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뉴스] 머리털 나고 처음 고향을 떠나다…귀촌 생활일지

  • 강미영 시민기자
  • |
  • 입력 2024-04-02 13:43  |  수정 2024-04-03 08:58  |  발행일 2024-04-03 제24면
임대주택 덕분에 40여년 대구서만 살다 귀촌
스마트폰만 쥐고 있던 아이들, 흙과 풀과 만져
20240319_101424
귀촌해 새 둥지를 마련한 경남의 마을로 들어가는 길. 방풍림으로 조성된 소나무숲이 아름답다.


"개학 하루 전에 가면 되지. 뭐 그리 바쁘냐?"

서운함 가득 담아 건네는 부모님을 뒤로하고 차에 올랐다. 마음이 들떠 돌아갈 날만 손가락 꼽고 또 꼽다가 아이들 새 학기 시작 3일 전에 이삿짐을 옮겼다. 평생 살던 대구에서 한 시간 남짓 거리인 경남으로 귀촌한 지 이제 삼 주째. 귀촌이 순식간에 일어난 일 같아 아직 실감 나지 않는다.

딱 1년만 있다가 오라고 몇 번이나 당부하며 섭섭해하시는 부모님. 벌써 1년 뒤의 계획을 꺼내놓는 남편. 넓고 탁 트인 모래 운동장과 그물 놀이터에 인라인스케이트·승마·수영 등 다채로운 방과 후 활동이 있는 학교로의 전학에 들뜬 아이들. '귀촌하면 제대로 텃밭 가꿀 거야. 장도 담고, 천연발효빵도 굽고. 도서관 봉사도 할까. 운동부터 하자'며 그동안 못했던 일들을 모조리 적어놓았다. 불과 석 달 전만 해도 이런 상황을 상상이나 했을까.

KakaoTalk_20240319_102729664_01
마당 한 켠에 만들고 있는 작은 텃밭.


야근은 기본에 주말도 출근하며 밥은 늘 대충 때우던 일상이었다. 쫓기는 듯한 시간,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걸까 싶었다. 고민이 깊어지다 시골 작은 학교에서 주택을 임대한다는 글을 자연육아커뮤니티에서 보고 귀촌을 결심했다. 임대주택 덕분에 늘 꿈꾸던 귀촌이 현실이 됐다.

아침마다 아버지와 약숫물 뜨러 다니던 앞산(대덕산) 자락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덕분인지 가슴 한편에 늘 자연과 시골에 대한 선망을 품고 있었다. 대구에서만 40여 년을 산, 토박이다. 전학생에게 임대주택을 제공하는 시골 작은 학교와 아이들 덕분에 대구를 처음 떠났다.

곰처럼 생기고 볕이 잘 들어 '웅양'이라고 불리는 마을이다. 마을 입구에는 소나무숲과 500년 된 보호수가 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스마트폰만 쥐고 있던 아이들이 발밑을 살피고 풀을 만지며 논다. 전학 서류를 잊어 후다닥 하는 와중에도 아이들은 함께 놀자 보챈다. 동네 고양이 밥도 주고 자전거도 타야 한단다. 시골이라고 해가 빨리 지지도 않을 텐데 시골의 낮은 아깝고 소중하게 느껴진다.

트럭과 승용차 가득했던 짐을 8평 작은 집 안에 차곡차곡 채운다. 현관을 열면 아파트 콘크리트 벽 대신 나무가 보인다. 풀냄새가 나고 주변이 모두 농지다. 농사가 시작되는 시기라 곧 동네에 풀 내음, 봄꽃 향기만 나지는 않는다. 어떤 일상일지라도 스스로 만들어가야 의미 있다. 하루를 온전히 살며 이곳에 스며들고 싶은 소망 하나 품어본다.

글·사진=강미영 시민기자 rockangel@hanmail.net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시민기자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