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 추 거문고 이야기] 〈3〉 '백악지장' 거문고, 고구려 고분 벽화 곳곳 연주하는 모습 묘사…선비가 책과 함께 늘 곁에 둔 마음수양 반려

  • 김봉규 문화전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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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2-16  |  수정 2024-02-16 08:02  |  발행일 2024-02-16 제14면
청자상감송하인물문매병(고려)패스
고려청자 청자상감송하인물문매병 그림. 소나무 아래에서 거문고를 연주하는 사람 앞에 학 한 마리가 춤을 추고 있다.〈국립중앙박물관 발간 '우리 악기 우리 음악' 수록자료〉
우리나라의 대표적 전통 현악기인 거문고는 오래 전부터 '백악지장(百樂之丈)'이라 불리어 왔다. '모든 악기 중 으뜸'이라는 의미다. 예로부터 우리나라의 지식인, 특히 선비들이 그윽하고 담백한 거문고의 음색과 거문고에 담긴 의미를 사랑하고 존숭해 최고의 악기로 대접했던 것이다.

'현금(玄琴)'으로 불리어온 거문고는 고구려에서 처음 만들어졌다. 무용총을 비롯한 고구려 고분 벽화 곳곳에도 거문고의 원형으로 보이는 현악기를 연주하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거문고의 기원과 관련해서는 김부식의 '삼국사기' 기록이 흔히 인용된다.

무용총 등 그려진 거문고의 원형
왕산악이 100여 곡 만들어 연주
검은학이 와 춤춰 '현학금' 불러

160㎝ 긴 몸통에 6현 얹은 구조
음 높낮이 조절 받침대 '괘' 16개
명인 거치면서 민간에 널리 퍼져
'심성 수양' 악기로 중요한 역할


'신라고기(新羅古記)에서 거문고 제작과 관련해 이렇게 이야기했다. 처음에 진나라 사람이 칠현금(七絃琴)을 고구려에 보냈는데, 고구려 사람들은 비록 그것이 악기인 줄은 알았으나 그 성음(聲音)과 연주법을 알지 못했다. 나라에서 사람들 중에 그 음률을 알아서 연주할 수 있는 자를 구하면서 후한 상을 주겠다고 했다. 그때 둘째 재상(第二相)인 왕산악이 칠현금의 본 모양은 그대로 두고 그 법제(法制)를 고쳐서 다시 만들었다. 그리고 100여 곡을 만들어 그것을 연주했다. 이때 검은 학이 와서 춤을 추니 현학금(玄鶴琴)이라고 부르게 되었으며, 이후 다만 현금(玄琴)이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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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고분 무용총 벽화 중 거문고를 연주하는 사람의 그림. <국립중앙박물관 발간 '우리 악기 우리 음악' 수록자료>
왕산악이 언제 거문고를 만들었는지는 삼국사기에도 언급되어 있지 않다. 왕산악은 거문고를 만든 거문고 명인이지만, 그의 생몰연도는 정확히 알 수 없다. 그가 거문고를 만든 연대는 문헌자료와 고고학 자료를 근거로 4세기 무렵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357년에 축조된 안악(安岳) 제3호분 벽화에 그려진 거문고 연주 모습, 집안(集安) 무용총(4세기 말~5세기 초) 벽화에 나타난 거문고 연주 모습 등이 그러한 추정의 근거가 되고 있다. 고구려에 칠현금을 보낸 중국 진나라는 동진(東晉·316∼419)일 것으로 추정된다.

고구려 고분 벽화 속 연주자들이 왼손으로 줄을 누르고 오른손으로 술대를 잡고 연주하는 모습은 현재의 거문고 연주법과 비슷하다. 고구려 벽화의 거문고(6현이 아님)는 원형의 거문고이고, 여섯 줄인 현재의 거문고는 그 거문고가 언젠가부터 개작되어 오늘에 이른 것으로 보고 있다.

◆여섯 줄과 16괘

거문고(玄琴)는 명주실을 꼬아 만든 여섯 개의 줄을 울림통 위에 긴 방향으로 나란히 얹고, 술대라는 막대기로 내리치거나 뜯어 연주한다.

거문고는 긴 몸통에 줄 받침대인 괘 16개를 놓고, 괘와 안족(雁足) 위에 여섯 줄(6현)을 얹은 구조이다. 여섯 줄 중 셋째 줄인 대현(大絃)이 가장 굵고, 첫째 줄 문현(文絃), 여섯째 줄 무현, 넷째 줄 괘상청, 다섯째 줄 괘하청, 둘째 줄 유현(遊絃)의 순으로 가늘어진다. 몸에서 가장 가까운 줄인 첫째 줄이 문현이다. 유현, 대현, 괘상청은 괘(제1괘) 위에 얹혀 있다. 나머지 문현, 괘하청, 무현은 기러기발 모양의 안족으로 받친다. 안족을 이동해 그 줄의 소리 높낮이를 조절할 수 있다.

선율을 내는 데 주로 쓰이는 줄은 유현과 대현이다. 이때 왼손은 괘를 짚어 소리에 굴곡과 변화를 주는데, 이를 농현(弄絃)이라 한다.

거문고의 몸통은 길이가 보통 160㎝ 정도. 몸통은 두 쪽의 나무를 아래위로 붙여서 만든다. 현이 올라가는 둥근 위쪽은 오동나무로 만들고, 평평한 아래쪽은 밤나무로 만든다. 몸통의 속은 비어 있어서 울림통 역할을 한다.

음의 높낮이를 조절하는 받침대인 16개의 괘는 아래쪽부터 머리 쪽으로 올수록 점점 작아진다. 첫째 괘에서 열여섯 번째 괘로 가면서 점차 작고 얇아진다. 괘 하나를 올라올 때마다 음은 한 음 높아진다.

거문고의 머리 쪽에는 '대모(玳瑁)'라고 하는 부드러운 가죽을 붙여서, 술대가 몸통 판에 부딪혀 부러지거나 잡음을 내지 않도록 하고 있다. 대모라는 명칭은 본래 거북이 등가죽 말린 것을 붙이던 데서 비롯된 것이다. 술대는 대나무(해죽)로 만드는데, 길이는 20㎝ 정도. 기본적인 연주 자세는 반가부좌이다. 오른다리가 바깥으로 나와 왼다리 아래쪽으로 들어가게 한다. 거문고는 머리 쪽, 즉 대모가 붙은 곳을 오른쪽 무릎에 올려놓는다. 머리 안쪽의 오목한 곳을 오른쪽 무릎 쪽으로 괴고, 왼쪽 무릎과 오른발로 거문고를 받친다. 요즘은 악기 받침대를 많이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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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규 문화전문 칼럼니스트
◆지식인들의 각별한 사랑을 받은 거문고

거문고는 고구려에서 태어나 신라 때 지리산에서 50년 동안 거문고를 공부한 옥보고(玉寶高)를 비롯해, 그의 제자인 속명득(續命得), 속명득에게 연주법을 전수받은 귀금(貴金), 극종(克宗) 등 거문고 명인을 거치면서 민간에 널리 퍼지게 되었다. 극종은 새로 거문고 곡 7곡을 지었는데, 이후부터 거문고를 업으로 삼는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극종이 지었다는 7곡은 전하지 않는다.

신라에서는 거문고를 국가 보물 창고인 천존고(天尊庫)에 신령스러운 악기인 신기(神器)로 보관했다고 전해진다. 이후 고려를 거쳐 조선에 이르기까지 거문고는 특히 선비의 아낌없는 사랑을 받았다. 선비들은 거문고에 단순한 악기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면서 마음 수행의 반려로 삼았던 것이다.

옛 선비들은 거문고를 책과 함께 늘 곁에 두고 마음을 다스렸다. 그래서 유교경전을 중심으로 한 책과 거문고를 지칭하는 '금서(琴書)'는 선비를 지칭하는 말로도 통했다. 거문고는 이처럼 선비의 심성을 수양하는 악기로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거문고를 가까이에 두고, 거문고를 통해 늘 사심(邪心)과 욕심이 스며들 수 없도록 조심했던 것이다.

거문고가 지식인들의 각별한 사랑을 받았음은 지금까지 전해오는 옛날 악보 대부분이 거문고 악보인 점에서도 알 수 있다. 금합자보, 현금신증가령, 삼죽금보, 한금신보, 현금오음통론, 금보, 신작금보, 학포금보 등 현재 전하는 고악보의 90% 정도는 거문고 악보이다. 서유구가 지은 백과사전인 '임원경제지'의 악보편인 '유예지(遊藝誌)'의 주 내용도 거문고 악보이다.

거문고 관련 최고의 저술로는 1620년 이득윤이 지은 '현금동문유기(玄琴東文類記)'가 꼽힌다. 거문고의 구조와 타는 법은 물론, 거문고에 새긴 글귀인 금명(琴銘)을 비롯해 거문고와 관련된 시와 글, 거문고 악보 등 당시까지의 거문고 관련 기록을 집대성한 책이다. 김봉규<문화전문 칼럼니스트> bg429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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