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내가 결혼했다'(2008)를 재미있게 봤다. 일처다부제라는 주제보다 더 깊이 인상에 남았던 것은 주인공 인아가 열광하는 축구팀 'FC 바르셀로나'가 '레알 마드리드'와 어떻게 앙숙이 됐는지 설명하는 스페인의 역사였다. 마드리드는 카스티야 왕국, 바르셀로나는 카탈루냐 지역의 아라곤 왕국에 속했다. 두 왕국이 통합된 시기는 1469년. 카스티야의 공주 이사벨과 아라곤의 왕자 페르난도 2세가 결혼하면서부터 시작된다. 언어도 다르고 문화도 달랐던 두 왕국은 상호 자치권을 인정하면서 통합을 했고, 스페인 제국의 기틀이 됐다. 하지만 18세기 초 절대 왕정을 추구하던 합스부르크 왕조가 집권하면서 카탈루냐 지역은 자치권을 박탈당했고, 그 이후 지금까지 독립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니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의 축구팀은 이러한 역사적 앙금을 대리하는 셈이었다. 딱히 축구광도 아니었지만 이러한 역사를 알고부터 양 팀의 경기는 늘 스포츠 이상의 흥미진진함이 있었다. 나의 스페인 여행도 이때부터 시작됐다.
마드리드에서 아빌라(Avila)로 가는 길목에도 스페인의 아픈 근대사를 증거하는 두 개의 의미 있는 건축물이 있다. 마드리드와 세고비아, 아빌라의 삼각형 중간쯤에 자리한 거대한 수도원 '엘 에스꼬리알'과 그 북쪽에 있는 '전몰자의 계곡'이다. 전자는 왕실의 영묘이고, 후자는 스페인 내전의 전몰자 합동 묘지이다. 전자는 역대 스페인 국왕과 가족들이 안장된 '높은' 묘지이고, 후자는 쿠데타 정권에 학살당한 후 암매장된 시신을 다시 파헤쳐 묘비명 하나 없이 모아놓은 '낮은' 묘지이다. "낙양성 십리하에 높고 낮은 저 무덤은 영웅호걸이 몇몇이며 절세가인이 그 누구냐 우리네 인생 한번 가면 저 모양이 될 터인데"라는 '성주풀이' 가사가 떠올랐다. 마드리드 북쪽의 '높고 낮은 저 무덤'은 낙양성 북쪽의 북망산 묘지처럼 역사를 압축한 공간이다.
아빌라는 스페인 카스티야이레온 지방 아빌라주의 주도로서, 마드리드에서 서쪽으로 87㎞ 떨어져 있는 중세 성벽도시이다. 11~14세기에 만들어진 중세 시대의 성벽이 구시가지를 감싸고 있다. 형태도 거의 그대로 남아 있어서 '스페인에서 가장 훌륭한 중세의 유적'으로 알려져 있으며, 198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6만명 가까운 인구를 가진 아빌라는 해발 1천131m의 고원지대에 자리해서 인구 5만이 넘는 유럽 도시 가운데 해발고도가 가장 높다.
이슬람교 세력 침입 맞선 전초기지
2천m 넘는 성벽으로 시가지 둘러싸
성당·수도원 세우고 큰 도시로 발전
'예수의 테레사' '십자가의 요한' 배출
당시 스페인 일대 수도원 개혁 중심
비센테성당·아빌라대성당 둘러봐야
폭 2m 돌담 성벽길 훌륭한 산책로
붉은 기와지붕 늘어선 도심도 장관
역사도 깊다. 로마시대 이전부터 도시가 형성됐다. 714년경 이슬람에 점령당한 뒤 1088년 알폰소 6세가 탈환하기까지 가톨릭과 이슬람 양대 세력의 최전선이었다. 이처럼 아빌라는 이슬람교도와 싸우던 전초기지로서, 스페인 '레콩키스타(국토회복운동)'의 상징과도 같은 곳이다. 1년의 절반 정도가 겨울 날씨인 데다 척박한 화강암 산등성이에 선 이 도시는 난공불락의 성벽까지 갖추어 감히 넘볼 수 없는 독특한 아우라를 갖고 있다.
거의 1천년간 이민족의 침입을 막고 안전하게 교역을 하면서 성벽 안팎에는 성당과 수도원, 궁전이 세워지고 가옥이 들어서 큰 도시로 발전했다. 성벽도시의 위용을 느껴보려면 성벽 밖의 '네 개의 기둥(Cuatro Postes)' 언덕에 올라가면 된다. 이곳은 아빌라 성벽과 구시가지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이자 이 도시에서 가장 오래된 가톨릭 성소이다. 이곳은 원래 로마시대 기독교도들의 처형 장소였다. 순교자를 기리기 위해 네 개의 화강암 돌기둥을 세우고 그 안에 화강암으로 만든 돌 십자가가 서 있다. 또 이곳은 테레사 수녀가 모로코로 전도 활동을 떠날 때 삼촌에게 붙잡혀 다시 돌아갔던 장소이기도 한다.
아빌라의 구시가지는 중세에 지어진 단단한 성벽에 둘러싸여 있다. 이 언덕에서 보이는 아빌라의 성벽과 그 안에 담긴 중세 건축물들은 마치 정교한 장난감 같아 보였다. 그러나 가까이 다가가면 아득한 높이로써 사람을 압도한다. 이 성벽은 알폰소 6세가 이슬람교도를 물리친 후 도시 방어를 위해 건립하기 시작했다. 이 성벽은 현존하는 가장 완벽한 로마식 성벽으로 존재한다. 둘레 2천516m, 높이 12m, 9개의 성문, 20m 간격으로 늘어선 88개의 망루가 장관을 선사한다. 성벽을 잇는 흉벽도 2천 개가 넘어서 한 바퀴 돌려면 한 시간은 족히 걸린다. 성벽 안쪽에는 성벽만큼이나 오래된 건축물들이 도심을 형성하고 있다.
유럽의 도시들을 다니노라면 심심찮게 성벽도시를 만나게 되는데 아빌라는 상대적으로 완전하고 압도적인 성벽도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대서양을 끼고 있는 프랑스의 성벽도시 생말로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 생말로는 성벽 아래 펼쳐진 해변과 요트로 낭만적인 풍경을 연출하는데, 이곳은 황량하고 휑했다 하지만 뭔지 모를 경건함이 감돌았다. 생말로가 해적을 방어하기 위한 해변 성벽이라면 이곳은 1천100m 높이의 산등성이에 무어인들을 방어하기 위해 만든 산악 성벽이다.
하지만 생말로와 마찬가지로 성벽 길은 구시가지를 굽어보며 걸을 수 있는 훌륭한 산책로다. 알카사르(Alcazar)와 푸엔테(Puente), 16세기에 지어져 와인 저장고와 정육점으로 사용된 건물인 카르니세리아의 집(Casa de las Carnicera)의 성문을 통해 성벽 산책로에 오를 수 있다. 성벽에 오르자 폭 2m 돌담길이 흉벽과 안전 펜스를 따라 이어진다. 성벽 안으로 시선을 돌리면 스페인 특유의 붉은 기와지붕이 빼곡히 늘어서 있고, 성벽 아래에선 시민들의 일상적인 삶이 펼쳐지는 도심과 도시의 핏줄 같은 골목길이 구불구불 늘어서 있다. 다시 시선을 성벽 산책로로 돌리면 일정한 간격으로 만나게 되는 반원형 망루와 어우러진 탁 트인 성 밖 전망이 가슴을 시원하게 한다. 북측 성벽의 중앙출입구 위에는 또 우아한 첨탑이 솟아 있는 카르멘(Carmen) 문이 있다. 17세기 성문 옆에 있던 수도원 건물이 낡아 첨탑을 세울 수 없게 되자 성벽 위에 수도원의 첨탑을 세웠다. 문 안쪽으로는 현재 호텔로 이용되는 16세기 건축물 피에드라 알바스(Piedras Albas) 궁전이 있다. 성벽과 붙어 있는 이곳 식당은 성벽 뷰를 즐기며 아빌라의 명물인 티본스테이크 출레톤(Txuleton)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아빌라 성벽 안에는 사실 변변한 궁전 하나 없다. 오히려 도시 규모나 인구에 비해 성당과 수도원이 지나치게 많다. 그래서 아빌라의 성벽은 사실 종교시설 방어가 주목적이라고 한다. 아빌라에는 각각 다르게 불리는 대표적인 세 성당이 있다. 'Basilica de San Vicente(산 비센테 성당)' 'Catedral de Avila(아빌라 대성당)' 'Parroquia de San Pedro Apostol(성 베드로 교회)'가 그것이다. '바실리카(Basilica)'는 역사적 종교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 성당으로 교황이 특별한 지위를 부여한 곳을 지칭한다. '카테드랄(Catedral)'은 의식과 예배가 행해지는 주교 관할 교구의 중심 성당으로, 이탈리아의 '두오모(Duomo)'와 유사한 것 같다. 이 외에 교구의 상대적으로 작은 교회를 '파로키아(Parroquia)'라고 부른다.
'산 비센테 성문' 앞에 있는 산 비센테 성당은 고대 그리스도교 순교자인 성 비센테를 모신 성당으로, 11세기 말에 건축됐다. 사도 조각상들로 장식한 후기 로마네스크 양식의 문은 로마네스크 건축 양식의 걸작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동쪽 성문인 알카사르를 지나면 스페인 최초의 고딕 양식 성당인 아빌라대성당이 나온다. 12세기에 건축된 것으로 추정되며, 처음부터 요새의 기능을 위해 동쪽 성벽에 붙여 지었다. 전쟁 시 시민들의 피란처로 사용됐으며, 실제 모양도 요새를 닮았다. 주변으로는 궁전과 같은 당시 중요 건물들이 들어서 있다. 대성당 옆 작은 문으로 성내로 출입할 수 있으며, 입구에 관광안내소도 있다.
대성당을 중심으로 북서쪽 골목길을 따라가면 시청이 있는 메르카도 치코 광장(Plaza del Mercado Chico)과 만난다. 반대로 남동쪽으로 방향을 잡으면 메르카도 그란데 광장을 만나게 된다. 이 광장에 있는 성 베드로 교회는 12세기 말에서 13세기 초에 건축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재건축이 반복되면서 다양한 건축 양식이 혼합되어 있다.
아빌라의 성당들은 화려한 톨레도의 성당과는 달랐다. 중세의 종교적 전통을 유지하는 듯 엄숙하고 절제된 모습이었다. 그 이유는 가톨릭의 성소가 서른 군데가 넘는다는 이 도시의 종교적 성격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특히 아빌라는 16세기에 가톨릭 성인 '예수의 테레사'와 '십자가의 요한'을 배출한 성지이다. 이 시기에는 '성자들의 아빌라'로 불리며 스페인 수도원 개혁의 중심지가 됐다. 그래서 고원도시이자 성벽도시라는 물리적 특징보다 종교도시로서의 성격이 더욱 두드러진다.(계속)
권응상 대구대 문화예술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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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빌라의 대표적인 세 성당 중 하나인 아빌라 대성당. |
아빌라는 스페인 카스티야이레온 지방 아빌라주의 주도로서, 마드리드에서 서쪽으로 87㎞ 떨어져 있는 중세 성벽도시이다. 11~14세기에 만들어진 중세 시대의 성벽이 구시가지를 감싸고 있다. 형태도 거의 그대로 남아 있어서 '스페인에서 가장 훌륭한 중세의 유적'으로 알려져 있으며, 198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6만명 가까운 인구를 가진 아빌라는 해발 1천131m의 고원지대에 자리해서 인구 5만이 넘는 유럽 도시 가운데 해발고도가 가장 높다.
이슬람교 세력 침입 맞선 전초기지
2천m 넘는 성벽으로 시가지 둘러싸
성당·수도원 세우고 큰 도시로 발전
'예수의 테레사' '십자가의 요한' 배출
당시 스페인 일대 수도원 개혁 중심
비센테성당·아빌라대성당 둘러봐야
폭 2m 돌담 성벽길 훌륭한 산책로
붉은 기와지붕 늘어선 도심도 장관
역사도 깊다. 로마시대 이전부터 도시가 형성됐다. 714년경 이슬람에 점령당한 뒤 1088년 알폰소 6세가 탈환하기까지 가톨릭과 이슬람 양대 세력의 최전선이었다. 이처럼 아빌라는 이슬람교도와 싸우던 전초기지로서, 스페인 '레콩키스타(국토회복운동)'의 상징과도 같은 곳이다. 1년의 절반 정도가 겨울 날씨인 데다 척박한 화강암 산등성이에 선 이 도시는 난공불락의 성벽까지 갖추어 감히 넘볼 수 없는 독특한 아우라를 갖고 있다.
거의 1천년간 이민족의 침입을 막고 안전하게 교역을 하면서 성벽 안팎에는 성당과 수도원, 궁전이 세워지고 가옥이 들어서 큰 도시로 발전했다. 성벽도시의 위용을 느껴보려면 성벽 밖의 '네 개의 기둥(Cuatro Postes)' 언덕에 올라가면 된다. 이곳은 아빌라 성벽과 구시가지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이자 이 도시에서 가장 오래된 가톨릭 성소이다. 이곳은 원래 로마시대 기독교도들의 처형 장소였다. 순교자를 기리기 위해 네 개의 화강암 돌기둥을 세우고 그 안에 화강암으로 만든 돌 십자가가 서 있다. 또 이곳은 테레사 수녀가 모로코로 전도 활동을 떠날 때 삼촌에게 붙잡혀 다시 돌아갔던 장소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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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빌라 성벽. 아빌라의 구시가지는 중세에 지어진 단단한 성벽에 둘러싸여 있다. |
유럽의 도시들을 다니노라면 심심찮게 성벽도시를 만나게 되는데 아빌라는 상대적으로 완전하고 압도적인 성벽도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대서양을 끼고 있는 프랑스의 성벽도시 생말로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 생말로는 성벽 아래 펼쳐진 해변과 요트로 낭만적인 풍경을 연출하는데, 이곳은 황량하고 휑했다 하지만 뭔지 모를 경건함이 감돌았다. 생말로가 해적을 방어하기 위한 해변 성벽이라면 이곳은 1천100m 높이의 산등성이에 무어인들을 방어하기 위해 만든 산악 성벽이다.
하지만 생말로와 마찬가지로 성벽 길은 구시가지를 굽어보며 걸을 수 있는 훌륭한 산책로다. 알카사르(Alcazar)와 푸엔테(Puente), 16세기에 지어져 와인 저장고와 정육점으로 사용된 건물인 카르니세리아의 집(Casa de las Carnicera)의 성문을 통해 성벽 산책로에 오를 수 있다. 성벽에 오르자 폭 2m 돌담길이 흉벽과 안전 펜스를 따라 이어진다. 성벽 안으로 시선을 돌리면 스페인 특유의 붉은 기와지붕이 빼곡히 늘어서 있고, 성벽 아래에선 시민들의 일상적인 삶이 펼쳐지는 도심과 도시의 핏줄 같은 골목길이 구불구불 늘어서 있다. 다시 시선을 성벽 산책로로 돌리면 일정한 간격으로 만나게 되는 반원형 망루와 어우러진 탁 트인 성 밖 전망이 가슴을 시원하게 한다. 북측 성벽의 중앙출입구 위에는 또 우아한 첨탑이 솟아 있는 카르멘(Carmen) 문이 있다. 17세기 성문 옆에 있던 수도원 건물이 낡아 첨탑을 세울 수 없게 되자 성벽 위에 수도원의 첨탑을 세웠다. 문 안쪽으로는 현재 호텔로 이용되는 16세기 건축물 피에드라 알바스(Piedras Albas) 궁전이 있다. 성벽과 붙어 있는 이곳 식당은 성벽 뷰를 즐기며 아빌라의 명물인 티본스테이크 출레톤(Txuleton)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아빌라 성벽 안에는 사실 변변한 궁전 하나 없다. 오히려 도시 규모나 인구에 비해 성당과 수도원이 지나치게 많다. 그래서 아빌라의 성벽은 사실 종교시설 방어가 주목적이라고 한다. 아빌라에는 각각 다르게 불리는 대표적인 세 성당이 있다. 'Basilica de San Vicente(산 비센테 성당)' 'Catedral de Avila(아빌라 대성당)' 'Parroquia de San Pedro Apostol(성 베드로 교회)'가 그것이다. '바실리카(Basilica)'는 역사적 종교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 성당으로 교황이 특별한 지위를 부여한 곳을 지칭한다. '카테드랄(Catedral)'은 의식과 예배가 행해지는 주교 관할 교구의 중심 성당으로, 이탈리아의 '두오모(Duomo)'와 유사한 것 같다. 이 외에 교구의 상대적으로 작은 교회를 '파로키아(Parroquia)'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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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비센테 성문' 앞 산 비센테 성당. 고대 그리스도교 순교자인 성 비센테를 모신 성당으로 11세기말 건축됐다. |
대성당을 중심으로 북서쪽 골목길을 따라가면 시청이 있는 메르카도 치코 광장(Plaza del Mercado Chico)과 만난다. 반대로 남동쪽으로 방향을 잡으면 메르카도 그란데 광장을 만나게 된다. 이 광장에 있는 성 베드로 교회는 12세기 말에서 13세기 초에 건축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재건축이 반복되면서 다양한 건축 양식이 혼합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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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응상 대구대 문화예술학부 교수 |
권응상 대구대 문화예술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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