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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7일 대구 북구 산격동의 한 주택에서 봉사자들이 입구에 쌓인 쓰레기를 제거하고 있다. |
지난달 27일 대구 북구 산격동 주택가 골목에 노란 조끼를 입은 사람들이 모였다. 대문 앞에는 초록색의 거대한 압롤박스가 대기 중이었다.
이곳은 지난 1월25일 사망한 70대 할머니가 살던 집이다. 각종 물건이 집안을 가득 채우고 계단과 집 밖 마당까지 쓰레기가 쌓여 있다. 대문을 열고 들어설 공간조차 없다. 폐지와 고물, 쓰레기로 각종 벌레와 악취가 진동했다.
봉사자들은 대문 안 진입을 방해하는 대추나무와 무화과나무를 잘랐다. 켜켜이 쌓인 오물은 갈고리를 이용하고 작은 플라스틱과 병 종류는 마대에 담아 옮겼다. 조금이라도 더 많이 실으려고 봉사자 한 명이 압롤박스에 올라가서 쓰레기 자루를 받아 차곡차곡 포갠다.
이곳에 쓰레기가 쌓이기 시작한 것은 20여 년 전쯤으로 추정한다. 쓰레기는 집안 내부에서부터 쌓여 외부로 확대되며 1·2층에는 빈 곳이 한 뼘도 없다. 이로 인해 악취와 벌레에 시달리던 이웃의 민원은 끊이질 않았다. 봉사단체와 동 행정복지센터, 종교시설 등에서 아무리 손을 내밀어도 헛수고였다. 각종 단체에서 하루에도 몇 번씩 대화를 시도하고 공감대를 형성하려고 했으나 할머니는 끝내 마음의 문을 열지 않았다.
돌아가신 할머니의 이웃인 박규생(63)씨는 본인이 지부장으로 있는 전국보일러설비협회 대구경북지부 회원에게 도움을 요청해 쓰레기가 된 외부의 물건들을 치우기로 했다. 이에 22명의 회원은 잠시 생업을 미루고 봉사에 나섰다. 이날 오전 7시부터 오후 4시30분까지 치운 쓰레기의 양은 5t짜리 쓰레기 압롤박스 3대 분량이었다. 동네 사람들도 속이 시원하다. 악취 없는 여름이 되겠다며 고맙다고 봉사자들을 격려했다.
전문가와 상담사 등 많은 사람이 할머니와 접촉을 시도했으나 다 실패했다. 그렇게 남의 도움을 받기 싫어하던 할머니는 고인이 됐다. 살아생전 남의 도움을 받기 싫어하던 70대 할머니의 추억과 사연이 스며든 공간은 결국 남의 도움으로 정리됐다.
글·사진=김점순 시민기자 coffee-33@hanmail.net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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