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
복희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차가운 바닥에 앉아
주인을 기다리고 있던 개가 일어선다
개가 걷고
소녀가 따라 걷는다
인기척을 느낀 소녀가 먼저 지나가라고 멈춰 서서
개를 가만히 쓸어주고 있다
희미한 달이 떠 있다
모두 눈이 멀지 않고서는 이렇게 차분할 수 없다
남길순 '복희'
개의 이름은 복희, 소녀는 개와 잘 연결되어 있다. 호수 주변의 길을 산책하면서 몸짓이 큰 복희와 어린 소녀는 자주 다른 사람을 위해서 멈추었다. 그때마다 소녀는 복희를 쓸어주고 있다. 복희는 소녀의 손길을 잘 받아주고 있다. "모두 눈이 멀지 않고서는 이렇게 차분할 수 없다"는 장면, 개와 소녀 그리고 호숫가와 달이 정물화처럼 느리게 움직이고 있다. 커다란 개와 소녀는 낯선 풍경이지만 조금도 거슬리지 않으면서 미소를 머금고 있다. 소녀를 따르는 우리의 개 복희는 소녀가 좋아하는 잔잔한 호수와 다르지 않다. 따뜻함이란 이처럼 비범하다. 사족, 희미한 달은 낮달일까 아니면 초저녁의 달을 가리키는 걸까.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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