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이곳은 안전하고, 다정합니다

  • 성욱현 시인·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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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7-09  |  수정 2024-07-09 07:55  |  발행일 2024-07-09 제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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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욱현시인·동화작가
어린 날, 나는 쉽게 길 잃는 아이였다. 매일 오가던 등하굣길, 심부름 가던 시장길, 따분한 오후에 나선 골목길에서 순간 길 잃을 때가 있었다. 분명 내겐 익숙한 길이었을 텐데 이곳이 어디인지 난 어디로 가야 하는지 헷갈려 걸음을 멈추었다. 하지만 무섭지 않았다. 걷다 보면 언제나 누군가 아는 사람을 만나거나 내가 아는 길 위에 서 있곤 했으니까. 그 시절, 아이의 동네길은 안전하고 또 다정했다. 골목과 골목으로, 가게와 가게로, 집과 집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동네라는 개념 자체가 점점 사라지고 있는 요즘, 안전한 길을 찾기란 쉽지 않다. 안전하고 다정한 거리는 우리의 유년 속에서나 건져 올릴 수 있는 환상이 되었다. 그럼에도 거리를 안전하고 다정하게 만드는 곳들이 있다면, 그곳은 작은 책방이지 않을까 싶다.

책방에 들어와 길을 묻는 사람들이 많았다. 외국인도 있었고, 아이들도 있었으며, 천안이라는 도시가 낯선 연인들도 있었다. 무언가를 묻기에 책을 한가득 쌓아두고 새로운 이야기를 기다리고 있는 책방만 한 곳이 또 있을까 싶다.

누군가에겐 나와 연결된 집 아닌 또 다른 공간이었다. 학원에서 있었던 일을 재잘재잘 떠들러 온 청소년이 있는가 하면, 커피가 모두 식어가는 동안 요즘 하는 일에 대한 푸념을 늘어놓던 정체 모를 대표님, 아이들 진로를 고민하는 학부모까지 다양한 이들은 이곳에서 삶을 풀어냈다. 책방에서는 그래도 된다는 듯이 말이다.

꼭 무언가를 구입해야 할 필요 없다. 입장의 자격도 없다. 책을 훑고 나가는 일이 자연스러운, 그렇기에 가장 무해한 영업장을 고르자면 그건 책방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들를 때마다 책을 사야 한다는 규칙이 있다면, 책방을 찾는 사람은 점점 줄 것이다. 단골을 만들기도,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기도 어렵겠다. 그리고 그곳은 더 이상 책방이라 할 수 없겠다.

물론 책방이 자선 공간은 아니다. 어떤 단골손님은 한번 방문에 한 권 구매가 예의라 말한다. 어떤 책방은 입장료를 받고 있다. 책방마다의 문화가 있고, 그것을 소비하는 이들에게도 그들만의 문화가 있겠다. 각각의 삶의 방식을 존중하지만, 마음 한편이 아릿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책방이 책방다운 일에 대해 고민한다. 여전히 책방은 안전하고 다정한 곳인가. 책을 펼치는 데에 자격이 없듯 책방을 들르는데도 그러한가. 세상 모든 책방의 고민이겠지만 우리가 세상에서 가장 안전하고 또 다정한 곳이었음을, 책방이라는 이름을 건 이상 그곳에 길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성욱현<시인·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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