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5차 산업단지 가운데에 위치한 세천늪 테마정원. 자연습지인 세천늪을 그대로 살려 조성해 친환경 산업단지가 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
성서5차산단 한가운데 7개 테마정원
어린왕자·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등
동화속 등장 캐릭터 멋지게 구현
테마공원 맞은편 세천늪근린공원
각종 운동시설·쉼터·정원 자리잡아
어른 주먹보다도 큰 빨간 꽃송이들 너머로 조금 떨어져 앉은 어린왕자와 여우의 뒷모습이 보인다. 어린왕자의 장미정원이다. |
바람이 불어 마음을 사로잡는 핑크뮬리 속으로 들어서며 늪의 경사지에 앉은 작은 호빗의 집을 본다. 제빵사의 집과 정원사 샘의 집이다. 영화 속 구릉진 마을에 자리한 호빗의 집과 똑 닮았다. 그들 너머로 봄빛 연두에 한 방울 가을빛이 스며든 어린 댑싸리들이 올망졸망하다. 이곳은 '호빗 정원'이다. 작은 것들과 어린 것들이 함께 있으니 더욱 동화 같다. 젖은 흙길을 따라 메타세쿼이아 오솔길에 든다. 얕은 웅덩이를 피해 풀밭을 밟으며, 때로는 뽀글뽀글 구멍 뚫린 현무암 판석을 디디며 걷는다. 황금사철나무가 눈에 번쩍 뜨이는 정원에는 커다란 황금 알과 득의양양한 표정의 거위, 방망이를 든 어린 도깨비가 있다. '황금거위의 정원'과 '도깨비의 황금정원'이다. 등나무 터널과 초화류가 무성히 아름다운 곳은 '도로시의 에메랄드 정원'이다. 도로시와 허수아비와 양철 나무꾼은 쉬이 만나는데 겁 많은 사자는 나무 뒤에 숨어 얼굴만 내밀고 있다. '오즈는, 오즈는 어떤 나라일까/ 하얀 눈 나라일까/ 파란 호수의 나라일까' 오래전 텔레비전 만화주제가를 여태 기억하다니.
장미가 피어 있다. 어른 주먹보다도 큰 빨간 꽃송이들 너머로 조금 떨어져 앉은 어린왕자와 여우의 뒷모습을 본다. 여우는 이 말을 하고 있을 것이다. '네가 오후 네 시에 온다면, 나는 세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할거야.' 장미꽃들이 푸른 가을 하늘아래서 연신 고개를 끄덕인다. 이곳은 '어린왕자의 장미정원'이다. 어린왕자의 소행성인 B612도 있다. 맞은편 경사지의 댑싸리 밭은 우주 같고 톡톡 놓인 하얀 공들은 별 같다. 부메랑의 날개 끝자리에는 '이상한 나라의 무궁화 미로정원'이 자리한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등장하는 각종 캐릭터들이 멋지게 구현되어 있다.
이곳은 산림청에서 2010년부터 지원해 오고 있는 무궁화동산 조성사업에 선정돼 만들어진 곳이다. 아직은 무궁화나무들이 작아서 미로처럼 보이지 않지만 자주색 꽃, 흰색이나 연한 분홍색 꽃잎에 가장자리가 붉은 것, 청색이나 보라색 꽃잎을 가진 것, 붉은 꽃, 대형의 순백색인 것 등 다양한 무궁화가 식재되어 있다. 마지막은 '일곱 난장이의 사과정원'이다. 주변 나무들은 진짜 사과나무다. 진짜 사과나무에 빵 끈으로 묶인 사과를 보고는 한참 웃는다. 이렇게 세천늪을 빙 둘러 7개의 테마정원이 조성되어 있다. 이곳은 지역 주민과 시민 정원사들이 함께 힘을 모아 만들었다고 한다.
세천늪 근린공원. 바람물결정원 너머 커피테라스 정원의 기하학적 조형미가 도드라진다. |
세천리는 금호강이 낙동강과 합류하기 직전의 강변마을이다. 북, 서, 남 삼면을 금호강이 270도 굽이돌아 흐르고 있고 남동쪽은 궁산(弓山)에서 뻗어 내린 산줄기가 가로놓여 있다. 활처럼 생겼다는 궁산의 주 봉우리가 세(世)자 모양이고, 마을 앞에 강이 흐른다고 세천(世川)이라 했다 한다. 이곳은 금호강 하류의 퇴적물이 쌓여 만들어진 땅으로 작은 마을 앞으로 광활한 농지가 펼쳐져 있던 곳이었다. 특히 과수농업이 활발해 지역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비닐하우스 촌을 이루고 있었다. 그러다 2008년부터 이 평야지대에 성서5차 산단(첨단산업단지)이 지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2015년을 기점으로 고층 아파트가 하나둘씩 들어서 현재는 전형적인 신도심으로 변모했다.
세천늪은 금호강 배후의 자연 습지다. 그러다 지난해 '산림청 생활권역 실외 정원 조성사업' 대상지로 선정되어 지금과 같은 '테마정원'이 되었다. '세천늪 테마정원' 입구 풀밭에는 '공공공지'라고 간략하게 새겨진 커다랗고 납작한 오석이 누워 있다. 이런 새김돌은 처음이라 사실 순간적으로 이 연못의 원래 이름이 '공공공'인가 했다. '공공공' 예쁘기도 하지. 작은 고무공처럼 귀여운 이 단어는 도시계획이나 토지이용, 토목 등에서 쓰이는 용어다. 토목용어사전의 정의가 가장 쉽고 직관적인데 '일반적으로 개방되어 있는 공원, 녹지, 운동장, 광장 등 공유의 공지'를 뜻한다.
이 이름을 얻으려면 꽤나 다양한 요건들을 갖추어야 한다. 즉, 환경보호, 경관유지, 재해대책, 통행과 휴식 공간 확보 등을 위한 시설을 꼭 설치해야 한다. 이를테면 누구나 앉을 수 있는 벤치나 비온 뒤 축축한 흙길, 언제나 축축해서 디딤돌처럼 깔아놓은 판석의 길, 팔다리를 휘저으며 정체된 대기에 생기를 주도록 독려하는 이런저런 체육시설, 그리고 이 정원 속 어린왕자와 여우, 백설공주와 일곱 난장이, 각종 꽃나무와 덩굴 등이 모두 공공공지(公共空地)가 갖추어야 할 요건의 상세들이다. 특히 주변지역의 개발로 인한 오염물질을 모아 두거나 땅속으로 스며들게 하는 저류지, 침투지, 침투도랑, 식생대 등의 시설을 설치해야 한다. 이 일을 세천늪이 한다. 더 나아가 연, 왕버들, 개구리밥, 갈대, 부들 등 습지에 사는 갖가지 식물의 줄기와 잎이 물의 흐름을 굴절시키고 물이 속도를 줄여 부유물을 가라앉도록 하는데 이들 식물의 줄기와 뿌리는 오염물질을 영양분으로 흡수하여 제거하는 필터 역할까지 한다.
일곱 난장이의 사과정원. 주변 나무들은 진짜 사과나무다. 진짜 사과나무에 빵 끈으로 묶인 사과를 보고는 한참 웃는다. |
'세천늪테마공원' 맞은편에는 '세천늪근린공원'이 자리한다. 갈대 무성한 작은 규모의 세천늪을 중심으로 커피테라스 정원, 바람물결정원, 맛있는 정원, 사계절 풍경정원, 농구장, 장미터널, 생생마당, 활력마당 등이 조성돼 있고 각종 운동시설과 쉼터, 관리실과 화장실이 들어서 있다. 여기서부터 세천로7길에서 세천로8길로 이어지는 길고 넓은 직선 도로 변이 커다란 도시 숲이다. 성서5차산단의 녹지시설용지는 전체 면적의 20.1%인 31만㎡에 달한다고 한다. 자연습지인 세천늪을 그대로 살려 조성해 친환경 산업단지가 됐다는 평가다.
휑한 산단에 자리한 늪과, 핑크뮬리와, 어린왕자와, 메타세쿼이아 오솔길을 보러 왔다가 '공공공지'라는 단어에 온갖 생각을 한다. 커피테라스 정원에 앉아 황금거위의 정원에서 스쳤던 아저씨가 장미터널 옆 크로스트레이너 기구에 올라 대기를 휘젓는 모습을 본다. 크고 조용한 정원에 아무 일 없이 앉아 있기, 최고의 가을 소풍이다.
글·사진=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 여행 Tip
대구에서 성서, 성주 방향 30번 국도를 타고 간다. 지하철 계명대역이 있는 신당네거리에서 우회전해 직진, 서재본길과 세천로가 갈라지는 삼거리에서 좌회전해 성서5차 산업단지 방향으로 약 1.2㎞ 직진한다. 세천로7길과 세천로8길이 갈라지는 사거리에서 의료 정밀, 북다사IC 방향으로 우회전해 세천로7길을 따라가면 오른편으로 녹지가 이어지는데, 600m 정도 가면 왼편에 세천늪 테마공원, 오른쪽에 세천늪 근린공원이 자리한다. 주차는 길가 노상주차장을 이용하면 되고, 두 공원 모두 진입 통로가 여러 곳이라 주차 장소에서 가까운 통로를 이용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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