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임 훈 문화팀 차장 |
여행을 떠나는 날, 아침 일찍 일어난 우리 가족은 설레는 마음을 안고 대구국제공항으로 향했고 비행기 탑승 한 시간여 만에 일본 간사이국제공항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후 특급열차를 타고 향한 오사카 도심은 세계 곳곳에서 몰려든 여행객으로 북적였는데 우리 가족 일행이 가장 먼저 방문한 곳은 오사카성이었다.
사진으로만 접하던 오사카성을 직접 보자 그 규모에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수백 년 전 축조된 것이라 믿을 수 없을 만큼 성채는 거대하고 튼튼해 보였고 성을 둘러싼 해자(垓字)는 군사 요새의 기능을 하기에 충분해 보였다. 비록 오사카성 중심부에 자리한 천수각은 콘크리트로 복원·조성된 것이었지만, 일본 전국시대 권력자이자 1592년 임진왜란을 일으킨 인물인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그 세력의 거점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품은 장소라는 점에서 일본의 역사를 엿보기에 충분했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오사카성 일원은 일본의 역사와 정취를 느끼려는 관광객들로 만원을 이루고 있었는데, 교토(京都) 청수사와 나라(奈良) 동대사 등 오사카 인근 도시의 문화유산들도 관광객들로 붐비긴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일본 관서지방 도시의 명승지를 둘러보던 중 '대구를 상징하는 볼거리에는 무엇이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고, 과거 대구도심 중심부에 있었던 영남제일관(嶺南第一關)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영남제일관은 임진왜란 이후인 1736년(영조 12) 새로 축조한 대구읍성의 남문이었다. 1980년 복원한 영남제일관의 현재 위치는 대구 수성구 만촌동 금호강변이지만, 원래 자리해 있던 곳은 남성로 약전골목과 종로가 만나는 곳이라고 전해진다. 1906년, 철거되기 전까지 대구의 역사와 도시의 위상을 상징하는 건축물이었다. 영남제일관의 위상이 어떠했는지는 과거의 기록을 통해 짐작할 수 있다. 현 만촌동의 영남제일관 안내판은 "1888년 대구를 다녀간 프랑스 여행가 샤를 바라(Charles Varat, 1842~1893)는 '조선기행(조선종단기)'에서 대구읍성이 (중국)북경성의 축소판과도 같은 인상을 주었다고 표현한 바"라고 적고 있다. 적어도 옛 영남제일문이 대구를 찾은 외국인에게 강렬한 인상을 주었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아쉬운 점은 오사카성이나 서울의 남대문 처럼 도시를 상징하는 건축물이 원래 자리에 없다는 점이다. 현 위치에 복원된 것만 해도 큰 성과라고 볼 수 있지만, 최근 동성로 상권 침체나 대구 관광 관련 뉴스를 볼 때마다 영남제일관의 위치에 대한 아쉬움이 들곤 한다. 여기에다 옛 대구읍성의 성벽들마저도 지금은 일부 조형물로만 남아있어 씁쓸함을 감출 수 없다. 이 밖에도 대구에는 달성토성과 고인돌, 공룡발자국 등 수많은 자연문화유산이 산재해 있지만 크게 관심을 가지는 이들은 적다.
반면, 일본의 주요 관광지들은 늘어난 관광객에 대처하기 위해 관련 세금 인상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대구는 확장과 팽창을 거듭하고 있다. 거창한 개발사업만큼 도시의 정체성을 오롯이 유지하고 보존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다.임 훈 문화팀 차장

임훈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