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 추 거문고 이야기] 이규보와 거문고](https://www.yeongnam.com/mnt/file/202408/2024082501000744400030142.jpg)
거문고를 너무나 사랑했던 이규보는 이 사륜정 구상에도 거문고를 위한 세심한 배려를 담았다. 이규보는 1201년 5월에 사륜정기(四輪亭記)를 남겼다. 이전에 두 차례(1199년과 1201년 4월) 사륜정을 만들려고 계획했으나, 인사 발령과 모친의 병으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자 평소 생각했던 그 구상을 잃게 될까봐 기록으로 남긴다는 서두 글에 이어, 사륜정을 세우려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詩·거문고·술을 지독히 좋아한 문인 이규보
평생 벗들과 山水의 아름다움 누리는 삶 동경
소나무 그늘서 거문고 연주 즐기며 詩 읊어
고정된 건축물 '정자'는 풍류 즐기기에 한계
그늘 찾아가는 수고 덜고자 '사륜정' 고안
내부 구성원 배치 등 공간활용 치밀히 계획
![[동 추 거문고 이야기] 이규보와 거문고](https://www.yeongnam.com/mnt/file/202408/2024082501000744400030141.jpg)
'여름날에 손님과 함께 동산에 자리를 깔고 누워서 자거나 앉아서 술잔을 들기도 하고, 바둑도 두고 거문고도 타며 기분대로 하다가 날이 저물면 파한다. 이것이 한가한 자의 즐거움이다. 그러나 햇볕을 피해 그늘로 옮기면서 여러 번 그 자리를 바꾸는 까닭에 거문고, 책, 베개, 대자리, 술병, 바둑판이 사람을 따라 이리저리 옮겨지므로 자칫 잘못하면 떨어뜨리는 수가 있다. 그래서 계획대로 설치하여 사륜정을 세우려는 것이다. 아이 종으로 하여금 사륜정을 끌게 하여 그늘진 곳으로 옮기게 하면 사람과 바둑판, 술병, 베개, 대자리가 모두 한 정자를 따라서 이동하게 되리니, 어찌 이리저리 옮겨지는 것을 꺼리겠는가?"
사륜정의 규모와 모습은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바퀴를 네 개로 하고 그 위에 정자를 짓되, 정자는 사방은 6척이고, 2개 들보에 4개의 기둥이며, 대나무로 서까래를 만들고 대자리를 그 위에 덮는데, 그것은 가벼움을 취한 것이다. 동서에 각각 하나의 난간을 두고, 남북 또한 그와 같다. 정자는 사방 6척이니 그 사이를 모두 합하면 모두 36척이다.' 바둑판 같은 이 정자의 공간 활용 구상도 세세하게 밝히고 있는데, 이 사륜정 구상에서 거문고를 위한 세세한 배려가 관심을 끈다.
'이곳에 6명이 자리하니, 2명은 동쪽에 앉되 4개의 네모 칸을 차지해 앉는다. 각각 네모는 세로 2척에 가로 2척으로, 2명의 자리를 총합 계산하면 모두 8척이다. 나머지 4개의 네모 칸을 2개로 만들면, 각각 세로가 2척이다. 2척의 공간에 거문고 하나를 둔다. 짧은 것이 걱정된다면 남쪽 난간에 걸쳐 반쯤 세워두고, 거문고를 탈 땐 무릎에 얹어두는 게 반쯤 된다. 2척엔 술동이와 술잔과 그릇을 두는데, 동쪽은 모두 12척이다. 두 사람이 서쪽에 앉는데도 이와 같이 하고, 나머지 4개의 네모 칸은 비워두어 잠깐 왕래하는 사람은 반드시 이 길로 다니게 한다. 서쪽도 모두 12척이다. 한 사람은 서북 네모 칸에 앉고 주인은 남쪽에 앉는다. 중간 4개의 네모 칸에는 바둑판 하나를 두니, 남북의 중간이 모두 12척이다. 서쪽의 한 사람이 조금 나와 동쪽의 한사람과 바둑을 두면, 주인이 술잔을 잡고 한 잔을 따르고서 돌려가며 서로 마신다. 안주와 과일 상은 각각 앉은 자리의 틈에 마땅한 곳을 따라 둔다. 말했던 여섯 사람이란 누구인가? 거문고 타는 이가 1명, 노래 부르는 사람 1명, 시를 지을 수 있는 스님이 1명, 바둑 두는 이가 2명, 주인까지 아울러 6명인 것이다. 사람의 수를 한정해 앉게 한 것은 동지(同志)를 표시한 것이다. 사륜정을 끌 때 아이 종이 지친 기색이 있으면 주인이 스스로 내려가 어깨를 걷어붙이고 끌며, 주인이 지치면 손님이 교대로 내려가 그걸 돕는다. 술이 취하면 가고 싶은 곳으로 그것을 끌고 가지, 꼭 그늘로 가야 하는 건 아니다. 이렇게 같이 저물 때까지 놀다가 날이 저물면 그만둔다. 다음날 또한 이와 같다.'
◆이규보의 '금명(琴銘)'
이규보는 거문고와 관령해 읊은 시나 글도 많이 남겼는데, 그 중 거문고에 부치는 글인 '금명(琴銘)'이다. '나의 거문고는 곡조가 없으니(我琴無調)/ 무엇이 상(商)이고 무엇이 궁(宮)인지(孰商孰宮)/ 거문고는 무슨 물건이며(琴何是物)/ 소리는 어디서 나오는 것이냐(聲從何沖) / 물방울같이 맑은 그 소리는(其冷冷溜溜者)/ 돌 사이 여울에서 전해진 것인가(傳聲於石瀨乎)/ 바람같이 서늘한 그 소리는(其瑟瑟者)/ 소나무 바람에서 빌려 온 것인가(借韻於松風乎)/ 만약 맑은 소리를 여울로 부쳐 보내고(若以冷冷者乎瀨)/ 서늘한 소리를 소나무에게 돌려보낸다면(瑟瑟者還于松)/ 다시 고요하고 쓸쓸하여(則其復寥乎寂乎)/ 저 텅 빈 데로 돌아갈 것이다(反於大空者乎)'.
거문고와 음악, 자연에 대한 그의 사유와 가치관을 읽을 수 있다. 아래 시 '적의(適意)'도 삶에 대한 그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시다. '홀로 앉아서 거문고를 타고(獨坐自彈琴)/ 혼자 시를 읊으며 자주 술잔을 드네(獨吟頻擧酒)/ 거문고 소리 이미 내 귀를 저버리지 않았고(旣不負吾耳)/ 술 또한 내 입 거스르지 않노라(又不負吾口)/ 어찌 나를 알아주는 벗을 기다리며(何須待知音)/ 또한 함께 술 마실 친구가 필요하겠는가(亦莫須飮友)/ 내 뜻에 맞으면 즐거운 일(適意則爲歡)/ 이 말을 나는 반드시 취하리라(此言吾必取)'.
이규보는 8천여 수의 시를 창작했다고 한다. 산문도 많이 지었다. '한 시대의 고아한 문장과 대책(大冊)이 모두 이규보의 손에서 나왔다'는 평을 들은 그는 평생 오직 거문고와 술, 시를 좋아했다. 그는 늘 술을 마시면서 거문고를 타고, 취하면 시를 짓고 전(傳)이나 찬(贊)을 지었다. '삼혹호선생'이라는 호를 지었던 그는 '거문고도 잘 타지 못하고, 시를 잘 짓지도 못하며, 술을 많이 마시지도 못한다'라고 하면서 '백운거사'라고 호를 바꾸기도 했다.
김봉규 <문화전문 칼럼니스트> bg429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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