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 추 거문고 이야기] 〈4〉거문고와 중국 칠현금, '선비의 악기' 거문고…진나라가 고구려에 전한 칠현금이 시초

  • 김봉규 문화전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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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3-01 08:13  |  수정 2024-03-01 08:14  |  발행일 2024-03-01 제13면
옛 지식인·상류층 사랑받은 칠현금
악기 위상·상징성 거문고가 이어받아
여섯개 줄 중 첫째 문현·여섯째 무현
현의 이름도 中 문왕·무왕서 유래해
악기의 구조·연주방식 등 다르지만
마음수양 도구로 가까이 한 점 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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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청나라 선양고궁(瀋陽古宮)에서 궁정악기로 사용하던 흑칠(黑漆) 칠현금. 건륭 8년(1743년) 제작, 길이 101.2㎝. <중국 선양고궁 소장>

중국의 금(琴)은 악기가 차지하는 위상이나 상징성 등에서 우리나라의 거문고와 자주 나란히 거론된다. 금과 거문고는 단순히 그 선율을 즐기기 위한 악기가 아니라, 지식인들이 마음수행의 도구이자 반려로 삼았던 악기다. 중국에서는 고대부터 금을 군자(君子)의 악기로 떠받들었고, 우리나라의 거문고는 선비의 악기로 대접받았다. 그리고 우리의 옛 기록에는 거문고를 한자로 표현할 때 '금(琴)'으로 표기한 경우가 대부분이고, 중국의 금인 칠현금 역시 '금(琴)'으로 표기했다.

◆중국 금(琴), 칠현금

중국의 대표적 전통 악기인 금(琴)은 지금도 사랑받고 있는 현악기인데, 일곱 줄로 된 칠현금(七絃琴)이다. '고금(古琴)'이라고도 불린다. 금의 길이는 110㎝ 정도. 거문고의 3분의 2 정도 된다. 금은 일곱 줄로 되어 있어서 '칠현금(七絃琴)'이라 불린다. 고대의 다섯 줄 금은 '오현금(五絃琴)'으로 불리었다.

오현금은 4천300년 전 중국 고대의 태평성대 시대로 일컬어지는 요순시대의 순임금이 처음 만들어 연주했다고 한다. 칠현금의 전신이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옛날 그림 '남훈전탄금(南薰殿彈琴)'은 순임금이 황제의 처소인 남훈전에서 오현금을 타면서 노래로 백성의 고단함을 달랜 내용을 그린 작품이다. 그림 중앙에는 소박한 초옥이 있고, 초옥 안에서 순임금이 오현금을 타면서 노래를 부른다. 신하들은 방 안과 섬돌 아래에 서서 순임금이 연주하는 오현금 소리를 듣고 있다.

순임금은 '오현금을 타면서, 남풍이란 시를 노래하며 천하를 다스렸다(彈五絃之琴 歌南風之詩 而天下治)'고 전한다. '남풍(南風)' 시는 다음과 같다. '훈훈한 남풍이 불어오니, 우리 백성들의 시름을 풀어줄 만하네/ 남풍이 때맞춰 불 때 우리 백성들의 재물도 넘쳐나겠구나(南風之薰兮 可以解吾民之兮 南風之時兮 可以阜吾民之財兮).'

칠현금은 오현금에 중국 주나라 문왕과 무왕이 각각 문현(文絃)과 무현(武絃)을 한 줄씩 더하여 칠현의 금이 되었다고 한다. 즉 순임금 시절에는 오현금이었고, 주나라 때 칠현금이 나와 이후로 유행하게 된 것이다. 중국 진(晉)나라가 고구려에 전해준 거문고도 칠현금이었다. 금의 앞판은 오동나무, 뒤판은 밤나무로 만든다. 보통 검은 칠을 한다. 줄은 따로 기러기발 등으로 받치지 않고, 대신 몸통 위 한쪽에 흰 조개껍질 등으로 만든 지판(徽)을 표시하고 그 자리를 왼손으로 짚어 소리 낸다.

동양의 전통적 세계관이던 '천원지방(天圓地方)' 사상을 반영하여, 위판은 곡면으로 둥글게 하고 아래판은 평평하게 만든다. 악기의 모든 치수에는 철학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그리고 금은 거문고와 같이 같은 줄에서도 어느 곳을 짚느냐에 따라 음이 달라진다. 삼국사기의 '거문고는 중국의 금을 본떠 만들었다'라는 기록이 아주 신빙성 없지는 않음을 보여준다. 구조는 확실히 다를지라도 줄을 집는 방식인 안현법을 비롯한 연주법 등을 참고했을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금을 연주할 때는 보통 악기를 받침대인 탁자에 올려놓고 손으로 짚으면서 뜯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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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합자보(琴合字譜)'에 실린 거문고 그림. 금합자보는 16세기 문신이자 음악이론가인 안상이 1572년에 편찬한 거문고 악보이다. <간송미술관 소장>

◆차이점과 영향

거문고와 중국 금은 많은 차이가 있다. 줄의 수만 다른 것이 아니다. 거문고는 괘와 안족이 있는데 반해, 중국 금은 이런 음 높이 조절용 부속품이 따로 없다. 그리고 일곱 줄 모두 악기 위판에 직접 닿도록 손가락으로 짚어 연주한다. 줄을 짚을 위치를 가늠하기 편하도록 몸통 위 한 편에 자개나 옥돌 등으로 만든 '휘(徽)'를 일렬로 박아 놓았다.

거문고는 연주할 때 술대를 사용하지만, 중국 금은 다른 도구 없이 맨 손가락으로만 탄다. 거문고는 대체로 바닥에 앉아, 악기 한쪽 끝을 무릎 위에 걸치고 반대쪽 끝을 바닥에 닿도록 놓고 연주한다. 하지만 중국 금은 탁자에 올려놓고 의자에 앉아 연주하는 것이 원칙이다. 거문고 여섯 줄의 조율은 음 높이 순이 아니지만, 중국 금의 일곱 줄은 가장 바깥 줄을 최저음으로 하여 안쪽(연주자 몸쪽)으로 올수록 높아지도록 조율한다.

금은 중국 문명과 역사를 같이할 정도로 오래되었고, 상류층과 지식인 계층에게 특히 사랑받은 악기이다. 전통적으로 중국에서는 '악기의 아버지' '성인(聖人)의 악기' 대접을 받아 왔다. 한국 전통음악에서 거문고가 누리는 지위와 상징성은 이런 중국 금의 지위를 많이 물려받았다. 중국 한나라 때인 서력기원 전후부터 쓰인 '금(琴)이란 사악함을 금(禁)하는 것이다(琴者 禁也)'라는 말도 그대로 수용되었다. 악기 구조에서 위판이 곡면이고 아래판이 평평한 것은 하늘이 둥글고 땅이 반듯함을 각각 상징하고, 거문고의 문현과 무현은 중국 고대 성인들인 문왕(文王)과 무왕(武王)의 이름에서 유래한 점 등은 중국 금의 영향이다.

한국의 풍류방(風流房) 음악에 중국 금이나 금론(琴論)이 들어온 예도 있다. 중국 금의 덕목인 '오능(五能, 연주해도 되는 다섯 가지 상황)' '오불탄(五不彈, 연주하면 안 되는 다섯 가지 상황)' 등은 17세기 말부터 한국의 거문고 악보들에 마치 거문고의 덕목처럼 인용되어 왔다.

◆'금(琴)'자의 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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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규 (문화전문 칼럼니스트)

우리나라 옛 한문 기록에서 그냥 '금(琴)'이라고만 한 경우 정확히 무슨 악기를 지칭하는 것인지 판단하기 쉽지 않을 때가 많다. 같은 '금(琴)'자로 표현해도 별 문제가 없는 경우도 있지만, 중국의 금인지 한국의 거문고인지 가려서 읽을 필요도 있다. 악기의 구조나 연주 방식 등에서는 많은 차이가 있고 분명히 다른 악기이지만, 거문고와 금이 한국과 중국에서 차지하는 문화적인 위치가 비슷해 혼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옛 기록에서 거문고, 가야금 등의 현악기를 가리킬 때 그냥 '금(琴)'이라고만 쓰는 경우도 적지 않다. 대부분은 앞뒤 문맥에 의해 무슨 악기를 말하는지 알 수 있다. 분명하지 않고 혼란스러울 때도 있는데, 앞뒤 맥락이나 그 시기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해석해야 한다.

김봉규<문화전문 칼럼니스트> bg429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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