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뉴스] 미수(88)에 수필집을 낸 어르신, 68세 등단해 이번이 세번째 발간

  • 박태칠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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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4-09 14:29  |  수정 2024-04-10 06:48  |  발행일 2024-04-10 제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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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세에 수필가로 등단한 윤호기 어르신이 미수를 맞아 낸 3번째 수필집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미수에 책을 낸 어르신이 있어 화제다. 그것도 가난으로 인해 초등학교 밖에 졸업하지 못한 여건 속에서 68세에 수필가로 등단해 고희(70)에 첫 수필집을 낸 후, 다시 4년이 지나 아내의 고희에 맞춰 두 번째 수필집을 냈다. 이번이 세번째다.

그뿐 아니다. 가난을 탈출하려고 17세에 지류(紙類)도매상 점원으로 들어가서 겨울철 언 손으로 배달 일을 하다가 동상이 심해 손의 신경이 마비된 3급 장애인이다. 그런데도 가내공업에서 출발해 자동화공장을 차리고 수십 명의 직원을 거느린 기업체까지 일궈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대구시 북구 침산동에 사는 윤호기 (88)씨다. 인터뷰 약속을 한 지난 3월26일,1분의 오차없이 정확히 약속시각에 나타났다. 그는 남덕유산 밑자락인 경남 함양군 서상면 칠형정마을에서 8남매 중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수필을 쓰게 된 동기를 묻자 "평생을 몸 바쳐 일하던 사업장을 큰아들에게 물려주고 난 후 60대 후반에 글에 취미를 갖게 됐다. 그러던 중 한 문화강좌에서 수필을 가르치는 곽흥렬 선생을 만나 본격적인 글공부을 했다"고 말했다.

그는 고희를 앞두고 월간 문학공간을 통해 수필가로 등단했다. 이어 등단작품의 제목을 딴 첫 수필집 '고원의 나목'을 낸 후 4년만에 '마음은 아직 그곳에'란 두 번째 수필집을 냈다. 이 책에서 지도 강사이자 수필가인 곽흥렬씨는 '자수성가한 기업가에서 문인으로 성공적인 변신을 하게 된 비결은 성실성에 있다. 그분과 인연을 맺은 10년 동안 단 한 번도 약속을 어긴 일이 없다. 그의 수필은 시적 표현에 바탕 한 서정적 수필이다'라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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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호기 어르신이 낸 3권의 수필집. 맨 오른쪽 책이 이번에 발간한 '뿌리깊은 나무'다.

미수에 낸 세 번째 책의 제목은 '뿌리 깊은 나무'다. 표지에 있는 바위틈에 자란 오래된 노송이 눈에 띈다. 그는 "3대가 나무를 원료로 한 종이로 살아왔다. 바위 틈새에 뿌리를 박고 억척스럽게 삶을 사는 소나무처럼 1대는 고생을 했다는 뜻이다. 책 내용도 족보를 대신해 쓴 가족사의 뿌리 같은 이야기다"고 설명했다.

책에는 본인의 글뿐 아니라 자녀와 자부와 사위·손자의 글도 있어 다양한 연령층에서 읽을 수 있다. 가벼운 신변잡기성 글이 아니고 새마을 운동·한지의 우수성 같은 사회적 문제를 다룬 중수필도 있다. 주제선정뿐 아니라 필력 또한 만만찮다.

고생을 너무해서 열 손가락 지문이 다 닳아 지폐를 헤아리지 못하고, 아파트 현관문 지문 인식 시스템 자물쇠가 열리지 않아 복도신세를 진 적이 여러 번 있다고 한 그를 보니 질곡의 세월을 홀로 꿋꿋이 이겨낸 강인함과 고독이 느껴졌다.

'삶이란 고독과 갈등의 경전이다. (중략) 그래서 좋은 책과 좋은 생각을 만나러 오늘도 고난의 바다인 수필 세계를 헤엄치고 있다'란 글이 그의 삶을 얘기하는 것 같다.

글·사진= 박태칠시민기자 palgongsan72@kakao.com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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