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갇힘에 대한 단상

  • 김학조 <시인·대구문인협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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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11-26  |  수정 2024-11-26 07:07  |  발행일 2024-11-26 제17면

[문화산책] 갇힘에 대한 단상
김학조 <시인·대구문인협회 사무국장>

혼자 계시는 어머니께서 아침에 일어나시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TV를 켜는 것이다. 부엌에서 밥을 지으실 때도 TV는 스스로 잘 논다. 마당에 나가 텃밭을 가꿀 때도 저 혼자 화면을 바꿔가며 분주하다. 가끔 통화를 할 때도 어떤 프로그램이 방송 중인지 금방 알 수 있다. TV에 갇히시는 건지, TV를 가두는 것인지는 모호하다.

내가 어렸을 때는 맨 처음으로 하시는 일이 대문을 활짝 여는 일이셨다. 어릴 때의 시골 모습은 다 그랬다. 옆집에 누가 오가는지, 마을의 누구네가 제사를 지내는지도 알았다. 누가 무슨 잘못을 해서 혼이 나고 누구 집에서 아이가 우는지도 다 알았다.

나도 아무 생각 없이 TV를 켜놓는 때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어느 날, '우~ 우~ 우우~' 버둥대는 동물의 울음소리에 깜빡 졸음에서 깨어났다. 종일 켜둔 TV 속에서 올가미에 걸린 노루 한 마리가 몸부림을 치고 있다. 털은 빠져서 사방으로 흩날린다. 모자이크로 감춘 핏빛은 얼룩덜룩하다. 허옇게 보이는 건 아마도 살점이 떨어져 나간 다리뼈 같았다. 안타까운 마음에 도와주려는 사람이 다가가도 두려움에 더 크게 몸부림을 친다. 그럴수록 올가미는 더 옥죄어들 뿐이다. 화면은 서서히 어두워지며 감기는 노루의 눈동자만 클로즈업 된다. 노루는 죽음을 맞이함으로써 비로소 올가미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따라 용을 써댄 내 손도 땀으로 흥건하다.

올가미라는 것은 움찔거릴수록 점점 더 조여드는 것이다. 아무리 힘을 내도 스스로는 벗어나기가 힘들다. 하지만 누군가 툭 건드려만 줘도 쉽게 벗을 수가 있다.

매체를 통해 사람을 정신적으로 가두는 경우를 종종 접할 수 있다. 이걸 흔히 가스라이팅이라고 말한다. 정신적, 감정적으로 약해진 상대방을 지배하는 행위이다. 상대방의 불안심리를 이용하고 조종한다. 대화나 가상공간, 사회생활 등 인간의 전반적 생활에서 일어나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스스로를 가두기도 한다.

안타깝게도 힘을 내라는 응원은 무색하다. 벗어나려는 노력을 하라고 설득하고 조언을 해도 소용이 없다. 가두는 힘이 벗어나려는 노력보다 매우 더 강하기 때문이다. 자물쇠의 열쇠는 나보다는 남이 가지고 있는 경우가 더 많다. 올가미에 걸린 노루를 보고 인간관계의 해법을 생각해 본다.

일어나면 제일 먼저 대문을 연 엄마의 소통법을 배우고 싶은 날이다.
김학조 <시인·대구문인협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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