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무슨 결제 장부 같다. 전시관의 우아한 조명 아래 펼쳐놓은 고서에서 이런 내역이 나오리라고는 미처 상상도 못 했다. 조선 시대 수토사 일행의 체류비용이라는데, 도합 9개 마을 총 120냥이다.
"배 6척에 150명, 규모가 줄어든 경우에도 4척에 80명 정도는 됐다고 합니다. 이 일행들이 울릉도로 출발하기 전 여기 구산리 마을회관에 머물면서 순풍을 기다려야 했는데. 바람의 형편에 따라 머무는 기간이 길어지기도 하니까…."
도대체 이게 당시 물가로 얼마인 걸까? 조선 시대 1냥이 약 5만~7만원 정도라고 하니까… 품격 있는 고서 앞에서 궁색하게 계산기나 두드리고 있자니 울진 수토문화전시관 관리인 김성조씨가 슬그머니 말을 덧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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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풍헌 바로 옆에 자리한 울진 수토문화전시관. (위) 역대 수토사 관련 기록과 유적, 동해안 수군 등에 대한 다양한 전시물을 갖추고 있다. |
이것도 그나마 몇 번이나 관청에 민원을 넣은 끝에 9개 마을이 나눠 내게 됐을 때의 이야기이고, 처음엔 수토사 경비 전체를 구산동민들이 전담했었다고 했다.
아, 잊고 있었다. 우리 역사의 숱한 영웅들이 내디딘 거대한 첫 발자국은 사실 그 영웅과 함께 살아가던 수많은 작은 영웅들의 평범한 발자국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지금부터 하게 될 이야기는 '장한상'이라는 위대한 영웅의 수토 여정 뒤에 숨은 무수한 작은 영웅들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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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진 수토문화전시관 주변에는 수토사 추모공원과 구산항 전망대가 있고 전시관 건너편으로는 독도조형물과 수토선 모형도 함께 볼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어 구산항이 울릉도 수토 출항의 기점이었음을 알려준다. |
"어린 학생들이 여기 오면, 제가 늘 아이스크림 상품을 걸고 내는 퀴즈가 하나 있습니다. 한번 맞혀 보세요. 자, 이 건물은 조선 시대 다른 건물과는 달리 눈에 띄는 특성이 한 가지 있습니다. 그게 뭘까요?"
올여름, 울진 여행 계획이 있는 초중고 학생 가족이라면 주목하시라. 공짜 아이스크림을 먹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매번, 꼭 하는 질문이라고 했다.
울진 수토문화전시관 관리인이자 농어촌마을해설사이기도 한 김성조 씨는 연신 싱글벙글이다. 문화재며 역사는 고리타분하다는 편견을 아이스크림을 미끼로 한 방에 깨뜨리는 진행 솜씨를 지녔다.
"처마 아래… 현판이…."
"2개네요!"
힌트가 연이어 나오자 순천장씨대종회 장선호 회장이 한발 빨리 정답을 맞힌다. 역시 장한상 장군의 후손답게 순발력이 뛰어나다. 그러고 보니 '대풍헌(待風軒)'이라 적힌 현판 옆으로 '기성 구산 동사(箕城龜山洞舍)'라고 적힌 현판이 나란히 걸려 있다. 기성은 평해의 옛 이름이고 구산은 마을 이름이다. 원래는 마을회관으로 사용되었다가 수토관 일행이 순풍을 기다리며 숙소로 사용하면서 대풍헌으로 불리게 되었다. 1851년(철종2) 6월에 건물을 중수하고 대풍헌 현판을 걸었으며 건물 정면에 이 역사를 보여주는 2개의 현판이 나란히 걸려 있다.
"평해 구산동 마을회관이라는 뜻이잖아요. 제가 어릴 때만 해도 여기가 그저 오래된 마을회관인 줄만 알았죠. 여름이면 여기 대청마루에서 동네 조무래기들이 만날 뛰어놀고 그랬는데, 그때만 해도 '수토사' 이런 역사는 자세히 몰랐죠. 어른들한테 말만 몇 번 들었을 뿐이고 잘 알지도 못했어요."
그랬는데 2005년 대청마루 옆 온돌방 벽장에서 중요한 고문서 2종이 발견됐다. 벽장 속에는 마을회의 내용을 기록한 회의록이 수십 권씩 쌓여 있었는데, 오래된 그 문서 더미 속에 미처 몰랐던 보물이 있었던 것이었다.
"그게 완문(完文·1811년 제작)하고, 수토절목(搜討節目·1823년 제작)이라고 합디다. 수토사들이 2년이나 3년에 한 번씩 울릉도 들어갈 때면 여기 구산항에서 출발하는데, 울릉도로 가는 순풍이 불어야 바람을 타고 갈 수 있거든요. 그러니 바람 좋은 날을 기다려야지. 생각해 보세요. 군사들 100여 명이 여기서 먹고 자고 하면서 바다 건너기 좋은 때를 기다리고 있으니, 그 장정들 방 내주고 밥 해주고… 우리 구산동 주민들 등골이 휘어지지 않겠어요? 그러니까 평해 관아에서 각 동마다 경비 120냥을 어떻게 분배하라, 그 방책을 적어서 마을마다 보냈다는 거예요. 그 문서가 여기 이 안에서 발견된 것이죠."
대풍헌 온돌방 벽장에는 여전히 오래된 문서 궤짝이 남은 문서들과 함께 그대로 놓여 있었다. 바닷가 주민들의 삶 속에 중요한 역사 증거자료가 숨어 있었던 것이다.
◆수토문화전시관의 관리인이 된 이장님
마을회관의 역사적 가치가 세상에 드러나면서 '대풍헌'에도 순풍이 불기 시작했다. 그즈음 김성조씨는 마을 이장 일을 맡고 있었다.
"밤에 가만히 누워서 생각을 해보니, 이게 보통 일이 아니라요. 대풍헌 복원사업에 예산이 떨어졌다는데, 이게 내 마지막 할 일이 아닌가 싶더라고요."
울진 구산리에서 나고 자라 대풍헌에서 뛰어놀던 꼬마는 동네 어른들께 들은 대풍헌의 역사 이야기를 마을신문으로 만들어서 돌리곤 했었다. 그 시절을 기억하는 분들이 자꾸 돌아가시면서 이제는 대풍헌이라는 역사 자체가 기억에서 사라지고 있었다.
"한 10년? 10년쯤 걸린 것 같아. 전시관하고 요 뒤로 전망대도 만들고, 전망대 가는 길에 수토사 추모광장도 조성하고. 저는 뭐, 그저 부지런히 쓸고 닦고 관리하지요. 저는 수토사 역사 이야기는 자세히 잘 몰라요. 그런 건 해설사님 오시면 잘 설명해 주시는 데, 전화해 볼까요?"
대풍헌 대청마루에 앉아 장선호 회장이 싸 온 쑥떡을 나눠 먹으면서 그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몇 시간 전의 첫 만남이 다시 떠올랐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전시관 마당을 쓸고 있던 그는 차에서 내리는 우리를 보자마자 싱글벙글 웃으며 다가와 '어떻게 오셨냐'며 반가워했다. 이렇게 멋진 전시관에 와서 화장실만 이용하고 그냥 가는 경우도 많은데, 전시관에 이렇게 오래 머물 줄 알았으면 미리 에어컨이라도 틀어놓을 걸 그랬다며 연신 미안해하셨다.
예기치 않게 일찍 들이닥친 방문객 때문에 부리나케 청소를 마무리하느라 여전히 땀을 뻘뻘 흘리고 있던 그의 손에는 가장자리가 나달나달해진 프린트물이 들려있었다. 거기엔 대풍헌의 역사와 이곳에서 발견된 수토 관련 문서, 제목, 제작연도 같은 것들이 요약 노트처럼 빼곡하게 정리돼 있었다. 이미 충분했다. 이곳이 얼마나 중요한 곳인지, 이곳이 얼마나 대단한 곳인지 너무 잘 느껴졌다. 지식 같은 건 검색창에 두드려 보면 차고 넘치게 나온다.
"선생님, 저는 오늘 이곳에서 최고의 해설사를 만난 것 같습니다. 선생님께서 여기 계셔서 너무 고맙습니다."
장선호 회장이 대풍헌을 나서며, 길 떠날 채비를 도와준 이에게 손을 내밀었다. 장한상 장군의 후손이 수백 년의 세월을 지나 구산리 주민에게 감사 인사를 건네는 순간이었다.
◆어쩌다 보니 '독도 전문가'가 됐다는 관장
"사실 장한상 장군은 울진 구산항에서 출발하지는 않았어요. 장군 이후에 울릉도 수토 활동이 정례화되면서 울릉도로 가는 최단 거리, 최적의 항법이 점점 발전하게 됐고 그러면서 구산항이 수토사들의 출항 기점이 된 것이죠."
대풍헌 고문서를 최초로 발견했던 당시를 회고하며 심현용 박사(울진 봉평리 신라비 전시관장)가 살짝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역시나 문헌과 기록에 철저한 학자답다. 장한상 장군이 수토사로서 울릉도에 처음 들어간 시기는 안용복이 일본에 납치된 이듬해인 1694년, 당시 삼척영장이던 장군은 강원도 삼척부의 남면 장오리진(莊五里鎭) 대풍소(待風所)에서 배를 출발시켰다. 사람을 실은 기선과 짐을 실은 복선 각 1척, 급수선(汲水船) 4척에 모두 150명이 출항했다.
"중요한 건 '군사'를 파견했다는 것입니다. 전쟁하는 군인이 파견됐다는 것은 조선이 독도를 영토로 관리했다는 의미거든요. 영토가 아니면 관리할 필요가 없죠."
구산리 대풍헌에서 수토절목과 완문이 발견되면서 조선 후기인 19세기까지 우리나라가 독도를 실질적으로 지배했음이 명백하게 입증된 것이라고 했다.
"이게 얼마나 중요한 자료입니까?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이 허구라는 결정적인 증거들인데, 저는 그 문서를 발견하고 너무너무 기뻐서 만세를 불렀거든요? 그런데, 하아… 학자들 사이에서 연구가 진행이 안 되는 거예요. 저는 사실 독도가 제 전문 연구 분야도 아니거든요. 그래도 일단 번역부터 해놔야 다른 사료들과 비교도 하고 그럴 것 같아서, 급한 대로 제가 번역부터 맡기고…."
그러다 보니 어느새 독도 전문가가 돼 있더란 얘기. 그러면서 장한상 장군의 발자취를 따라 울릉도로 간다는 우리에게 조선 '수토사'의 '개요 정도'를 파악할 수 있을 거라며 약 500페이지에 달하는 학술자료를 건넸다.
아아… 대체 이 길 위에는 어찌 이토록 열정적인 '첫 주자'들이 많단 말인가! 이제 겨우 첫발을 내디뎠을 뿐인데, 울릉도에서는 과연 어떤 '퍼스트 펭귄'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인가!
글=이은임 영남일보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연구위원
사진=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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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관영,이은임 영남일보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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