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구로에서] 현실 같은 영화, 영화 같은 현실

  • 홍석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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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4-03 07:03  |  수정 2024-04-03 07:06  |  발행일 2024-04-03 제26면
저출생 따른 인류 멸망 그린
디스토피아적 영화 속 상황
저출생 현상으로 현실화돼
지역은 물론 국가 존립 위협
개인 아닌 공동체 역할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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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석천 경북부장

마거릿 애트우드 원작 소설을 드라마화한 '시녀이야기'를 우연히 봤다. 근본주의자들이 권력을 잡은 머지않은 미래. 인류는 전쟁과 공해, 각종 질환으로 출생률이 급감한다. 인류는 종말에 대한 두려움에 빠져들고, 여성들을 가임 여부에 따라 계급을 나눈다. 이 중 '시녀' 계급은 임신 가능한 여성들로 아이를 낳는 데만 집중한다.

'인류 멸종'이라는 절망적 미래관은 2006년 개봉한 '칠드런 오브 맨'이라는 영화에서 더욱 적나라하게 표현된다. 절망적인 세상을 그린 디스토피아물로 저출산을 넘어 '무출산'이라는 처참한 인류의 모습을 담고 있다. 사람들은 더 이상 어린아이의 울음소리를 듣지 못한다. 18년째 아이를 낳은 여성이 없기 때문이다. 더 이상 아기가 태어나지 않는 미증유의 재난을 맞이한 인류는 파멸을 향해 나아간다.

문제는 현실세상과 영화 속 배경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영화의 배경이 된 영국처럼 한국은 지난 20년간 저출생 문제와 싸워왔다. 2005년부터 저출산고령화사회 기본법을 발족시키고, 2006년부터 280조원을 투입했지만 출산율은 오히려 급속 하락했다.

2020년에는 세계 최초로 출산율 0.8명대에 진입했다. 그로부터 2년 만에 0.7명대로 떨어진 출산율은 다시 2년 만인 2023년 말에는 0.6명대로 추락했다. 지난해 태어난 신생아 수는 23만명으로 불과 1년 새 거의 2만명이 감소했다.

'칠드런 오브 맨'처럼 아기 울음소리를 듣지 못하는 현실과 오래지 않아 마주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엄습해 온다. 실제로 최근 충북 진천군의 한 마을에서 3년 만에 아기 돌잔치가 열리자 동네 주민들은 물론 국무총리까지 참석해 축하할 만큼 저출생의 문제는 심각하다.

저출생은 지역은 물론 나라의 존립을 위협한다. 경제 생산인력보다 수요인력이 많아지면서 나라와 지역의 성장동력이 꺼지고 있다.

지금까지 봐왔듯 현금지원과 같은 일차원적 정책은 미봉책에 불과하다. 결혼과 출산 의욕을 떨어뜨리는 사회의 구조적 문제 해결 대신 아이 낳으면 돈 준다는 식의 세금 만능주의로는 '아이 낳고 싶은 나라'를 만들 수 없다.

전문가들은 출산에 가장 영향을 미치는 변수로 일자리와 주거 안정, 육아환경을 꼽고 있다. 좋은 일자리를 구할 수 있고 좋은 공교육에 아이를 맡길 수 있다면 출산율은 자연스레 높아진다는 것이다.

저출생에 따른 인구 감소 상황을 전쟁으로 보는 곳도 있다. 경북도다. '저출생'과 전쟁을 선포했다. 육아를 개인이 아닌 지역사회의 역할로 규정했다. 부모에 대한 지원을 늘리고, 육아 및 공교육 인프라에 투자하고, 노동시간을 줄이고 있다. 또 주거보조를 확대하고, 가족지원 예산을 늘리고, 차별적 관행 철폐에 나서고 있다. 결혼과 거주, 육아까지도 지역이 함께 고민하고 해결해 준다는 것이다.

그만큼 절실한 위기감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영화 속 영국의 정치와 경제, 종교적 모습은 섬뜩할 정도로 현실과 닮았다. 이대로 가다간 '현실 같은 영화'가 아닌 '영화 같은 현실'이라는 파국을 맞을지 모른다.

참고로 '칠드런 오브 맨' 영화의 시대적 설정은 2027년이다. 불과 2년 뒤다. 고민보다는 행동해야 할 때다.
홍석천 경북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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