 결정을 못 하겠다는 건 내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아직 무엇인지 모른다는 뜻이기도 하다. 남은 삶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어야 하겠구나 싶다. 숙제가 하나 늘었다.정혜진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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