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 추 거문고 이야기] <5> 선비와 거문고(상), 거문고는 '금(琴)'이다

  • 김봉규 문화전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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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3-15 07:44  |  수정 2024-03-15 07:45  |  발행일 2024-03-15 제13면
(琴·군자가 바른 것을 지켜서 스스로 금한다)
공자 "사람의 마음을 배우는 소리"
'사심' 금하고 '仁'의 마음을 함양
군자가 곁에 두고 나쁜기운 쫓아내
연주할때 지키는 '오불탄의 원칙'
맑은 정신·바른 자세·의관 갖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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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협 '탄금도'(19세기,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화제 중 '세상의 아름다운 우리 이야기를 알아줄 이 적지만, 밝은 달과 맑은 바람이 우리를 알아주는 구나'라는 구절이 있다.

한국의 거문고와 중국의 금(琴·칠현금)은 다른 악기이지만, 옛날에는 '금(琴)'으로 동일하게 표기되어 왔다. 거문고와 칠현금을 지칭한 금(琴)은 선비들에게는 단순한 악기가 아니었다. 마음 수양을 위한 평생의 반려로 삼았던 특별한 악기였다. 거문고(칠현금 포함)가 이처럼 선비에게 각별한 대접을 받았던 역사의 뿌리는 매우 깊다.

사마천은 중국 역사서 '사기'에서 '공자가 사양(師襄)에게 거문고 타는 법을 배웠는데, 거문고를 배우는 것은 기술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배우는 것이라고 말한 바가 있다'라고 했다. 모든 선비들의 스승인 공자가 거문고를 어떻게 대했는지 알게 하는 대목이다. 거문고를 잘 탔고 음악에 조예가 깊었던 공자는 또한 음악을 통해 인과 예를 설명하고 가르쳤다. 공자가 행단(杏亶)에서 제자들을 가르쳤다는 행단고슬(杏亶鼓瑟) 고사에도 금(琴)을 타는 공자가 등장한다.

◆거문고를 마음 수양의 도구로 삼았던 선비

우리나라 악기 중 유일하게 보물로 지정된 탁영금(濯纓琴)의 주인공 탁영 김일손(1464~1498)이 이 거문고를 걸어두는 시렁에 새긴 글인 금가명(琴架銘)이 있다. '거문고는 내 마음을 단속하는 것이다. 시렁을 만들어 높이 걸어두는 것은 소리가 좋기 때문만은 아니다(琴者 禁吾心也 架以尊 非爲音也).'

김일손이 이런 글을 지어 새기게 된 데는 연원이 있다. 거문고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 공자의 이야기뿐만이 아니다. 중국 후한 말기 학자 응소가 편찬한 '풍속통의(風俗通儀)'에는 이런 내용이 나온다. '거문고를 금(琴)이라고 하는 것은 군자가 바른 것을 지켜서 스스로 금(禁)한다는 데서 나온 말이다. 즉 거문고 소리가 울려 퍼지면, 바른 뜻을 감동시키기 때문에 선한 마음이 스스로 우러나서 사악한 마음이 생기는 것을 막아준다. 그래서 성현 군자들은 거문고를 타면서 항상 조심하고 스스로 사악한 것과 금할 것을 조절하였다고 한다.'

'풍속통의'는 당시의 풍속, 음악, 지리, 종교, 민속, 명물, 전례, 악기 등 다양한 분야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는 책이다. 성리학을 집대성한 중국 송나라 유학자 주희(주자)는 거문고에 새긴 금명(琴銘)에서 이렇게 읊었다. '그대 중화의 바른 성품을 길러서(養君中和之正性)/ 분노와 탐욕의 사심을 물리치네(禁爾忿欲之邪心)/ 천지는 말이 없고 만물에는 법칙이 있으니(乾坤無言物有則)/ 내 오직 그대(거문고)와 그 심오함을 찾으리(我獨與子鉤其深).'

선비들이 존경하며 그 삶을 본받고자 한 대표적 선비이자 시인인 도연명(365~427)은 '무현금(無絃琴)'의 세계를 드러내 보였다. '줄 없는 거문고'를 말하는 무현금의 정신과 가치관은 선비들이 유교 경서와 함께 거문고를 필수 반려로 삼게 만드는 데 큰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김일손을 비롯한 우리나라 선비들도 이와 같은 가치관을 이어받고 심화시켰다. 반계(磻溪) 류형원(1622~1673)도 거문고에 새긴 글에서 이렇게 이야기했다. '마음은 소리로 나타나고(心形聲)/ 소리는 마음을 감동시키네(聲感心)/ 담박하면서도 조화로우며(淡乃和)/ 정중하고 지나치지 않노라(莊不淫)/ 마음과 어울리고 기와 어울리며 천지와 어울리니(心和氣和天地和)/ 아 금(琴)이란 금할 금(禁)자의 뜻이 있으니(嗚乎琴者禁也)/ 금지한다는 것은 사심(邪心)을 금함이로다(禁其邪也).' 이 글에서도 거문고를 통해 나쁜 마음인 사심을 금하면서 인(仁)의 마음을 함양하고자 하는 뜻을 표현하고 있다.

'악학궤범'을 편찬한 용재(용齋)성현(1439~1504)은 거문고를 좋아하고 연주도 잘했는데, 거문고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했다. '나는 음을 교묘하게 하지 말고 음률을 고르자는 것이다. 음탕하고 안일할 정도로 방종하지 말고 중화(中和)의 덕을 이루려고 하네. 그저 읊고 노래하는 데 그치지 말고 가슴속의 사특하고 더러운 기운을 씻어내자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옛날 군자들이 까닭 없이는 거문고를 곁에서 떼어두지 않았던 뜻이라네."

그리고 심신을 닦는 도에 대해 묻자 이렇게 대답했다. "담담하여 아무런 경영이 없고 공평하며 사심도 없고, 궁해도 불만이 없고 곤해도 주린 빛이 없고, 한가해서 생각도 수고로움도 없고, 자유로워 칭찬도 허물함도 없으며, 욕심도 사사로운 정도 없고, 옳음도 그름도 없으며, 형(形)도 상(象)도 없이 한다면 거의 도에 이르러서 지인(至人)의 영역에 들어가게 된다네.' 선비들이 거문고를 가까이 두며 사랑한 것은 사특한 마음과 나쁜 기운을 멀리해 덕이 높은 경지에 이르고자 했기 때문임을 알 수 있다.

◆오능(五能)과 오불탄(五不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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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규 (문화전문 칼럼니스트)

이런 거문고인 만큼 거문고를 함부로 다루지 않고 연주하지도 않았다. 거문고를 탈 때는 연주해서는 안 되는 상황과 연주할 수 있는 조건 등 원칙을 정해놓고 지켰다. '오불탄(五不彈)' '오능(五能)'이 그것이다. 거문고 악보집인 '한금신보(韓琴新譜)'(1724)를 비롯한 옛 기록에 많이 실려 있다.

거문고 명인이자 학자인 노주(老洲) 오희상(1763∼1833)은 특히 오불탄 정신을 강조했다. 그는 거문고를 탈 때 오불탄의 원칙을 반드시 지켰다고 한다. 오불탄(五不彈)은 거문고를 연주해서는 안 되는 다섯 가지 상황을 말한다. 강한 바람이 불고 비가 심하게 올 때, 속된 사람을 대할 때, 저잣거리에 있을 때, 앉은 자세가 적당하지 못할 때, 의관을 제대로 갖추지 않았을 때이다. 반면 자세가 편안하고(坐欲安), 똑바로 볼 수 있고(視欲專), 마음이 한가하고(欲閑), 정신이 맑으며(神欲鮮), 손가락이 온전할 때(指欲堅)라야 연주에 임했다. 이를 오능(五能)이라 한다.

오희상은 '거문고의 묘함은 정신에 있지, 소리에 있지 않다'라고 강조했다. 삿된 마음을 금하고 자신을 이기는 방법 중에 거문고 연주가 으뜸이라고도 했다. 이는 선비들의 공통된 생각이었다. 선비들이 거문고를 가까이 두고 즐긴 주목적은 마음의 도를 깨닫고 길러가는 데 있었던 것이다.

김봉규 <문화전문 칼럼니스트> bg429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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