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와 세상] 동굴의 환영

  • 권 업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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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4-12 06:59  |  수정 2024-04-12 07:00  |  발행일 2024-04-12 제26면
동굴은 우리가 사는 세상
죄수는 바로 우리 자신이다
우리는 보이는 이미지로만
세상을 바라보고 이해하며
진실 알려고 시도조차 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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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 업 객원논설위원

칠흑 같은 지하 동굴 속에 죄수들이 갇혀 있다. 그들은 태어나면서부터 팔다리가 묶이고 목조차 족쇄가 채워져 움직이지 못하고 그저 동굴 벽만 보고 살고 있다. 죄수들의 등 뒤에는 횃불이 타고 있고, 그 사이에서 사람들은 인형극 놀이를 한다. 나무로 만든 동물과 사람을 가지고 꼭두각시놀이를 하는 것이다. 죄수들은 횃불에 의해 동굴 벽에 투영되는 자신들과 인형들의 그림자를 볼 뿐, 인형들과 이들을 움직이고 대사를 읊는 사람들의 실제 모습은 볼 수도 없고 본적도 없다. 죄수들에게 그림자는 실재이고 들리는 대사는 그림자의 대화로 인식한다. 그림자라는 인식은 아예 없는 것이다. 그러다 한 죄수가 탈출하여 동굴 밖으로 나가면 평생 처음 경험하는 눈부신 햇살 때문에 한참을 헤매다 서서히 보이기 시작하는 자연과 사람들의 모습에 몹시 당황할 수밖에 없다. 이것이 동굴 속에서 봤던 그림자들의 진짜 모습이라고 아무리 일러줘도 그 사실을 거부하고 오히려 그것들이 환영이라고 우긴다.

이 이야기는 플라톤의 '국가론'에 담긴 유명한 동굴 우화다. 동굴은 우리가 사는 세상이고 죄수는 바로 우리 자신이다. 우리는 보이는 세계의 이미지만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이해한다. 진실을 아무리 알려주어도 알려고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이를 인지심리학에서는 '확증편향'이라고 부른다. 사실 여부를 떠나 자신의 판단에 부합하는 정보만 수용하고 그 판단과 반대되는 의견들은 의도적으로 무시해버리는 현상이다.

개미 투자자 김씨는 A 기업의 주가가 오를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이 기업에 몰빵 투자를 했다면, 신제품 출시나 해외 수주 같은 이 기업의 호재에만 귀를 기울이고, 취약한 재무구조나 경쟁기업의 약진 같은 불리한 정보는 배척하거나 사소한 요인으로 애써 무시해 버린다. 갭 투자에 의해 다주택을 보유한 사람은 우리나라 부동산 가격은 장기적으로 언제나 우상향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고, 무주택자들은 현재 집값에는 과거 일본처럼 거품이 잔뜩 끼어있다고 판단을 하고 있다. 그래서 다주택자들은 건축자잿값 인상과 부동산 불경기에 따른 재개발·재건축 부진, 이어지는 주택 공급부족 현상에 주목한다. 반면 무주택자들은 미분양 아파트 양산과 저출산율, MZ세대에서 속출하는 주포자(주택 구입 자포자기) 기사에 몰입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세계와 함께 사이버세계 역시 또 다른 동굴이다. 유튜브에서 주식이나 부동산 투자 관련 영상을 검색하여 보고 나면 내재된 필터버블 알고리듬에 의해 내 입맛에 맞는 내용으로 도배된 또 다른 영상을 보게 된다. 편의성을 높이기 위해 설계된 알고리듬이지만 역설적으로 구독자의 확증편향성을 강화하는 결과를 낳는다. 입맛에 맞는 주장을 선택할 수 있는 SNS와 OTT 플랫폼도 우리가 살고 있는 동굴의 일부이고, 이들은 모두 과잉·과격·과몰입을 부르는 알고리듬을 장착하고 있다.

요즘 선거철에 정치인과 정치 유튜버들이 뻔한 가짜뉴스와 거짓말을 마구 해댈 수 있는 것은 이에 환호하는 대중이 있기 때문이다, 확증편향에 기대 정치인들은 강성 팬을 얻고 유튜버들은 돈을 번다. 여기에 우리 사회를 이어주고 지탱하는 도덕과 윤리는 설 자리가 없다. TV 화면에 비치는 정치토론은 공정성을 내걸지만 사실 여부와 관계없는 확증편향 간의 싸움이라는 것이 전북대 강준만 교수의 말이다. 결과적으로, 우리 사회를 보수와 진보 간 이념적 견해차도 아니고 미래 비전과도 관계없는 감정적으로 극단적인 대립상태로 몰아가고 있다. 한국사회및성격심리학회는 올해 두드러진 심리현상으로 확증편향을 꼽았다.
권 업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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