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구로에서] 히포크라테스 가르침 외면한 정부와 의사

  • 강승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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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2-21 06:56  |  수정 2024-02-21 06:58  |  발행일 2024-02-21 제26면
히포크라테스 선서 가르침
잘못된 진료 결과까지 공개
정원 증원 지난 정부도 검토
난제와 해법 풀 묘안 절실해
국민 위한 올바른 길 찾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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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승규 사회부 차장

"나는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최우선으로 고려할 것이다."

하얀 가운 입고 의사로서 첫발을 내디딜 때 다짐하는 히포크라테스 선서 중 일부다. 대다수 의사는 희생·봉사·장인정신이 담긴 이 선서를 읽던 그 날의 뜨거운 가슴을 기억한다. 히포크라테스는 고대 그리스가 가장 융성했던 페리클레스 시대 의사다. 또 '의학의 아버지'라고도 불린다. 왜 그럴까. 이유는 단 하나. 그가 나타난 이후 사람들이 질병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당시 그리스인은 질병에 대해 신이 내린 벌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병을 치료하려면 신전에서 반드시 기도해야 한다고 믿었다. 한마디로 신전이 병원이었던 셈이다. 지금 생각하면 어처구니가 없다. 히포크라테스는 질병은 신의 노여움이 아니라, 인체 내부와 외부 환경이 변화해 발생하는 것으로 이를 올바르게 하면 병도 낫게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질병의 생각 자체를 완전히 바꾼 것이다. 만약 그가 아니었다면 어쩌면 우리는 여전히 신에게 병을 낫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가 남긴 의학적 지식은 후대에 구전과 저술로 전해졌다. 책에는 질병을 증상에 따라 자세히 구분한 것뿐만 아니라 각 질병의 치료 방법 및 의료 윤리의 기초 등이 담겨 있어 오늘날에도 높게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은 그가 쓴 게 아니다. 책은 히포크라테스가 남긴 지식에 당대 알려진 모든 의학 관련 지식을 덧붙여 만들어낸 것이다. 그는 자신의 연구뿐만 아니라 잘못된 진료 결과까지 모두 남겨 후세에 큰 도움을 줬다. 자신의 잘못을 숨기지 않고 기록한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인데 말이다.

요즘 의과대학 정원 증원 문제로 나라가 시끄럽다. 사실 의대 정원 증원은 윤석열 정부 이전부터 검토하다 의료계 반발로 무산된 정책이다. 윤 대통령은 필수의료진 부족 사태를 해결할 방법의 최우선 방안으로 의대 정원을 연간 2천명씩 10년 동안 총 2만명 늘리겠다는 해법을 내놨다. 최근 '응급실 뺑뺑이'와 '소아청소년과 개점 질주' 등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국민 상당수가 필수의료진 확충 필요성을 그 어느 때보다 공감하는 여론도 뒷받침됐다.

하지만 일선 의사의 반발은 달라지지 않았다. 이들은 의대 정원 증원이 필수 의료진 확충의 근본적 해결책이 아니라고 판단한다. 아주 극미한 낙수효과를 기대할 수는 있겠지만 되레 인기 진료과목 의료진 경쟁만 부추기고, 의대 교육환경은 악화하고, 건강보험 재정만 더 축나고, 이공계 인재를 의대로 흡수하는 역효과가 더 크다는 게 논리다. 사실 큰 틀에선 양쪽 말이 틀린 말은 아니다. 단지 풀어가는 과정이 아쉬울 뿐이다. 소통과 설득의 기본은 '경청'이다. 상대 생각과 우려·불안을 먼저 듣고 이해한 뒤, 설명하고 조율하면서 납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근데 현 정부 소통 방식은 주먹구구식에 가깝다. 의사들은 환자의 고통과 불편을 덜어내며 질병을 치료하고 생명의 소중함과 고귀함을 실천하는 도덕적 의무가 있다. 반면 의료 기관을 경영하고 유지하고자 이익을 산출하고 비용을 절감하며 사업체를 운영하는 경영인의 모습도 있다. 한 손에는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하고, 한 손으로는 계산기를 두드리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이제라도 정부는 의사들이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되새길 수 있도록 소통하고, 의사들도 좀 더 세련된 방법으로 접근하는 게 어떨까 싶다. 그게 진정으로 국민을 위한 길이다.
강승규 사회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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