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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우순씨가 달성군 옥포읍 반송리에서 하빈면 묘골로 옮겨진 태함 옆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대구시 달성군 하빈면 묘골. 560년 내력의 사육신 박팽년 선생 후손 마을로 유명한 곳이다. 묘골에는 국가문화유산인 태고정과 삼가헌, 지방문화유산인 도곡재를 비롯한 문화유산이 많다. 최근 묘골에서 생뚱맞은 문화유산 하나가 확인됐다. 조선 전기로 추정되는 왕실 태실에 사용된 태함이다.
태함은 묘골 입구 사육신기념관 옆에 있다. 2기의 큰 화강암 석조물로 원통형이다. 큰 것은 높이가 사람 가슴쯤 되며, 지름도 100㎝가 넘는다. 태함은 왕실에서 왕자, 공주 등이 태어났을 때 태를 묻는 태실 시설물 중 하나다. 태함은 몸체에 해당하는 함신과 덮개인 개석으로 이뤄지는데 전체 높이가 약 1천500㎝다. 바닥에는 구멍이 있는데 습기와 물을 배출하기 위해서다.
태함에는 태를 담은 태항아리와 태 주인의 내력을 새긴 태지석 등이 담긴다. 태실은 크게 아기태실과 가봉태실로 나뉜다. 모든 태실은 처음에는 '아기태실'로 조성된다. 이후 태실 주인이 왕이 되면 아기태실은 '가봉태실'로 업그레이드된다. 태실비와 태함으로만 구성된 아기태실에 비해 가봉태실은 가봉비, 중앙태석, 난간석 등 왕릉처럼 석물로 화려하게 조성된다.
묘골 태함은 본래 달성군 옥포읍 반송리 용연사 입구 태봉(태전봉) 정상에 있었다. 1906년 4월 박면동이란 사람의 묏자리를 조성할 때 땅속에서 나왔다. 함신은 산 아래로 굴러떨어져 사라졌고, 개석은 묘 옆에 남겨 두었다. 10여 년 전 용연사 입구 주차장 조성 때 사라졌던 함신이 다시 발견됐다. 이때 발견된 함신과 태봉 정상에 남아 있던 개석은 달성군농업기술센터 뜰로 옮겨졌다.
이러한 사실을 확인한 박면동의 4세손 박우순(67·하빈면 묘골)씨가 달성군과 협의해 2014년 태함을 현 위치로 옮겼다. 박씨는 어려서부터 집안 어른들로부터 태봉 묘와 태실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고 한다. 반송리 태실이 누구의 태실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석조유물연구가 임병기 씨와 '조선왕실의 태실' 저자 김희태 씨는 태함 형태로 볼 때 조선 성종~명종 시기 태함으로 추정했다.
글·사진= 송은석 시민기자 316917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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