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뉴스] "천연기념물 측백나무숲 동굴, 일본군이 뚫었다"

  • 박태칠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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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2-27 13:39  |  수정 2024-02-28 08:31  |  발행일 2024-02-28 제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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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시 동구 도동 산 180번지 향산에 있는 천연기념물 측백나무숲.
대구에는 천연기념물이 2개 있다. 2000년대 이전까지 딱 하나였던 것이 대한민국 천연기념물 제1호인 대구시 동구 도동 향산의 측백나무숲이다. 1호라 하는 상징성이 있어 외지 관광객들이 자주 찾아왔다.

 


조선시대 초기 대문신이었던 사가 서거정 선생은 대구의 10개 아름다운 경치인 10경(景)으로 삼았으며 '북벽향림(北壁香林)'이라는 시를 읊었을 정도로 그 절경에 매료됐다. 그러나 2021년 문화재청에서 국가 등록 문화재 지정번호 삭제를 함에 따라 제1호 명칭은 사라졌다. 국보·보물·천연기념물 중 유일하게 지방에 있는 1호가 사라짐에 따라 대구시민은 많이 아쉬워했다.


천연기념물이 있는 도동 향산에는 동굴이 4개나 있다. 삼일절 105주년을 앞두고 문화관광해설사인 김지훈씨와 일제강점기 동굴을 파낼 때 참여했던 유일한 생존자 송문창(93·불로동) 어르신을 찾았다. 어르신은 연로했지만 정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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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산 측백나무숲에는 일본군이 일제시대에 뚫은 동굴이 아직도 남아 있다.
왜 동굴을 뚫었는지 물어보니, 그는 "해방되기 직전에 일본군들이 미군 폭격기로부터 피난하기 위해서 굴을 뚫었다"고 전했다.


"정을 가지고 암석을 일부 파낸 후 그곳에 일본인들이 남포(다이너마이트)를 뭉친 남포 떡을 넣어 터트려 암석이 부서지면 인근 동별로 2명씩 동원된 조선사람들이 지게를 지고 들어가서 소쿠리에 돌을 담아 져냈다. 그 당시 동원된 조선사람을 보국대라고 불렀는데 3일이나 5일씩 돌아가며 불려 나갔다. 일본 군인들은 칼을 차고 교대로 돌아가며 감시했다. 딱딱한 조밥에 왜 간장 한 숟가락 부은 것을 먹고 온종일 막노동을 했다. 동굴은 안에서 서로 연결되도록 계획됐으나 동굴을 파던 중 해방되는 바람에 중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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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이 측백나무숲에 동굴을 뚫기 위해 결성한 보국대에 동원된 송문창 어르신이 당시 상황을 증언하고 있다
당시 15살이란 어린 나이에 보국대에 차출된 송 어르신은 "나이로 봐서는 안 되지만 체격이 좋아 끌려갔다"고 말했다.


당시에 측백나무숲이 명승고적지로 유명한 것을 일본인들이 몰랐는지 물었다. 그는 "대구에 사는 일본인들은 다 알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뼈 아프고 눈물 나는 일이다. 우리 명산에 일본인 목숨 살리려고 동굴을 뚫었으니…"라며 안타까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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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산 측백나무숲에는 일본군이 일제시대에 뚫은 동굴이 아직도 남아 있다.
일제강점기에도 조선총독부는 '조선보물고적명승천연기념물보호령'으로 도동의 측백나무숲을 천연기념물로 지정한 상태였으니 이미 그 가치를 알고 있었다. 그는 "이제는 그것을 아는 사람도, 생존자도 없고 세월 가면 일본인들의 만행도 잊힐 것이니 아쉽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측백나무숲을 해설하는 대구 문화관광해설사 김지훈씨는 "4개의 동굴 중 2개는 내부에서 붕괴했고 2개는 그대로 있다. 그중 하나는 길이 50m, 폭과 높이가 각 2m10㎝씩이고 나머지 하나는 길이 30m에 폭과 높이가 각 1m80㎝다"라며 "이런 역사적 의미가 있는 곳인데 천연기념물로는 보존되지만 '1호'라는 명칭이 사라져 아쉽다"고 밝혔다.


글·사진=박태칠 시민기자 palgongsan72@kakao.com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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