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삼십대 중반 여성 예술인의 회고

  • 이선민 트래덜반 대표·안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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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10-30  |  수정 2024-10-30 07:59  |  발행일 2024-10-30 제19면

[문화산책] 삼십대 중반 여성 예술인의 회고
이선민<트래덜반 대표·안무가>

눈가의 주름살도, 뽑아도 자라나는 흰머리도, 뻐근한 허리도, 시큰한 무릎도 달갑지 않지만 그렇다고 싫지도 않다. 필자는 사회에서 말하는 '어른'의 기준에서 벗어났다. 현실적이지 못하고 노련하지 못하다. 하고 싶은 일이라면 무식하게 뛰어들고 본다. 가슴을 뛰게 하는 일은 필자를 움직이게 하는 동력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저 좋아하는 춤은 '업'이 되어있었다.

춤이 좋았다. 집중을 넘어서 몰입하는 그 순간이 좋았다. 춤이 싫지만 좋았다. 자신을 스스로 다그치고 몰아세우며 피폐해져도 반복하는 것을 보니 말이다. 춤이라면 어디든 갔다. 배움에 목마를 때는 무궁화호 입석 열차에 몸을 구겨 넣거나 폭설로 느림보 걸음을 하는 버스를 마다하며 갈증을 해소했다.

춤이 연결해 주었다. 낯선 만남을 어려워하는 사람이 관심 있는 예술가에게 먼저 손 내미는 용기가 생기기 때문이다. 춤은 배고픔을 이겼다. 부유해서가 아니다. 내 앞에 주어진 춤이 중요했다. 춤이 좋은 이유를 대라고 하면 아흔아홉 가지를 댈 수 있다. 왜 백 가지가 아닌 아흔아홉 가지냐고. 마지막 한 가지는 꼭꼭 숨겨두고 있었다.

문화산책을 빌려 처음으로 운을 떼어본다. 여태 내뱉어본 적 없는 백 번째 춤이 좋은 이유를.

춤 그리고 무대는 깊은 내면의 승화 창구가 되어주었다. 일상에서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지 못하는 필자는 춤을 빌미로 한없이 솔직해질 수 있었다. 정확히 무엇인지도 모르는 응어리진 마음을 그렇게 해소했고 해방감을 느꼈다.

돌이켜보면 그랬다. '아, 여기까지만'하고 침묵하는 게 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겠다. 그런 침묵이 뜻과는 다른 이유로 오해를 낳기도 했다.

무던한 척했고 씩씩한 척했고 용감한 척했다. 불편하고 좋지 않은 것은 감추고 덜 들키고 있을 뿐 아직도 속에는 아이가 들어있었다.

진행 중인 작업보다 뒷순위로 밀려난 것들은 오랜 시간 땅 아래에 켜켜이 쌓여 있다가 뜨거운 용암처럼 분출되고 흘러내려 필자를 굳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스스로 옴짝달싹 못 하게 하는 춤이 좋다. 백 번째 춤이 좋은 이유를 실행할 수만 있다면.

두 달의 칼럼을 마무리하며 오롯한 감정을 드러내 본다. 잘 가고 있는 것인지 두려움 가득 담긴 물음에 네가 행복한 일을 하고 있다면 이라는 답을 내놓는 당신을,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나의 무모함을 응원해 주는 당신을, 춤추는 이선민의 뮤즈이자 멋진 여성 김윤희님께 존경과 사랑을 표한다.

어른이 되기는 틀렸다. 어디로 흘러갈지 모르지만, 꾸준히 무모하고 가슴 뛰는 삶을 살련다. 있는 힘껏 달리고, 있는 힘껏 고꾸라지고, 있는 힘껏 일어서기를 반복하면서. 이선민<트래덜반 대표·안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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