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만진의 문학 향기] 졸업식 노래

  • 정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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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2-23 08:25  |  수정 2024-02-23 08:25  |  발행일 2024-02-23 제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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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만진 (소설가)

1934년 2월23일 에드워드 엘가가 세상을 떠났다. 영국이 낳은 최초의 세계적 음악가로 평가받는 그의 타계 소식에 수많은 영국인들은 진심으로 눈물을 흘렸다. 엘가는 에드워드 7세 대관식 연주곡을 창작한 작곡가이다.

시골 거주 무명 음악가가 그토록 대단한 이름을 얻게 된 것은 마흔 넘어 발표한 '수수께끼 변주곡' 덕분이었다. 가까운 벗들의 이미지를 한 곡 한 곡 묘사한 이 작품으로 그는 음악적 재능을 인정받았다. 그래서 2년 후 대관식에 쓰일 'Land of Hope and Glory'를 의뢰받는 광영을 맛본다.

'Land of Hope and Glory'는 우리나라에서 흔히 '위풍당당 행진곡'으로 번역된다. 엘가는 관현악곡집 제1번 곡에 'Pomp and Circumstance'라는 제목을 붙였는데, 셰익스피어 희곡 '오셀로'의 제3막 제3장에 나오는 대사에서 따온 것이었다. 그렇게 보면 'Pomp and Circumstance'를 우리가 '위풍당당 행진곡'이라 부르는 데에는 상당한 의역이 작용했음을 알 수 있다.

'위풍당당 행진곡'은 영국에서 제2의 국가로 우러름을 받는 위풍당당한 음악적 위상을 누리고 있다. 같은 영어권 국가 미국에서도 '위풍당당 행진곡'은 고등학교 졸업식 때 빠지지 않고 연주된다. 그만큼 애국심을 절묘하게 음악적으로 형상화해낸 곡인 까닭이다.

'Land of Hope and Glory'가 영국 대관식에서 각광을 받은 3년 후, 1904년 2월23일 한일의정서가 체결되었다. 한일의정서는 "제3국의 침략이나 내란으로 말미암아 대한제국이 황실 안녕과 영토 보전상 위험에 처했을 때 대일본제국 정부는 신속히 군략상 필요한 곳을 수용해 조치를 취해야 한다" 등의 내용을 담은 식민화 첨병 조약이었다.

당시 외부 대신은 뒷날 을사오적으로 이름을 떨치게 되는 이지용이었다. 그는 정부 조직 가운데서도 세계 열강들의 동태를 늘 살펴야 하는 책임자였던 만큼 'Land of Hope and Glory'의 위풍당당한 곡조를 알고도 남았을 것이다. 하지만 사리사욕에 매달려 살아가는 속물들에게 지식과 실천은 별개의 덕목일 뿐이다.

1946년 이래 윤석중 작사, 정순철 작곡 '졸업식 노래'가 애창되었다. 후배들이 "빛나는 졸업장을 타신 언니께 꽃다발을 한 아름 선사합니다." 선창하면, 당일 졸업생들이 "잘 있거라 아우들아 정든 교실아 선생님 저희들은 물러갑니다." 화답했다.

마지막에는 "냇물이 바다에서 서로 만나듯 우리들도 이 다음에 다시 만나세!"라고 합창하며 눈물을 쏟았다. 이제는 그 노래도 사라졌다. 졸업 후 사회·경제적으로 비슷한 동기들끼리만 재회할 만큼 '공동체'가 무너졌기 때문이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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