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여행] 대구와 청도를 넘나드는 팔조령 옛길…주말무대 커튼이 열리듯 청도 땅이 펼쳐지면 방금 팔조령 넘은 것…

  • 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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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7-19  |  수정 2024-07-21 19:19  |  발행일 2024-07-19 제15면

[주말&여행] 대구와 청도를 넘나드는 팔조령 옛길…주말무대 커튼이 열리듯 청도 땅이 펼쳐지면 방금 팔조령 넘은 것…
멀리 보이는 저수지는 '팔조지'이고 그 아래는 팔조리 마을, 더 아래는 양원리다. 큰 산은 청도 남산이고 그 아래는 청도 읍성이 있는 화양읍이다.

팔조령 터널을 저 앞에 두고 삼산리 범골 표석을 따라 팔조령 옛길로 든다. 이렇게 좁은 길이었던가, 이렇게 텃밭이 많았던가. 가로수들이 무성해 터널을 이루는데 청량함보다는 어둑하고 습한 느낌을 받는다. 장마 때문인가, 범골이라는 이름 때문인가. 혹여 범이 나타난대도 납득할 요량이다. 팔조령과 헐티재가 자전거 라이더들의 성지라 한다. 일명 '헐팔'이라 불리는데 '죽을 똥 살 똥' 오르면 '엉덩이가 홀쪽해진다'는 코스다. 속도 40 표지판을 본다. 속도계는 25, 뒤따르는 차도 자전거도 없으니 한껏 게으르게 오를 참이다.

라이더 성지 '헐팔' 팔조령·헐티재
가로수 덮여 청량함보다 습한 느낌
도로 벗어나 올라간 고적한 석주사
경내 거대한 은행나무 위에 산신각
고갯길 휘돌아 만난 팔조령 휴게소


◆팔조령 봉화산 석주사

'팔조령 봉화산 석주사'라 새겨진 커다란 표석을 따라 도로를 벗어난다. 텃밭에서 일하던 검은 머리의 사나이가 흘끔 쳐다본다는 것을 인식하며 시멘트 길을 오른다. 크고 멋있게 생긴 일주문을 스친다. 몇 그루 배롱나무가 꽃피우려 애쓰고 있다. 곧 주차공간으로 보이는 너른 빈터에 선다. 가장자리에 커다란 돌 수조가 놓여 있다. 모서리마다 거북이가, 너른 면에는 물고기와 물결과 이파리 따위가 새겨져 있고 수원(水源)인 듯한 물고기 조각이 수조에서 튀어 오른 듯 하늘을 향해 입을 뻐끔 열고 있다. 곁에는 화려하게 조각된 화강암 받침 위에 오석의 공덕비가 받들어져 있는데 이들 맞은편 멀리에 영각이 자리한다. 한껏 높여진 한 칸 영각은 부도와 비석, 석탑, 갓바위 형상의 부처님과 꽃과 나무들에 둘러싸여 별세계를 이루고 있다. 석주사 창건주를 모신 곳 같다.

석주사는 1978년에 터전이 시작되었고 1982년에 대웅전이 건립되면서 사찰의 면모를 갖추었다고 한다. 50년이 안 된 절이다. 몇 걸음 오르면 잘 다듬어진 작은 터에 공덕비들이 자리하고 또 조금 오르면 이제 꽃 피기 시작한 배롱나무 속에 미륵불이 서 계시고 오른쪽에는 용왕신이, 왼쪽에는 포대화상이 자리한다. 고개를 돌리면 아주 높은 계단 위에 천왕문과 종각이 문루로 우뚝하다. 무언가 반짝거리는 느낌에 천왕문을 잊고 미륵불의 뒤쪽으로 난 질퍽한 길을 오른다. 거기에 연못이 있다. 연못에 잠긴 미륵불의 부드러운 뒷모습 위로 어지러운 요사채와 여러 전각들이 보인다. 파란 트럭이 연못을 에둘러 요사채 앞에 선다. 그리고 텃밭을 보살피던 검은 머리의 사나이가 합장으로 인사를 건넨다.

경내는 아주 깨끗하다. 5층 석탑을 중심으로 대웅전과 천불전이 자리하고 거대한 은행나무 위에 산신각이 있다. 어디선가 갈무리해 온 듯한 주춧돌, 이곳저곳 보물 찾기 하듯 앉은 부처님들, 뒷발로 천왕문 문짝을 붙잡고 있는 거북이, 잘 다듬어진 꽃과 나무들, 울지 않는 새들의 날갯짓 소리만이 들리는 고요한 절집. 석주사는 시간보다 연륜이 있어 보이고, 감각보다 아기자기하고, 예상보다 고적하다. 산신각으로 오르는 계단 옆 작은 숲에 노랗고 붉은 열매들이 나뒹군다. 자두인가. 조그맣고, 새들에게 쪼이고, 작은 산짐승에게 베어져 그것이 무슨 열매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것도 모른 채로 몹시 아름답다고 느낀다.

[주말&여행] 대구와 청도를 넘나드는 팔조령 옛길…주말무대 커튼이 열리듯 청도 땅이 펼쳐지면 방금 팔조령 넘은 것…
길이 스윽 하강하면서 청도 땅이 펼쳐지면 방금 팔조령을 넘은 것이다. 커다란 느티나무 그늘 속에 몇몇 자전거 라이더들이 벌겋게 단 얼굴을 식히고 있다.

◆팔조령길

임대 안내가 붙은 건물을 지나고, 누군가의 거처인 집을 지나고, 운영 여부를 알 수 없는 캠핑장과 몇 대의 차가 서 있는 커다란 베이커리카페를 지나고, 입구를 막아 놓은 화가 권기철의 작업실을 지난다. 아직은 가창로다. 도로에서 빠져나간 좁은 길에 삐죽 고개 내민 모텔과 식당 간판들을 지나 거의 직각으로 길이 꺾이면 그때부터 팔조령길이 시작된다. 그리고 새 주인을 기다리는 찜닭 가게를 지나면 이제 집들은 거의 찾을 수 없고 오르막은 확연해진다.

팔조령(八助嶺)은 조선시대 한양과 동래를 잇는 영남대로상의 고개다. 물자와 사람이 지나는 도로의 역할뿐 아니라 군사적 요지 역할도 한 것으로 보인다. 석주사 위쪽 봉화산에는 봉화대 터와 삼국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성터가 남아 있고 18세기에는 팔조령에 군사를 배치했다는 기록도 있다. 팔조령의 정확한 지명유래는 알 수 없지만 '여덟 사람이 서로 도와서 함께 넘는 고개'라는 뜻이다. 길손들은 이 고개 밑에서 큰 숨을 쉬었고 짐은 소나 당나귀의 힘을 빌어야 했다고 전한다. 굼실굼실 점점 높이 점점 깊어지던 길이 스윽 하강하면서 '경북도 청도군 이서면' 도로 표지판과 함께 무대의 커튼이 열리듯 청도 땅이 펼쳐지면 방금 팔조령을 넘은 것이다. 고갯길이 360도 휘돌아 내려가는 곳에 팔조령 휴게소가 자리한다. 커다란 느티나무 그늘 속에 몇몇 자전거 라이더들이 벌겋게 단 얼굴을 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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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주사에는 5층 석탑을 중심으로 대웅전과 천불전, 종무소 등이 자리한다. 1982년에 대웅전이 건립되면서 사찰의 면모를 갖추었다고 한다.


◆팔조령 휴게소에서

아래로 청도 이서면의 들판과 마을들이 보인다. 유리조각 같은 저수지는 팔조지, 그 아래는 팔조리 마을, 더 아래는 원(院)이 있었다는 양원리(陽院里)다. 멀리 보이는 큰 산은 청도 남산이고 그 아래는 청도 읍성이 있는 화양읍이다. 팔조령을 내려가서 화양읍과 청도읍을 거쳐 유천으로 간 뒤 밀양으로 넘어가는 길이 조선시대 영남대로다. 당시에는 양원리에서 팔조지 서편을 지나 봉수대로 이어졌다가 석주사 천불전 뒤쪽으로 내려가는 직선 길이었다고 한다. 그 길을 따라 임진왜란 때 일본군들이 대구로 진격했고, 그 길을 따라 19세기 말 미국 선교사 일행이 고개 넘어 대구로 갔다. 휴게소 근처에 1993년에 세운 '청도 기독교 100주년 기념비'가 있다.

[주말&여행] 대구와 청도를 넘나드는 팔조령 옛길…주말무대 커튼이 열리듯 청도 땅이 펼쳐지면 방금 팔조령 넘은 것…
이제 꽃피기 시작한 배롱나무 속에 미륵불이 서 계신다. 오른쪽에는 용왕신이, 왼쪽에는 포대화상이 자리하고 뒤쪽에 연못이 펼쳐져 있다.

자전거 라이더들은 왔다가 떠나고 또 도착했다가 또 달려간다. 휴게소는 문을 닫았다. 도로 가드레일에 이곳을 거쳐 간 그룹들의 스티커들이 붙어 있다. 이곳에 왔던 이들이 남긴 이름과 하트와 기원도 있다. 지난해 11월18일 날 첫눈이 왔었구나. 그날 첫눈을 함께했다는 이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본다. 1994년 즈음 팔조령을 넘은 적 있다. 터널이 생기기 전이었고, 저 휴게소는 더 작았던 듯하고, 주변에는 바위들과 풀과 나무들이 제 뜻대로 성했다고 기억된다. 느티나무 아래 화강석 조각들이 방석처럼 놓여 있다. 틈을 비집고 어린 풀이 자라고 빛 고인 가장자리에는 나비가 앉아 연신 날개를 하늘거린다. 구불구불 지나온 길이 꿈같네. 다시 구불구불 내려가는 길가에는 감나무가 늘어서 있다. 탄탄하고 윤나는 이파리 속에 동그란 감들이 주렁주렁하다. 팔조령길은 환한 빛을 헤치며 내려가 저 아래 터널을 지나온 이서로와 만나면서 끝난다.

글·사진=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여행 Tip

대구 파동에서 30번 국도를 타고 청도방향으로 가면 된다. 지난 5월에 달성군에서 세운 관문을 통과해 조금 가면 팔조령 터널이 보이고 터널 앞 삼거리에서 좌회전해 들어가면 팔조령 옛길이다. 팔조령길은 총 4천859m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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