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윤 칼럼] "국회의원·언론인 사찰, 게슈타포나 할 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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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8-09  |  수정 2024-08-09 08:51  |  발행일 2024-08-09 제27면

[이재윤 칼럼] 국회의원·언론인 사찰, 게슈타포나 할 짓
이재윤 (논설위원)

"국회의원과 언론인을 이렇게 사찰하면, 국회의원 보좌관만 사찰해도 난리가 나는 겁니다, 원래. 심지어 우리 당 의원 단톡방까지 털었어요. 그러면 결국 다 열어본 것 아닙니까. 미친 사람들입니다. 이거 놔둬야 하겠습니까. 완전 구속 수사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누구의 말일까.

2021년 대선 당시 문재인 정부 검찰이 자행한 '통신자료 조회'에 대한 윤석열 후보의 분노에 찬 연설의 한 토막이다. 윤 후보는 특유의 고음역대(高音域帶) 목청을 돋워 "불법사찰" "게슈타포나 할 짓"이라 질타했다. "과거 정보기관의 통신자료조회를 맹렬하게 비난하던 사람들이 지금은 왜 침묵하느냐"는 윤 후보의 호통은 거칠었지만 '지당한 말씀'이었다.

2년여 만에 반전이 일어났다. 정확히 말하면, 상황은 그대로인데 공수(攻守)가 바뀌었다. '상황 불변, 공수 교체'는 우리 정치가 반복하는 대표적 인지부조화 현상이다. 이번엔 윤석열 정부의 검찰이 사고를 쳤다. 지난 1월 언론인과 야당 정치인 3천명가량의 통신 가입자 정보를 조회한 사실이 드러났다. 아직 정확한 인원조차 밝히지 않고, 조회 사실을 7개월이나 늑장 통보해 불신을 자초하고 있다. 모든 국민은 통신의 비밀을 침해받지 아니해야 한다.(헌법 18조) 불가피하다면 꼭 필요한, 최소한의 범위에 그쳐야 한다. 국가인권위가 영장 없는 통신자료 제공은 인권침해 소지가 있다며 제도 개선을 권고했지만, 검찰에겐 소귀에 경 읽기였던 셈이다. 2년 전 통신 조회에 '미친 짓'이라 했던 윤 대통령은 지금 검찰에게는 침묵 중이다. 피장파장이다. 우리의 정당은 서로 달라서 허구한 날 싸움박질하는 게 아니다. 어쩌면 둘은 저질(低質)과 고질(痼疾), 고비용과 저효율의 완벽한 '데칼코마니' 집단이다. 짐짓 다른 듯 변복(變服)해도 한 몸처럼 은밀히 이익을 나누는 공생의 '샴쌍둥이'다.

윤석열 후보의 2년 전 말을 다시 빌리겠다. "국회의원·언론인 사찰은 게슈타포나 할 짓이다."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의 나흘 전 말이기도 하다. 두 사람이 2년의 시차를 두고 똑같은 말을 뱉었다.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라는 격이다. 상대를 겨냥할 게 아니라 자신을 향한 질책이어야 했다.

2년 전이나 지금이나 검찰의 역할은 같다. 비굴한 비극이다. 검찰은 '퍼스트 펭귄'도 '알파 메일(Alpha male·보안관 행동을 하는 우두머리 수컷)'도 아니다. 알파 메일이 '보안관 행동'(약자를 보호하는 행동) 없이 권력을 이용해 자기와 제 편의 이익만 챙기다가는 오래지 않아 그 자리에서 쫓겨난다는 '침팬지 폴리틱스'(프란스 드 발 著)의 결론은 우리 검찰에 딱 맞는 경고다. 주구(走狗)? 21세기 게슈타포? 우리 사회 최고의 지성인 집단이 자청한 부끄러운 소임이다. 야당은 이번 사안을 '검찰의 불법 디지털 캐비닛 구축 시도'라 규정한다. 최소 10만명 이상의 개인정보가 검찰에 들어간 거로 본다. 그 개인정보가 삭제되지 않고 '디넷(대검찰청 서버·D-Net)'에 보관됐다면 권력욕을 절제 못한 검찰이 두고두고 우려먹을 소지가 없지 않다.

'불법사찰은 국민과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암적 요소다.' '언론의 자유를 지키는 것은 곧 국민의 자유를 지키는 길이자 대한민국의 자유를 수호하는 길이다.' 2년 전 윤석열 후보의 주옥같은 말이다. 그땐 맞고 지금은 틀렸다면 그건 신념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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