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신당 천하람 의원 |
우리나라는 10월의 시작을 국군의 날로 알린다. 1950년 6.25전쟁 속 국군이 남침한 북한 공산군을 반격, 38선을 돌파한 날을 기념해 만들어진 국군의 날. 자랑스러운 우리 장병의 사기를 고취하고 국민의 안보의식을 높이기 위한 행사가 진행된다. 그러나 장병들에겐 이날이 다른 의미로 다가오기도 한다. 완벽한 행사를 위해 몇 달에 이은 훈련도 고된 군기 잡기도 감내해야 하는 게 병사의 일상이 된다.
국민개병제를 채택한 우리나라에서 군 장병의 복리와 안전은 국민 전체의 존엄과 직결된다. 생애주기에서 가장 역동적일 20대 시절을 병영에서 보내야 하는 남성뿐 아니라, 이들을 군에 보낸 가족, 그리고 성별을 초월해 군에 재직하는 모든 관련자분의 행복과 안녕은 우리 사회 '일부'의 문제가 아닌 '전반'의 관심사가 되어야 한다. 최저임금이 9천860원인 2024년 대한민국을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고작 평일 2만원, 주말 4만원의 당직수당을 받는 하사의 삶은 과연 몇 년의 대한민국일까. 녹물이 나오고 곰팡이투성이인, 지어진 지 30년이 넘었지만, 환경 개선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숙소에서 살아야 하는 군 간부 가족의 삶은 과연 몇 년 도의 모습일까. 국방부는 올해 간부 처우개선을 위해 5천42억 원의 예산을 요청했지만 기재부는 2천274억 원을 삭감했다. 단기복무장려수당 62억 원마저 깎아버린 냉정한 정부는 작년 국군의날 시가행진을 위해선 실집행액만 99억 원을 사용했다. 당시 동원된 6천700여 명의 병력이 행사를 위해 3개월 간 훈련을 받은 인건비의 기회비용을 고려한다면, 사실상 수백억원 이상의 비용이 더 들어간 것이다. 국군의 날 시가행진도 군의 사기진작을 위해 5년에 한 번 정도는 필요하다. 그러나 정작 동원된 장병의 처우와 생활 개선은 뒷전이고, 시가행진 같은 일회성 행사 관례를 깨가며 매년 시행해 보여주기식 행사 예산만 '통 크게' 집행하는 정부의 차등적 태도에는 반대한다.
민주화 이후 국군의날 시가행진은 지금까지 5년에 한 번 개최되어왔다. 하지만 작년에도 시가행진을 진행한 국방부는 올해 아예 훈령을 개정해 매년 국군의 날 행진을 가능하도록 했다. 대통령과 군 장성들 앞에서 펼쳐지는 이 시가행진을 위해서는 매년 부상병도 발생한다. 작년 군 수뇌부는 국군의날 행사를 위한 집단 강하 연습 당시 일렬로 '멋지게' 떨어지기 위해 장병들에게 공중 높은 곳에서 "낙하산 줄을 놓아라"는 납득할 수 없는 지시를 하기도 했다. 이를 통해 확인된 부상자만 9명, 그 중 영구적 장애를 입어 군인의 삶을 포기하고 강제로 퇴역하게 된 청년들도 있다. 부상자들에 대한 충분한 후속조치와 보상도 이뤄지지 않았다고 한다. 2024년의 대한민국은 군 초급간부에게 하루 3만원의 당직수당 인상도 할 수 없다고 한다. 낡디 낡은 간부숙소에도 들어가지 못한 군 간부는 겨우 월 16만원으로 방을 구해야 한다. 그런 대한민국이 국군의 날 시가행진을 매년 수백억 원을 들여 개최해야 한다고 고집할 명분이 있을까. 과연 누구를 위한 국군의 날인가. 강한 대한민국은 굳건한 안보에서 나온다. 굳건한 안보는 건강한 장병으로부터 시작된다. 국방은 정치가의 기본적 의무 중 하나라고 했다. 우리 정치가 무엇이 제대로 된 안보인지 답 해야한다. '보여주기식 일회성 행사'와 '군 장병의 기본적 복리' 중 무엇이 국가안보에 더 필요한지 우선순위를 명확히 해 국가재정을 투입해야 한다. 정부가 우리 장병들을 소모품 취급하지 않고 무엇이 중한지를 제대로 판단한다면, 국군의날 시가행진을 매년 하지 않더라도 우리 군의 사기는 높아질 것이다.
임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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