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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설 체육팀장 |
맨발학교 권택환 교장의 강의에서 일본 토리야마 보육원의 체육활동 영상을 재밌게 본 적 있다. 다섯살 된 아이들이 운동장에서 걸음아 날 살려라 달리기를 하고, 자신들의 키보다 큰 10단 뜀틀을 뛰어넘고, 물구나무서기를 한 채 걸어 다녔다. 얼마나 신기했던지 청중 사이에서 실소가 터져 나왔던 기억이 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아이들이 교실에서 보여준 모습. 운동장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놀다 교실로 들어간 아이들은 각자 책상에 앉아 주판으로 산수문제를 풀고, 눈을 가린 채 멜로디언을 연주했다. 그림책도 유창하게 읽었다. 비결은 다른 보육기관보다 20배나 많은 체육시간에 있었다.
얼마 전, 몸의 움직임이 급격하게 줄면서 인간의 정신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는 내용의 글을 읽었다. 공감이 갔다. 손가락 하나로 많은 일을 하는 현대인들은 생활의 편리를 얻었지만, 정적인 생활 탓에 지능이 하락하고 창의적 아이디어가 고갈됐으며 반사회적 행동도 늘고 있다는 분석이었다. 2000년대 초부터 전 세계 국가의 IQ 점수가 오히려 낮아지고 있다는 데이터도 함께였다. 그전까지 이 점수는 10년에 평균 3점씩 상승했다.
우리는 얼마나 움직이지 않고 살아가는가. 오늘 아침 눈을 떠 잠들기까지 자신의 움직임을 한번 반추한다면 깜짝 놀랄 것이다. 현대의 성인들은 하루의 7할을 앉아있거나 누워서 보낸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아이들은 어떨까. 자유시간의 절반 정도를 앉아서 보낸다고 한다. 안타깝다. 마음껏 뛰어놀 나이에 앉아있다니.
2020년 여성가족부에서 실시한 청소년종합실태조사를 보면 9~18세 청소년의 일주일간 신체활동 시간은 평균 2.1시간에 불과하다. 그도 그럴 것이 학교에서 쉬는 시간과 점심시간 체육 시간 외에는 학교 일과 대부분이 앉아서 하는 활동으로 이뤄지고, 최근엔 전동 킥보드의 발달로 학생들의 신체활동이 더 줄어들고 있다. 코로나19 심화된 '언택트 문화'는 온라인 게임 같은 앉아서 노는 여가 문화를 증폭시켰다.
대구 칠곡중에선 월요일을 뺀 평일에 '0교시 체육 수업'이 열린다. 오전 8시 삼삼오오 교문으로 들어선 학생들이 가장 먼저 도착한 곳은 교실이 아닌 강당이다. 태권도 수업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교기가 태권도인 이 학교는 오전 8시20분부터 30~40분 운동을 한 뒤 교과수업을 들으러 간다. 태권도를 하지 않는 날은 운동장에서 맨발 걷기를 한다. 전교생 342명이 동참한다.
칠곡중 김동입 교감은 "아침 운동을 한 날은 하지 않은 날보다 급식 잔반이 11%나 더 줄었다. 운동을 한 날, 그만큼 더 먹는다는 뜻"이라며 뿌듯해했다. 이어 "운동을 하며 친구, 교사와 부대끼는 시간이 생겼다. 소통의 장이 마련된 것인데, 인간은 소통이 되면 관계가 풀린다"면서 아침 운동의 효과에 대해 만족했다.
미국의 체육 교사가 쓴 책 '운동화 신은 뇌'에는 체육시간을 0교시 수업으로 배치한 시카고 네이퍼빌 센트럴 고등학교의 실험이 나온다. 학업성취도에서 높은 향상을 보이며 운동이 청소년기의 뇌발달에 어떤 효과가 있는지 보여줬다. 또 다른 체육교사 필 롤러는 아침에 30~40분 체육수업을 받은 학생들이 그렇지 않은 학생들보다 읽기 능력이 17% 향상됐다는 보고를 한 바 있다. 다 뻔한 소리처럼 들리겠지만 좋은 줄 알면서 못하는 것이 운동인 것도 사실이다.
굳이 아침 운동과 학업의 긍정적 상관관계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체력의 중요성을 일선 학교에서 깨닫고 실천하는 모습이 희망적이다. 더 많은 아이들이 운동의 즐거움을 몸소 누리며 학업에 매진하는 날을 기대한다.이효설 체육팀장

이효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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