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은 세상] 조니 킴에게 관심을 가지는 이유

  • 정혜진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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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05-08  |  수정 2025-05-08 08:04  |  발행일 2025-05-08 제22면
가정폭력 공포와 어둠 속에서

헌신적인 누구를 갖지 못하고

불안에 떨고 있는 작은 아이들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지 않게

이 사회가 '누군가'가 되어줘야
[더 나은 세상] 조니 킴에게 관심을 가지는 이유
정혜진 변호사
조니 킴(Jonny Kim). 미 해군 특수부대 출신 중위, 하버드 의대를 졸업한 의사, 미 항공우주국(NASA) 소속 우주비행사로 현재 국제우주정거장에 있는 한국계 미국인. 국내 포털에 이름을 검색하면 이런 화려한 이력을 다룬 기사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내가 그에게 관심을 갖게 된 건 다른 이유에서다. 5년 전 그가 어릴 때 가정폭력 피해자였다고 고백했다는 뉴스를 읽었고, 원 출처인 팟캐스트 인터뷰(Jocko Podcast 221)를 일부러 찾아 들었다.

"두려웠어요. 세계를, 관계를, 사람들에게 말하는 것을, 학교에 가는 것을, 내 의견을 가지는 것을, 내 의견을 말하는 것을, 내가 옳다고 믿는 걸 위해 싸우는 것을 두려워했어요. 아버지를 두려워했어요. 매일 밤 기도했습니다. 아버지가 나아지기를."

그에 의하면 그의 아버지는 최선을 다해 '마음속 악마'와 싸우려 했지만 그것을 이길 정신적 힘이 부족했다(아버지를 비난하기보다는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이 읽힌다). 그가 구체적으로 묘사하지 않았지만, 술에 취한 아버지가 폭력을 행사하는 세상을 벗어날 수 없는, 그래서 가정 너머의 세상도 두려워했던, 작고 무기력했던 한 아이가 눈에 선하게 그려진다.

그런 아이가 어떻게 폭력의 대물림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까, 나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얻고 싶었다. 이런 질문에 대해 나는 오랫동안 생각해왔다. 형사 사건 국선변호인으로 일하면서 흉악 범죄자들을 많이 만나게 되면서다. 내가 만난 강력 범죄자들 중 상당수는 어릴 때부터 폭력에 노출되어 있었다. 물론 폭력의 피해자라고 해서 모두 폭력의 가해자가 되는 건 아니다. 하지만 폭력을 일상으로 경험한 아이와 그렇지 않은 아이는 분명 다른 어른이 될 것이다. 대를 이어가는 폭력을 어떻게 끊을 수 있을까. 한때의 피해자가 미래의 가해자가 되지 않도록 막을 방법이 없을까.

조니 킴 사례를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그에겐 어머니가 있었다. 그는 어머니를 이 세상에서 가장 강인한 사람, 자녀들을 위해 자신의 꿈을 희생한 사람이라고 SNS에 썼다. 질문과 결론만을 놓고 보면 맥이 탁 풀린다. 누구보다 똑똑하면서도 헌신적인 어머니가 없는 대부분 경우에는 그럼 답이 없단 말인가.

그는 극단적 사례다. 모두가 조니 킴이 될 수 없듯, 모두가 조니 킴의 어머니 같은 '누군가'를 갖고 있진 않다. 내가 만난 몇몇 중범죄자들을 떠올린다. 가난하고 거짓말과 폭력이 일상화된 가정에서 태어난 이도 있고, 아예 가정이라는 울타리 자체가 없었던 이들도 있다. 부모조차 두려움의 대상이 되고, 보고 배운 게 일상의 폭력이었던 아이에게, 똑똑하면서도 헌신적인 어머니는커녕 친척도, 이웃도, 나아가 사회제도마저도 부재했다.

본질만 놓고 보자. 다시 말하지만, 나는 조니 킴의 '넘사벽 누군가'를 말하는 게 아니다. 그의 어머니만큼 헌신적이지 않더라도, 그만큼 강인한 의지와 자질을 갖고 있지 못하더라도, 그래서 폭력의 대물림을 적극적으로 끊어내지 못하더라도, 폭력에서 소극적으로라도 벗어나는 걸 돕는 시스템이 우리 사회에서 제대로 돌아가야 하지 않을까.

엊그저께가 어린이날이었다. 나는 어둠 속에서 불안에 떨고 있는 작은 아이들을 생각했다. 우리 눈에 안 보이지만 그런 아이들이 여전히 존재한다. 그들에게 이 사회가 '누군가'가 되어 주지 않는다면 그들도 커서 괴물이 될지도 모른다. 아동학대를 적극적으로 막고 대처해야 할 또 다른 이유다.
정혜진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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