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시론] 당신이 인간임을 증명하시오

  • 이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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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6-13  |  수정 2024-07-02 10:46  |  발행일 2024-06-13 제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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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경 (한국스토리텔링 연구원장)

나는 문과생이다. 기계엔 문외한이다. 낯선 기계는 두렵다. 낡은 휴대폰을 불편함을 감수하면서까지 바꾸지 않는 이유도 '깔고, 깔고, 또 깔고'가 어려워서다. 스크린 화면에 터치로 조작되는 기계보다는 버튼을 꾹꾹 누르거나 다이얼을 좌우로 돌리는 즉물적인 작동방식에서 마음의 평화를 얻는 편이다.

그런 내가 얼마 전부터 e북의 세계에 도전했다. 딸과 함께 식당 키오스크를 쓰다가 들은 한마디 때문이다. 더듬더듬 몇 번의 취소를 반복하는 나를 옆에서 한심스럽거나 안쓰럽거나 그 중간 어디쯤의 표정으로 지켜보던 딸이 불쑥 말했다. "엄마가 늙어서도 카페에 앉아 맥북을 두드리는 멋진 할머니가 되었으면 좋겠어. 그러려면 지금부터 신문물과 친해져야 해." 그래? 그게 뭐 어렵다고. 우리 딸이 원하는 멋있는 할머니, 되어 주지 뭐. 아무래도 가장 친숙한 분야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겠지. e북이다.

호기로운 시작과 달리 지금은 책과, 정확히는 e북과 조금씩 멀어지는 듯하다. 페이지를 넘기며 앞뒤를 자유롭게 읽는 것도, 책갈피를 접어두는 것도, 밑줄을 좍좍 그어가며 읽는 것도 안 되니 글자와 의미는 모니터 화면 위를 뱅뱅 돌 뿐이다. 도무지 읽히지 않는다. 난독증에 걸린 느낌.

아예 다른 분야에 도전하는 게 쉽지 않을까. AI다. 마침 찾을 자료도 있고 해서 요즘 핫하다는 코파일럿에 접속했다. e메일을 만드는 것까진 쉬웠다. 사용자의 신원을 확인하는 이미지 매칭 테스트에서 예상 못 한 난관에 부딪혔다. 서비스 사용에 앞서 '당신이 사람인지 로봇인지 확인하겠다'고 한다. 로봇이 왜 코파일럿에 접속하는지 모르겠지만, 좀 귀찮군. 그게 시작이었다. 내가 사람인지 로봇인지를 검증하기 위해서는 20개의 문항에 답해야 한다. 이미지 패널 중 정해진 숫자와 일치하는 이미지를 선택하는 것이다. 문제는 이미지의 크기 자체가 너무 작은 데다 세밀해서 잘 구별되지 않는다는 것. 손톱만 한 크기의 이미지는 애매하고 모호했다. 도무지 이것인지 저것인지, 분별이 되지 않았다. 첫 번째 도전, 결과는 "다소 미흡합니다". 도대체 뭐가 미흡한 거지? 다시 두 번째 도전. 역시 "다소 미흡합니다". 내가 로봇처럼 너무 완벽하게 맞춰서 통과하지 못한 건가. 그렇다면 다시 한번, 세 번째 도전. 또다시 "다소 미흡합니다". 이쯤 되니 슬슬 열이 오르면서 평정심을 잃는다. 이성을 잡고 있던 줄이 끊어지고 나는 이미지 매칭의 개미지옥에 빠진다. 나 안 해. 내가 사람인데 도대체 뭘 더 증명하라는 거야. 사람이 사람임을 증명하는 게 이렇게 어려울 일이야. 이런 것도 제대로 판별 못하면서 AI는 무슨 AI야.

하지만 나는 그 이후로도 모니터에 코를 박고 테스트를 반복했고 마,침,내, 코파일럿 AI와 대화할 수 있는 '사람'임을 증명했다. 마치 영화 '블레이드 러너'의 첫 장면에 등장한 보이트-캄프 테스트를 받는 레플리칸트처럼.

오랜 '사람 증명' 테스트에 지치고 화난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로봇과 어떻게 다른가. 아니, 어떻게 달라야 할까.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으로 진화 중인 AI는 이제 불완전한 인간이 그 불완전함을 극복하는 도구를 넘어 스스로 추론하고 판단하고 있다. 우리에게 남은 것은 인간의 존재 가치와 본질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이다.

이은경 (한국스토리텔링 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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