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질문들](https://www.yeongnam.com/mnt/file_m/202503/news-p.v1.20250326.9b63dfe2eb02459e9e9225b6a4a17990_P2.png)
이정진 법무법인 세영 변호사
사람들은 묻는다. “전자공학을 전공했는데, 어떻게 변호사가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나요?" 그들 눈에는 법학을 전공하지 않은 내가 신기해 보였던 모양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벤처기업에서 모바일 콘텐츠를 기획하며 마케팅에 뛰어들던 시절, 나는 벤처기업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변호사들로부터 제대로 된 법률 자문을 받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깨닫게 되었다. 무수한 아이디어와 열정으로 가득한 젊은 기업들도, 법률적 기반이 튼튼하지 않으면 금세 한계에 부딪힌다는 사실을 절감한 순간이었다. 그 작은 깨달음이 결국 내 인생의 방향을 바꿔 놓았다. 그들이 마주치는 숱한 어려움을 함께 넘어갈 수 있는 변호사가 되겠노라 다짐했기 때문인데 이것이 내가 변호사의 길을 걷게 된 이유이다.
변호사로 일하는 건 내게 꽤 잘 맞았다. 공학자들은 원래 데이터를 제시하는 데 익숙하고, 가장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답을 추구하는 성향이 있다. 그래서 소송을 진행할 때도 명확하고 근거가 탄탄한 논리를 펼친다. 이는 소송에서 좋은 결과를 이끌어내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전자공학을 전공하고도 왜 지휘자가 되었느냐는 질문을 받는 사람이 있다. 영남대 음악대학의 백윤학 교수다. 그는 서울과학고와 서울대 전기공학부를 졸업한 뒤, 서울대 작곡과에 편입해 지휘를 전공했다. 이어 미국 커티스대학, 템플대학에서 유학까지 마친 후, 지금은 국내에서 상당한 명성을 쌓고 있는 마에스트로이다. 며칠 전, 백 교수가 지휘한 디즈니 OST 페스타 공연을 관람했다. 그가 이끄는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때로 선장의 지시에 따라 노를 젓는 선원 같았다가, 어느새 넘실거리는 태평양 한가운데 파도가 되기도 했다.
전자공학에서 '전자회로 설계'란 원하는 기능을 실현하기 위해 저항, 인덕터, 커패시터 등 다양한 부품을 적절히 배치하고 연결하는 작업이다. 우수한 회로 설계자는 각 부품을 유기적으로 활용해 회로를 완성하는데, 마치 오케스트라에서 피아노·바이올린·비올라·첼로를 연주해 하나의 음악 작품을 만들어 내는 마에스트로와도 같다.
그에게 왜 마에스트로의 길을 택했는지 직접 묻지는 않았다. 하지만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그가 가장 즐기고 동시에 사람들에게 깊은 감동을 전할 수 있는 길을 택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지휘라는 방식으로 그 질문들에 대답하고 있었다.
그렇다. 공학도의 길에서 벗어나 변호사로 일하고 지휘자로 활동하는 모습을 보며, 누군가는 의아해 하거나 궁금해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그저 삶 속에서 선택할 수 있는 무수한 길 가운데 하나일 뿐이고, 스스로 만족하며 즐기는 일이기도 하다.
이정진<법무법인 세영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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